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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고린도후서강해27)
 본문말씀 : 고후5:11-1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6.11.2
조회 : 9,362   추천 : 0  
본문 :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제목 : 고후5:11-13절  고린도후서강해27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한국교회의 초기 도덕성’ 이라는 연구 논문에 나오는 글을 소개합니다. 1920년도에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인의 증언으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이 여인이 용의자가 살인자라고 증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증언을 들은 판사가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여인은 야소교인이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할리가 없다. 용의자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말이라고 그 말을 100% 믿어준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또 하나를 소개합니다. 몇 년 전에 1919년 3·1 독립운동에 관한 일본 헌병대 일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다음은 무라카미 헌병대장과 부하인 다나카의 대화 내용입니다. ‘이번 폭동은 조선 야소교인들이 주도해서 생긴 일이니 주동자를 색출해서 잡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예수를 믿는지 먼저 물어보고 믿는다고 하면 무조건 잡아들여라.’이 말을 들은 부하가 말하기를 ‘믿으면서, 안 믿는다고 거짓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말은 들은 헌병대장이 ‘조선 야소교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이 사례들을 보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리스도인들이었다면, 하나님께도 틀림없이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결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인정받는 신자 
 오늘은 11절을 중심으로 보도록 합니다. 11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알리어졌다’ 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쉬운 표현으로 말하면, ‘인정받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듯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도 사도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말이고, 더 나가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가면, 하나님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 될것이며,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정받아야 할 하나님과 사람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마치, 눅10:27절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말씀과 같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한짝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은 한 짝인 것입니다. 물론, 신앙과 믿음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에게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인격, 됨됨, 삶의 내용과 방법에는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예를들면, 요셉입니다. 요셉은 틀림없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더불어 요셉은 보디발 장군에게도, 감옥안에서도, 바로왕과 애굽의 관료들에게도 인정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틀림없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더불어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초대교회의 성도들 역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 인정받음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음은 한 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첫째로, 여러분은 하나님께 인정받을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하다고 정직히 행하고 있다고, 참 신자답다고 인정해 주실까요?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참 신자로 인정하고 계신지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둘째로,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에게 신자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들이십니까?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계십니까? 성격 좋은 사람,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사람, 쿨한 사람, 뒤끝이 없는 사람, 따듯한 사람, 감사 잘하는 사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사람..., 등 네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런 성격 좋고, 인품좋은 사람으로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은 잘 모르지만, 누가 봐도 교회다는 사람다움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셋째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에게 신자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까? 먼저, 여러분의 배우자는 여러분을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혹시 선데이 크리스챤, 모양만 그리스도인..., 등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는 어떻게 평가할까요? 어느 젊은 아빠가 일찍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 아들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아들이 2명의 친구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가서 아들 몰래 아이들이 애기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한 아이가 먼저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는 서울시장님과 굉징히 친해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잠시 후 또 다른 아들의 친구가, 우리 아빠는 경찰서장과 굉장히 친해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이제 자기 아들이 얘기 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이 아빠가 할말이 없을텐데.., 어떻게 하나? 라고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시 뒤 이 아들이 두 친구들에게 너무나 자랑스럽게 ‘야 우리 아빠는 하나님과 굉장히 친해’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아이의 아빠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첫째는,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둘째는, 자신의 아들이 아빠를 정말 하나님과 친한 아빠로 인정한 것에 놀랬다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자식은 여러분에 대해서 뭐라고 평가할까요? 여러분이 자녀에게도 신앙을 인정받는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렇게 인정받는 가정이라면 복된 가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주목하는 가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여러분의 자녀들을 신앙의 훈계할수 있고, 여러분의 자녀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신자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2.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그렇다면, 우리들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칭찬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가지로 설명을 드립니다. 첫째는,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들이 믿는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신행불일치의 삶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언행불일치, 또는 신행불일치의 삶을 살아가기에,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은 잘하고, 말도 다 맞고, 옳은데, 말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말은 대단하게 하는데, 삶은 엉망진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는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늘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로 열심히 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는 집사님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남편이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워낙 착한 남편이라 아내가 말하면, 한달에 한번정도는 교회에 따라 나간다고 합니다. 물로, 교회 가면 늘 졸기만 합니다. 그러던 중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부흥회를 한다고 해서 남을 이끌고 부흥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여집사님은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졸기만 하다 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여집사님이 가장 앞자리에 앉으면 남편이 졸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다음날은 가장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또 졸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화가난 아내는 남편에게 난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당신은 왜 은혜를 못받냐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자신이 졸은 일이 미안해서 웃으면서, ‘은혜 받으면 뭐가 좋은데...,’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신이 받은게 은혜라면 난 별로 바라지 않아!’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말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행동에는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은혜 받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결국, 말뿐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지적하는 이야기이며, 그리고 그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교훈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꾸중을 들은 것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말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들이 믿는대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다름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마13장을 보면,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세상사람들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똑같은 현실, 똑같은 환경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작정하셨을까요?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같은 환경, 같은 현실속에 살게 하셨을까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들의 사명이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다름이 분명히 입증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행27장을 보면,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도중 유라굴로 라는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고, 그 결과 배는 파선 직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평안했고,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과 달랐던 것입니다. 이렇듯 같은 현실, 같은 환경에 있을 때, 비로서 우리 신자들이 다른 존재라는 것이 들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서 우리 신자들이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물론이고, 사람들에게도 인정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름이 있습니까? 달랐야 합니다. 예를들면, 돈에 대한 생각도 달라야 하고, 직장을 다는 이유도 달라야 합니다. 경영마인드도 달라야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목표도 달라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가지려는 이유도 달라야 합니다. 절망스럽고 힘겨운 일들을 만났을 때도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야 하고, 인생의 목표도 달라야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야 하고, 결혼에 대한 기준도 달라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과, 그러기 위해서 말한 대로 살고, 믿는 대로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우리들이 믿는대로 살고, 다름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무엇일까?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아니고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삶,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과연 사랑이 무엇입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보고싶음, 설레임, 콩닥거림, 안보면 미칠 것 같음...등과 같은 감정입니다. 그래서 가장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이 무엇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결코 감정적인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들면, 고전13:4-7절을 보면, 바울은 사랑을 15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치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며, 견디느니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15가지의 정의 중에서 우리가 사랑이라고 여기는, 보고싶음, 설레임, 콩닥거림, 안보면 미칠 것 같음...등과 같은 감정적인 내용들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사랑은 감정적인 사랑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8:1절에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리’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전8:13절을 보면,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고 말을 합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이의 유익을 주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13절을 봅시다. 보시면,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 서로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사역의 근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사랑이 있습니까? 사랑을 목적으로 살아가십니까? 사랑이 이유가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 되고, 근간이 될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과 삶
 1)언행일치, 신행일치의 삶을 사십시오!
 2)다름이 있는 삶을 사십시오!
 3)사랑을 이유와 목적 삶고 사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존귀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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