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히11:29-30절
제목 : 신앙은 자라가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 “분재”를 아시지요? 분재란 얼마든지 크게 자랄 수 있는 나무를 인위적으로 자라지 못하게 하여 작은 화분에서 가꾸는 기술을 말합니다. 예를들면, 소나무는 매우 크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러한 나무를 겨우 50-60cm의 난쟁이 나무로 만드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무를 크지 않게 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물론 쉬운 기술은 아니지만, 나무의 굵은 뿌리를 자른 후 화분에 심으면 작은 공간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성장하지 않는 원리를 이용한 기술입니다. 이렇게 분재된 나무의 모양은 보통의 나무와 같습니다. 그런데 보통나무와의 차이점은 크기가 작다는 것과 주변 환경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햇빛, 수분, 바람..,등을 잘 조절해 주지 않으면 쉽게 죽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분재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신앙의 겉모양은 같아 보이지만 믿음은 자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자라지 못함보다 더 큰 문제는 누군가 보살펴주지 않으면 인생의 비바람을 견딜 수 없는 나약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분재된 그리스도인은 아니십니까?
1) 연결 - 오늘 말씀을 통해서 더 이상 신앙의 분재가 아닌, 신앙의 거목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신앙의 거목으로 자라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부르짖는 믿음!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2가지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사건이며, 또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무너트린 사건입니다.
우리들이 첫번째 살펴볼 것은, 29절입니다. 보면,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를 건너 것을 믿음의 행위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출14장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출14:2절을 보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주변에 장막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5절을 보면, 바로가 이스라엘을 잡기 위해 어마어마한 군대를 이끌고 추격해옵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추격해오는 바로의 군대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11절에는 모세에 대해서 원망을 하며 도리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사람을 섬기는 종으로 사는 것이 낫다고 울부짖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심이 2km나 되는 바다를 마른 땅 건너듯 건너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은 홍해 앞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그들은 추격해오는 바로의 군대를 심히 두려워했으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울부짖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바로 믿음의 행위하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두려워서 하나님께 울부짖는 이스라엘 백성의 그 모습이 믿음이라는 말을 이해하십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울부짖음은 분명히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기에,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에 울부짖음도, 심지어 원망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믿음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그 정도의 믿음은 나도 있겠다!” 고 말하실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분명 그런 믿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밖의 성도들도 그 정도의 믿음이라도 있다면 천만다행이라 생각을 합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믿음도 가지지 못한 그리스인들이 참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이스라엘백성들 만큼의 믿음이라도 있는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인생을 살다보면,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난 진퇴양란, 사면초과와 같은 현실들을 겪게 될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 울부짖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더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만날 때,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1시간 이상은 합니까? 아니면 금식이라도 하십니까? 아니면, 예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십니까?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어려움 앞에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울부짖는 정도의 믿음만 있어도 다행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아버지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환란과 고통, 아픔과 신음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못본체 하거나, 외면하거나, 내버려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확신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넌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의 숱한 홍해를 찬송하며 건너게 될 것입니다.
2.약속에 대한 믿음!
