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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오늘을 신자답게 살라!(산상수훈강해35)
 본문말씀 : 마6:31-34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6.10.30
조회 : 8,788   추천 : 0  
  설교원고 :  설교.txt (12.9K) [2]
본문 : 마6:31-34절  산상수훈강해35
제목 : 오늘을 신자답게 살라!   

  성도들의 삶속으로
 어느 새벽 전쟁터에서 2명의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병사가 동료 병사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합니다. ‘이 보게 만약 하나님이 딱 한가지 선물을 주신다고 하면, 자네는 무엇을 달라고 하겠나?’ 이 말을 들은 동료 병사 말했습니다. ‘난 오늘 달라고 하겠네’ 그 말을 들은 병사도 ‘나도 그래. 오늘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늘’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오늘’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오늘을 신자답게 살아 갈 것을 결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오늘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오늘이 가장 중요합니다. 34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무슨 말일까요? 내일 곧 미래의 일을 미리 염려하지 말라는 말일까요? 물론, 맞습니다. 왜냐하면, 미래의 일을 염려한다고 해서 해결할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내일 또는 미래를 염려함으로 오늘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는, 오늘을 염려로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살다보면, 미래에 대한 염려로 오늘을 놓치고, 낭비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 하나 묻습니다. 과거가 중요할까요? 오늘이 중요할까요? 내일이 중요할까요? 오늘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어제를 사는 사람도 없고, 내일을 사는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오늘(지금)을 삽니다. 왜냐하면, 어제는 이미 지나간 날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수 없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살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날은 바로 ‘오늘’ 인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을 보면, ‘오늘’을 강조하는 본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한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히3:13절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무슨 말입니까? 누군가를 권면하려면 오늘 하라는 말입니다.  더 넓은 의미로 말한다면, 무슨 일이든 오늘 하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오늘’ 하나님께 기도하고, ‘오늘’ 회개하고, ‘오늘’ 용서하고, ‘오늘’ 사랑하고, ‘오늘’ 돕고, ‘오늘’ 전도하고, ‘오늘’ 감사하고, ‘오늘’ 찬양하고, ‘오늘’순종하고, ‘오늘’ 헌신하고, ‘오늘’기뻐하고, ‘오늘’ 무슨 일에든 최선을 다하라는 말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얼마 전에 묵상했던, 주기도문도 엄밀히 말하면 ‘오늘을 위한 기도’입니다. 의역하면, ‘오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오늘 나라가 임하고, 오늘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오늘의 양식을 주시고, 오늘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오늘 시험에 들지 않게 해주소서’입니다.  또한, 수24:14-15절을 보면, 가나안 땅에 정착이후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이방우상 앞에 무릎을 꿇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수아가 권면하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즉,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라고 권면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우상들 앞에서 갈팡 지팡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오늘’ 누구를 섬길지 신앙의 결단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오늘을 중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돌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또, 철학자 스피노자도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할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오늘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늘’이 그 어느날보다도 가장 중요한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을 가장 중요한 날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의 중요성을 잊고 2가지 실수를 하곤 합니다. 첫째는, 내일로 미루는 실수입니다. 인도의 히말라야 산맥에는 한고조(寒苦鳥)라는 전설의 새가 있다고 합니다. 이 새는 둥지를 짓지 않고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밤이 되면 추위에 떨며 내일 해가 뜨면 반드시 둥지를 짓겠다고 다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해가 뜨고 얼었던 몸이 녹으면 둥지를 짓겠다는 결심을 내일(나중)로 미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이 신앙의 한고조는 아닙니까?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또는 나중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내일부터 성경 읽어야지, 내일부터 기도해야 하지, 형편이 나아지면 십일조 해야지, 좀 여유가 있어지만 봉사해야지, 잘 되면 주의 일에 힘써야지, 대학가면 교회 열심히 다녀야지..., 등 결국, 한고조가 평생 둥지를 짓지 못한 것처럼, 내일로 미루거나 나중으로 미루게 되면 결코 그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하겠다는 말은 안하겠다는 말과 같다는 점입니다. 물론, 어떤 분이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는게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심일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중에도 못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오늘까지 실컷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 한다는 사람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어떤 일이든 특별히 신앙의 일을 내일이나 나중으로 미루는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신앙을 추억하는 실수입니다. 예를들면, ‘내가 왕년에 신앙생활을 참 열심히 했지’ ‘나도 한때는 교회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었지’ ‘나도 예전에는 참 뜨거웠었지’ 신앙은 결코 추억하는게 아닙니다. 물론, 지난 날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기쁨과 뜨거움을 추억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과거의 추억만 하며, ‘오늘’ 새로운 신앙의 추억들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이라는 날에 신앙의 추억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5년전, 10년전, 20년전의 신앙의 추억만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는 오늘, 신앙을 추억하는 날이 아니라, 새로운 신앙의 추억을 만드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오늘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무슨 일이든 오늘 하십시오! 오늘을 놓치지 마십시오! 오늘을 승리하십시오! 

