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히11:27-28절
제목 : 결단과 순종으로 나타는 믿음!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록펠러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석유사업으로 어마 어마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53세 때 그는 불치병에 걸리게 되었고, 의사로부터 1년 정도 밖에는 살수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1년 후면 죽는다는 생각에 우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어차피 죽을 바에는 재산을 하나님을 위해 쓰자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심에 멈추지 않고, 온전한 십일조에 순종하게 되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구제하는 일에도 순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게 되고, 그 후로도 44년을 더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결단하고 순종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보여지는 믿음!
오늘 본문은 2가지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27절에 모세가 바로를 피해 애굽을 떠나는 장면과 둘째는, 28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는 장면입니다.
먼저, 27절을 보면,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 하니하고’라고 말을 합니다. 모세는 애굽을 두 번 떠났습니다. 첫번째는, 그의 나이 40세에 보장된 미래가 있는 애굽백성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것을 결단한 후 애굽을 떠나 미다안 광야로 갔습니다. 두번째는, 모세의 나이 80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으로 떠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모세의 첫 번째 떠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애굽을 떠난 것을 모세의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이제 28절을 보면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를 정하였으니’라고 말을 합니다.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식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즉, 유월절의 핵심은 피를 뿌리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유월절을 공포하고 피뿌리는 의식을 지킨 것이 바로 믿음에 근거한 행위라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믿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나 신념만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신념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라면 참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신념에 근거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신념이 삶으로 나타날 때, 확신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참다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모세는 애굽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의식을 행한 것 역시, 그 피뿌림으로 인해서 죽음을 면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믿음은 확신과 신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듯이 반응으로, 삶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입니다. 어느 마을에 계속되는 가뭄으로 농사가 망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 믿는 사람들이 중심으로 기도회를 하기로 결정을 하고 마을 사람을 초청했다고 합니다. 다급함이 커서 믿음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도 기도회에 모였답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우산을 들고 오는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아이에게 우산은 왜 가지고 왔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하는 말이,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비를 내리실텐데 비 맞고 집에 갈수는 없잖아요! 라고 말했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11:1절이 말하는 믿음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입니다. 이 말씀에서 믿음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표현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바라는 것, 보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실상과 증거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이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결국은 보여지고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속에 자리하는 것이지만 결국, 믿음은 반응, 또는 삶으로 구체화 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야고보사도의 말씀에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약2:17절에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은 반드시 행동과 삶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반응이고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반응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자 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확신, 신념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반응과 삶이 있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반응과 삶을 통해 믿음이 있고, 믿음으로 사는 자됨을 증명하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결단으로 증명되는 믿음
그렇다면, 이제는 모세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한 믿음을 가진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반응, 삶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결단”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애굽을 떠나’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세가 애굽을 떠날 결단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애굽을 떠나기로 결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애굽에서 특별히 애굽의 왕자의 자리에는 결단코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애굽을 떠나기로 결단을 한 것입니다. 물론, 모세의 이러한 결단은 결코 쉬운 결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단이 모세가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또, 2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대로 어린양의 피를 뿌릴 것을 결단합니다. 어찌 보면, 어린양의 피를 뿌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될만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양의 피를 뿌릴 것을 결단합니다. 그리고 그 결단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역시 확신이나 신념만 가진 신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신앙의 결단을 나타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앙의 결단이 결국, 우리들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보면, 결단으로 믿음으로 증명한 인물들이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 역시 고향을 떠나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 바치는 결단을 합니다. 이러한 결단들이 결국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또, 에녹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것을 결단합니다. 이러한 결단이 에녹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 노아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명령대로 심판을 대비해 방주를 만들 것을 결단했습니다. 이러한 결단 역시 노아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 다니엘과 그 친구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부정한 음식으로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을 것을 결단하고, 그래서 왕이 주는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이러한 결단이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믿음의 사람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여러분에게 신앙의 결단이 있었습니까? 금요예배에 나가자~ 등 또, 지난 5일을 살면서 신앙의 결단은 있었습니까? 만일 신앙의 결단이 있었다면 여러분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맞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신자들이 신앙의 결단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끊임없이 신앙의 결단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앙의 결단으로 통해서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이고, 믿음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러분이 신앙의 결단을 통해서 평안을 누리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마음의 괴로움이 생길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해야 할 결단을 못하고 있을 때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개척 할 때, 결혼 할 때, 어떤 중요한 결단을 못하고 있을 때..., 등 그러나 결단을 하고 나면 마음의 염려와 근심은 사라지고 참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원하시는 신앙의 결단은 무엇일까요? 많을 것입니다. 예배의 삶, 온전한 주일성수의 삶, 십일조의 삶, 말씀의 삶, 전도의 삶, 기도의 삶, 헌신의 삶, 섬김의 삶, 감사의 삶, 신실한 삶, 사랑의 삶..., 등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신앙의 결단이 무엇인가를 더 고민하고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지금 제가 가장 바라시는 신앙의 결단은 무엇입니까?’ 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모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실 만한 일들을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3.순종으로 증명되는 믿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반응, 삶 두 번째는, 바로,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예식을 제정하고 피를 뿌린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10가지의 재앙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재앙이 장자의 죽음 재앙입니다. 물론, 애굽과 이스라엘 모두를 향한 것입니다. 이 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설명하고, 어린양을 잡아 집 문설주에 바를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뿌리는 것이 뭐 그리 힘들거나 대단한 순종이냐? 나도 그정도는 하겠다고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십니까?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뿌리는 것 그 자체만 보기 때문입니다. 애굽왕과 애굽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명령되기 이전까지 이미 9가지의 끔찍한 재앙이 애굽 사람들에게 내려졌습니다. 예를들면, 피, 개구리, 이, 파리, 우박, 메뚜기, 악질, 독종, 흑암재앙입니다. 시간적으로 봐도 최소한 9일동안 애굽사람들이 이런 끔찍한 재앙을 만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뭐겠습니까?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 때문이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분노의 마음을 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양을 잡고 피를 뿌리고, 고기를 구워먹은 것입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결코 쉽거나 만만한 순종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이 믿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고, 순종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매일의 삶속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래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종 종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기 어려운 순종을 요구, 또는 말도 안되는 일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를 든다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순종의 요구,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순종의 요구...,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렵고, 이해되지 않는 요구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순종들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느 선교사 가족이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린 아들이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급한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얘야, 얼른 땅에 바짝 엎드려!’ 그 아들은 아빠 말대로 즉각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또다시 ‘자, 이제 아빠있는 곳으로 빨리 기어렴!’ 아들은 아빠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 이유는 아들이 놀고 있던 나무위에 독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실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스스로 재미와 만족을 위함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들에게 뭔가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뿌림에 순종하기를 원하셨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서입니다. 또, 주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말도 안되는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베드러가 바라던 물고기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의 제자로 살아가는 더 나은 삶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다양한 순종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 역시 여러분에게 뭔가 좋은 것, 여러분이 기대하고 바라는 뭔가를 주시기 위함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필요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먼저 순종을 요구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을 통해서 우리들이 원하는 것, 그리고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순종을 요구하시든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믿음은 단순한 신념과 확신이 아닙니다.
본문과 삶
1)믿음은 반드시 반응, 더 정확히 말하면 삶으로 나타나야 진짜 믿음인 것입니다.
2)특별히 믿음은 결단과 순종이라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3)또 결단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평안과 기쁨을 선물로 주십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의 삶에서 결단과 순종이 믿음의 열매로 풍성히 나타는 삶을 통해 여러분이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믿음의 사람임이 증명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