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5:8-10절 고린도후서강해26
제목 :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여러분! 여러분의 남편, 아내는 좋은 남편 아내입니까? 어떤 남편이 좋은 남편일까요? 좋은 남편은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남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아내가 좋은 아내일까요? 좋은 아내는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아내입니다. 또, 그렇다면 어떤 자식이 좋은 자식일까요? 좋은 자식은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식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가지 묻습니다. 좋은 신자는 어떤 신자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고민과 노력을’ 하는 신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신자는 삶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고민과 노력을 하는 신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신자입니까?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노력할 줄 아는 좋은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소원하는 훌륭한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당신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까?
우리는 지난 몇시간 동안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신다는 점 곧 우리의 구원의 시작과 끝을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며, 그 결과 우리의 구원은 결코 취소되거나 빼앗기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담대함을 갖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은, 우리가 할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보증을 약속받은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못남, 연약함, 부족함 속에서 절망하거나 주저 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난 한주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사셨습니까? 다시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는 삶을 사셨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특별히 늘 소원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9절을 보면, 바울이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살아도 주님의 기쁨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의 기쁨을 위해 죽는 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하나님으로 인해서 복을 받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어떤 시련도 이겨내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핵심은 우리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소원하며 살지 않는다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장로교의 신앙문답서인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要理問答, Westminster Catechism) 제1번의 질문과 대답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제일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초신자가 아니고는 대부분의 신자들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적으로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신자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도리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보다는, 내 기쁨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한 소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이 부분을 쉽게 확인하는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의 ‘기도’를 확인해 보면 됩니다. 과연 여러분의 기도는 무엇을 위해 쓰여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일에, 하나님과 더 친밀해 지는 일에, 하나님께 나를 복종시키는 일에 쓰여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일을 소원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 뜻과 내 소원, 내 만족을 이루는 일에 기도가 주로 쓰인다면, 또는, 행복, 기쁨, 보람, 성취..., 등만을 요구하는 기도라면 여러분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없거나 부족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소원이나 만족을 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전부이거나, 그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기쁨과 소원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지 확인하는 두 번째 방법은 ‘여러분이 언제 신앙이 흔들리는가? 또는 언제 신앙의 괴로움을 느끼는가?’를 확인 하면 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신앙이 흔들리십니까? 거룩하기를 원하는데 거룩하지 못할 때, 더 많이 쓰임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때,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볼 때, 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을 때, 감사하지 못할 때..., 등 이런 순간에 여러분의 신앙이 흔들린다면 여러분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려는 소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러한 일에 신앙이 흔들리기 보다는, 돈 벌이가 안될 때, 병에 걸렸을 때, 자식이 대학에 못갈 때, 어려움이 생길 때, 봉사에 대한 대우나 보상을 받지 못할 때.., 등 일때가 많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제대로 품지 못한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를 기쁘시게 하는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졌다면, 결코, 그런 일들로 신앙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한평생을 살았던 사도 바울의 모습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언제 신앙이 흔들렸을까요? 롬7장을 보면, 바울은 자신안에 있는 죄의 문제 때문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도 바울은 결코 어떤 어려움, 시련, 핍박, 실패, 알아 주는 사람이 없음..., 등과 같은 순간에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여러분의 신앙의 열심을 통해서 누가 들어나는지 보십시오! 골3:17절을 보면,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힘입는다는 말입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를 이용하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이 들어나고 주님이 증명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는 주님을 들어나게 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신자란 무엇이든 주를 위해 하고, 주를 나타내고, 주의 자비와 긍휼을 나타내고, 주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확인이 되셨습니까? 스스로를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더 이상 말로만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하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품고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책임이며,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서의 소원을 가지고 이루어가기를 바랍니다.
2.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제 우리들이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수 있을까요? 3가지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8절을 보면, ‘우리가 담대히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죽어서 주님 곁으로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세상을 도피하거나, 세상에 대한 염세주의적 표현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대단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한 우리는 결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와 삶을 살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자,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는, 종말론적 신앙을 갖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종말론적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난 죽으면 천국간다는 확신을 가지는 신앙일까요? 또는 늘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신앙일까요? 맞습니다. 또는, 세상을 외면하고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이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세상을 외면하거나, 세상을 등지면 안됩니다. 절대로 수도원식 신앙을 갖어서는 안됩니다. 중세시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에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신앙이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수도원안에서 입 밖에도 내기 부끄러운 일들이 행해진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외면하거나 등지면 안됩니다. 세상안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적 신앙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10절에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 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곧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채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나 자신을 매일 매 순간 하나님께 채점받는 자리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게 될 때, 우리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채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채점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이 땅에서의 삶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시 10절을 보면, ‘각 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 모든것이 채점받아야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말, 생각, 마음, 표정, 행동..., 등 그렇다면, 어떤 것을 중요하게 채점하실까요? 교회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기도를 몇시간 했는지? 성경을 몇 독을 했는지? 봉사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글쎄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채점 하실 때, 그런 것들은 중요하게 채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어떤 것을 중요하게 채점하실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남편노릇을 어떻게 했는지, 아내노릇은 어떻게 했는지, 부모노릇은 어떻게 했는지, 자식 노릇은 어떻게 했는지, 이웃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직장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사업은 어떻게 했는지?를 채점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렇게 반문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그런건 세상에 안믿는 사람들고 다 가지고 있는 것들이잖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석유가 중요한 것입니까? 물이 중요한 것입니까? 비싼걸 묻는게 아닙니다. 다르게 묻습니다. 1000년전 여러분이 가진 땅에 석유가 나오면 좋겠습니까? 물이 나오면 좋겠습니까? 당연이 물입니다. 석유는 없어도 살지만 물은 없으면 못삽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십니다. 예를들면, 공기, 물, 빛, 낮과 밤..., 등 그러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은 몇몇 사람에게만 주십니다. 예를들면, 보석, 특별난 재주, 뛰어난 외모와 몸매..., 등 신앙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신자에게 주십니다. 예를들면, 성령, 사랑, 은혜, 자비, 긍휼, 성경, 기도의 응답..., 등 그러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은 몇 몇 신자들에게 주십니다. 예를들면, 병고치는 능력, 방언, 예언...,등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고 오해와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편노릇, 아내노릇, 부모노릇, 자식노릇, 직장인노릇..., 이것은 그 어떤 사명이나 헌신보다도 중요한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엡5장에서 성령충만을 설명할 때, 표현된 것들이 무엇입니까?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부모들아 자식을 잘 양육해라, 자식들아 부모를 공경하라, 상전들아 위협을 그치라, 종들아 주께 하듯 하라..., 인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를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이 중요하게 여기시고 채점하시는 것을 잘 감당하십시오!
3.우리에게도 기쁨이 넘칩니다.
종 종 성도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묻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우리는 매일 주님만 좋으라고 사는 사람인 것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건 뭐냐?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것?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기쁨을 얻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살펴보십시오! 그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소원과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말할수 없는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고후7:4절에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빌4:4절을 보면, 성도들에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이 기뻐하라’ 고 또, 살전5:16절에 ‘항상 기뻐하라’고 성도들을 권면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기쁨이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우리의 삶에도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를 그런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쁨을 누리를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인생의 제일된 목적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우리 모두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채점하시는 날을 염두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2)특별히 주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삶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3)그럴 때, 우리의 삶에도 기쁨이 넘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소원하며, 남은 인생 주님의 기쁨을 위해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