이제 두 번째 생각할 것은, 30절의 말씀입니다. 즉, “믿음으로 칠일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입니다.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수6장의 말씀을 보도록 합니다. 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바퀴씩 6일간 돌고, 마지막 7일에는 7바퀴를 돌고 큰 소리로 외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결국, 여리고성을 어렵지 않게 점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순종을 믿음의 행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를 중심으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리고 성은 40년간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난공불락과 같은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자 존 가스트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여리고 성은 이중벽으로 되어있었는데, 외벽의 두께가 2m요, 내벽의 두께가 4m, 그리고 높이가 10m나 되는 견고한 성이며, 그 성벽 위에서 마차 경주를 할 정도로 크고 견고한 성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무기로 무장한 적군이 노려보고, 공격태세를 하고 있는 그 성을 7일간 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백성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백성의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수6:2절에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라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1994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내용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착하고 이웃을 돕는 것을 인생의 꿈으로 여기며 사는 뉴욕의 착한 경찰관 찰리와 커피숍 웨이트레스인 이본느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이본느가 이혼한 남편 때문에 파산 선고를 받고 법원에 다녀옵니다. 그리고 속상한 마음으로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을 때, 찰리가 점심식사를 위해 옵니다. 찰리는 이본느의 그늘진 얼굴을 지나치지 못하고 기분을 풀어주려 마음을 씁니다. 그리고 점심값 외의 팁이 모자란 찰리는 돈타령하는 아내를 위해 샀던 복권을 생각해 내고, 이본느에게 복권에 당첨되면 상금의 반을 나누고, 떨어지면 팁의 2배를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찰리는 4백만달러(45억쯤) 복권에 당첨됩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이본느에게 200만달러를 주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종 종 사람들 중에는 이처럼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잊거나, 안지키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이 무엇입니까? 믿는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환란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시겠다고, 우리의 인생의 목자가 되시어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겠다고,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영원히 변치않은 사랑을 주시겠다고, 어디에서든 함께 하겠다고, 무슨 죄를 고백하면 용서하신다고..,등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의심하지 말고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의 삶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신앙이 성장하려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홍해바다 앞에서 울부짖음이 믿음의 행위였고,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실 것을 확신하고 여리고성을 도는 순종이 믿음의 행위였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이스라엘백성의 신앙의 성장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는 오늘 2개의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홍해바다앞에서의 부르짖는 백성들의 모습이며, 또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여리고성을 도는 순종을 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이 두 장면을 통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움 앞에 원망하며, 겨우 울부짖는 것 밖에 못하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걸고 순종하는 자들로 그들의 믿음과 신앙이 성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제자리 걸음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신앙이 성장하고 자라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은 조금씩이라도 성장해가고 있습니까? 그래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신앙과 믿음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광야 40년간의 신앙의 훈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알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과 믿음은 결코 저절로 자라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도 하루 아침에 자라는게 아닙니다. 물론, 신앙의 연수가 오래됐다고 많이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이란 마치 운동과 같은 것입니다. 운동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루 아침에 운동을 잘 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나라 피겨 스케이팅의 간판 스타였던 김연아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미끄러운 얼음판 위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움직입니까? 얼마나 고난위 기술을 발휘합니까? 더블 악셀, 트리플 악셀..., 심지어 우아한 연기와 눈빛 연기, 웃음 띤 얼굴로 합니다. 정말 대단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라면 얼음위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얼음판 위에서 걷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연아 선수는 어떻게 얼음판 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피나는 훈련의 결과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들면,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되는데 25년의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정하기 까지 역시 20여년의 훈련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로 쓰임받기 까지 3년 이상의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기까지도 20여년의 훈련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이란 오직 훈련한 만큼, 훈련의 수준만큼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신앙의 훈련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신앙과 믿음이 성장하는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 것 같습니까? 신앙의 훈련이 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앙 훈련에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훈련이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실시하는 제자훈련에 참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부흥회나 어떤 집회에 참석하는 것입니까? 물론, 신앙의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신앙의 훈련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훈련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갈망하는 마음, 또는 사모하는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훈련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42:1-2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니니’ 이러한 갈망이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이 신앙의 훈련이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갈망을 말할까요? 예를들면,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이고, 기도드릴 때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갈망이고,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에 대한 갈망이고, 찬양을 부를 때마다 내 영혼이 새로워짐에 대한 갈망이고, 전도할 때마다 나를 통해서 사람이 구원받기를 갈망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갈망이며, 신앙의 성숙에 대한 갈망..., 등 신앙의 모든 행위속에서 갈망하는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신앙의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갈망하는 자세입니다. 예를들면, 어떤 시련을 격을 때에 시련을 격게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 하나님의 뭔가를 축복해 주셨을 때,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 그 외에도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갈망하는 마음을 품을 때, 그것이 바로 신앙의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갈망의 마음을 품음으로 여러분의 신앙이 훈련이 되고,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해 가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성장해가기를 원하십니다.
본문과 삶
1)지금 여러분의 신앙은 어느 수준입니까? 어려울 때 부르짖는 수준입니까?
2)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어떤 말씀에도 기쁨으로 순종하는 자리까지 자라가십시오!
3)그러기 위해 ‘갈망하는 마음’을 늘 품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의 삶속에서 갈망하는 마음을 품음으로 신앙의 분재가 아닌, 신앙의 거목으로 자라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