  2.오늘을 어떻게 살것인가?
 지금까지 우리들은 오늘이 중요하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먼저, 31-32절을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결코 세상 사람들처럼 ‘살기 위한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살기 위한 걱정이 아닌, 어떻게 살것인가? 어떤 것이 신자다운 삶인가를 걱정하고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를 신자답게 사는 것이야 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루를 살면서 살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십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신자다운 삶인가를 더 많이 고민하십니까? 살기 위해 힘을 많이 씁니까? 신자답게 사는 일에 힘을 많이 쓰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을 사는 모든 신자들이 신자답게 사는 일에 힘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입니까? 그에 대한 대답으로 33절이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입니다. 여기서 그의 나라라는 말과 그의 의라는 말은 동일한 의미의 반복적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나라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왕으로 계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요구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먼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러 찾아가십니다. 그때 세례요한 예수님께 세례를 주는 일을 거절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3:1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즉,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요구하시는 바를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국,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왕이시며 통치자이신 그리고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복종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신자다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상수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반사하는 삶’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들어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의 인격이 어떠하고,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하며, 하나님의 속성이 어떠한가를 들어내는 삶을 하나님은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 점은 마5:43-48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종종 성도들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윤리나 도적적인 차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성경의 요구는 윤리적 도덕적 차원에서의 요구가 아닙니다. 성경의 모든 요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들어내기 위한 요구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용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신실함을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죄를 이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모르는 분이고 죄를 심판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들어내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들어내는 삶이야 말로  ‘신자다운 삶’ 이며, ‘성경이 말하는 착함’이며, ‘충성됨’ 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신자들의 의무이며, 책임이며, 사명이며, 참다운 신앙인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들어내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끄러움이며, 게으름이며, 악함이며, 참다운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이라는 시간동안 하나님을 들어내고 있습니까? 과연 여러분 주변 사람들은 여러분을 보면서 어떤 하나님을 보게 될까요? 정말 하나님 다운 하나님을 보고 있을까요? 아니면, 왜곡된 하나님을 보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늘이라는 시간 동안, 누가 보든 안보든 하나님을 들어내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을 선물로 받은 자들의 의무이며 책임이며, 참다운 신앙인 것입니다.

  3.오늘을 신자답게 살아야 할 이유?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우리들이 오늘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들어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받기 위함일까요? 복받기 위함일까요? 물론, 하나님을 들어내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칭찬도 하실 것이고, 상과 복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상과 복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들어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하고, 하나님께 ‘알게’ 하고,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나오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출19:6절입니다. 즉, ‘너희가 제사장 나라가 되며’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애굽땅에서 종이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고, 자기 백성 삼으시고, 율법을 주신 이유가 바로 그들을 통해서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벧전2:9절을 보면,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을 합니다. 역시,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자녀삼아주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통해서 신자된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34절의 말씀처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곧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전부를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곧 산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은 오늘의 하나님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어제,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2)그러므로 오늘을 먹고 살 걱정이 아닌, 어떻게 하면 신자답게 살것인가를 고민하며 노력하십시오!
 3)특별히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들어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오늘’을 신자다움을 채우는 일에 힘쓰시고, 그럴 때 주어지는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오늘’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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