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5:6-7절 고린도후서강해25
제목 : 우리도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얼마 전 우리나라 축구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예선전을 이란과의 원정 경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0:1대로 지고 말았습니다. 저도 그 경기를 보았는데, 유효슈팅도 하나도 없고, 파이팅 넘치는 모습도 전혀 없는 참 답답한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못했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닙니다. 그날 경기 후 국가대표팀 감독인 슈틸리케 감독이 인터뷰 중에 패배한 이유에 대해서 ‘카타르 선수인 소리아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나라 유소년 팀이 활성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을 했고, 그 말로 인해서 많은 축구팬들이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축구팬들은 왜 분노했을까요? 그것은 경기에서 무기력하게 패배한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감독이 패배의 원인을 선수들에게 있다고, 우리나라 축구시스템에 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맞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축구협회는 축구협회로서의 책임있고,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책임이 있고 선수는 선수로서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성령께서 보증이 되어주시는 책임이 있듯이, 성령의 보증하심을 받은 성도들에게도 주어진 책임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책임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우리의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성령께서 우리들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보증이 되시고, 또한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는 일에 보증이 되신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성령께서 택함받는 각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고, 그 구원을 지키시고, 그 구원을 완성시키시는 일을 책임져 주시는 분이라는 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의 보증하여 주심이 우리들에 필요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고, 그 얻은 구원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수 없고, 얻은 구원을 스스로 완성시켜나갈 실력과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구원의 보증이 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틀림없이 구원의 완성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구원은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을 성령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결코 오해하면 안됩니다. 즉, 성령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알아서 이루실 것이니 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시는 역할과 책임이 있듯이, 구원의 약속과 성령의 보증을 받은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보증을 약속받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은 무엇일까요? 7절을 보면, ‘믿음으로 행하고’ 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원의 약속과 성령의 보증을 받은 우리들에게도 구원의 완성을 위한 역할과 책임이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모두는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다음과 같이 묻고 싶을 것입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인데, 우리들이 구원의 완성을 위한 역할과 책임이 있다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구원이 은혜이고, 선물인데 우리들이 구원의 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2가지로 설명을 드립니다. 첫째는, 은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신자들은 은혜를 공짜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결코 공짜의 개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생각하실 것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서 얻는게 어떻게 은혜라고 말할수 있는가? 이유는 대단히 간단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어린 아이가 엄마나 아빠에게 안마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5만원을 주었습니다. 그 1만원이 노력의 대가 일까요?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최선, 또는 노력에 주시는 선물이 은혜이고, 최선과 노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귀한 것을 주시기 때문에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령의 보증이라는 약속과 은혜를 받았으므로, 우리도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무와 역할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와 역할과 책임을 부정하고, 외면한다면(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 아님), 어쩌면 여러분에게는 성령의 보증이 허락되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또 둘째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든 원칙을 가지고 일을 하십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항상 계획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즉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 선한 방법만을 사용하시는 원칙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방법, 악한 방법은 결코 사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은 항상 사랑(유익)을 목적으로 일하시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형통과 축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난과 시련도 주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록 우리들에게 고난과 시련을 주시지만, 그 이유와 목적은 반으시 우리를 향한 사랑(유익)을 목적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는 원칙입니다. 이 점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로부터 정하신 원칙입니다. 즉,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그 밖에도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에도 사람을 통해서, 누군가의 기도에 응답하는 일에도 사람을 통해서, 누군가를 꾸중하시는 일도 사람을 통해서..., 거의 대부분의 일을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하실 때에도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일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해서 구원의 보증을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가는 일에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방종, 방탕, 방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날마다 힘쓰고 노력하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고, 우리의 몫입니다. 이일에 소홀함이 없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2.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가장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오늘 본문 7절에서는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 말을 합니다. 즉,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 먼저,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우선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신념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확신과 신념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신념을 근거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신념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확신과 신념이 있다면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사는게 믿음인 것입니다. 또, 성경이 진리임에 확신과 신념이 있다면 말씀대로 사는게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신념대로 끊임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그것은 믿음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점입니다. 이 점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창9장을 보면, 홍수 심판이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언약의 특징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보통 언약은 쌍방간의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무지개언약은 하나님께서 홀로, 일방적으로 맺어진 언약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앞으로 인간이 어떠하든지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언약의 표징으로 제시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무지개’입니다. 왜 언약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보이셨을까요? 그것은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하나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키시겠다는 말입니다. 무지개는 영어로 rainbow입니다. 그리고 bow는 활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지개를 활로 여긴다면 화살은 하늘을 향할까요 땅을 향할까요? 하늘을 향합니다. 즉, 하나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언약을 지키고, 이루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십자가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또, 창15장을 보면, 더 분명한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고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더 요약하면, 언약의 핵심은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3년된 암소, 암염소, 숫양,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를 쪼개어 줍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하나님(횃불의 모양)이 홀로 지나갑니다. 원래는 함께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언약을 어기면, 그 언약은 파기되는 것이고, 언약을 파기한 사람은 죽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홀로 지나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어도 언약을 다 지킬 수 없게 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홀로 지나가시고, 홀로 언약의 주체가 되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 언약을 결코 파기되지 않는 영원한 언약이 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믿음의 주체인 것입니다.
어렵습니까? 그럼 좀 더 쉽게 말합니다.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이 누구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가이지, 결코 내가 누구이며, 내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합니다. 믿음이란? 내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고, 내 변덕이 하나님의 변덕이 아니라는 점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앙의 실패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혈기를 부리거나, 교만해지거나, 미움이 갖거나, 불순종하거나, 죄악에 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종 종 변덕을 부릴 때도 있습니다. 어느때는 늘 감사하겠다고 하면서 원망을 하고, 어느때는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하면서 못해먹겠다고 하고..., 등 변덕을 부릴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실패하던, 우리들이 넘어지던, 우리가 변덕을 부리던, 그 어떤 순간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버리지 않고, 우리를 향하신 마음, 우리를 향한 생각, 우리를 향한 계획, 우리를 향한 약속에 조금도 변함없는 분,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또, 항상 하나님은 우리 편이고, 우리 편드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예를들면, 욥을 보십시오! 사단은 하나님은 하나님 찾아와 욥을 정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욥을 완전한 자라고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정말 욥은 완전한 사람일까요? 정말 하나님이 흠이나 티를 찾지 못하셨을까요? 세상에는 그런 사람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욥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욥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은 여러분의 편이고, 여러분 편을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에서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라고 말합니다. 즉, 내 모습, 내 형편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는 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이 말하려는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믿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3.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십니다. 즉, 우리의 구원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 우리의 수준이 어떠하든 우리를 향한 약속, 사랑, 복주심에는 결코 변함이 없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또, 7절에 ‘믿음으로 행하고’라고 말을 합니다. 같은 의미 다른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보증,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다면, 우리 모두는 항상 담대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우리들이 못났더라도, 부족하더라도, 한심스러워 보여도, 부끄러운 모습이 있더라도 우리들은 혹시나 구원은 구원이 취소될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고, 또는 구원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인가에 대해 염려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항상 담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좌절과 절망과 연약함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제발 낙심하지 마십시오! 제발 주저앉지 마십시오! 제발 포기하지 마십시오! 더 바랍니다. 제발 다시 일어서고, 다시 시작하시고, 다시 달려가십시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의무이며, 역할이며, 책임이며, 삶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믿음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래서 성령을 보증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2)그러나 우리의 의무와 역할과 책임이 있음을 잊어면 안됩니다.
3)그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구원의 완성을 이룰 때까지 어떤 순간속에서도 항상 담대하고, 절망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고, 다시 시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