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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새로워 질 몸!(고린도후서강해21)
 본문말씀 : 고후5:1-4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6.9.21
조회 : 7,443   추천 : 0  
본문 : 고후5:1-4절  고린도후서강해21
제목 : 새로워 질 몸!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여러분!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아십니까? 먼저 올챙이는 팔 다리가 없이 몸통과 꼬리만 있습니다. 그러다가 45일 정도가 지나면 다리가 생기고, 또, 90일 정도 되면 팔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크면서 꼬리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개구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챙이가 전혀 새로운 모습의 개구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올챙이와 개구리는 모양이나 생존 방식(아가미 호흡, 폐호흡)은 완전히 다르지만 몸의 연속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즉, 올챙이 몸이 없어지고, 개구리가 되는게 아니라, 올챙이의 몸이 개구리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몸과 저 하늘에서의 우리의 몸이 다르지만, 이 땅에서의 몸과 저 하늘에서의 몸은 연속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 땅에서의 몸이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몸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몸이 전혀 새로운 몸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이 땅의 몸과 저 하늘에서의 몸
 오늘 본문을 보면, ‘집’ ‘처소’ 라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을 합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우리의 몸’에 대한 표현들입니다. 예를들면,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느니라’ 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땅에 있는 집은 이 땅에서 우리의 몸을 말하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앞으로 우리들이 갖게 될 신령한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 모두는 전혀 새로운 신령한 몸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 모두는 무너질 몸이 아닌, 영원히 썩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는 신령한 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강조점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몸이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몸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말해,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몸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서 ‘덧입는다’ 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이 사라지고 새로운 몸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신령함으로 덧입혀진 새로운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 우리의 몸과 앞으로 우리들이 갖게 될 신령한 몸에는 연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몸의 연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일만에 전혀 새로운 몸, 신령한 몸(어떤 제한도 한계도 없는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신령한 몸은 예수님께서 33년간 이 땅에서 가지고 계신 몸이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못자국난 손과 발입니다. 이 땅에서의 몸과 부활하신 신령한 몸에는 연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마지막 날 전혀 새로운 신령한 몸 곧 하늘의 장막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놓치면 안되는 것은, 우리가 가질 하늘의 장막과 이 땅에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의 장막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장막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 가지고 있던 육신의 장막과 별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죽은 몸이 어떻게 신령한 몸이 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이미 죽어서 땅에 묻혀 썩어버린 몸이 어떻게 다시 신령한 몸이 될수 있을까? 더나가서 완전히 썩어서 흙이 되어버린 몸이 어떻게 다시 신령한 몸이 될수 있을까? 극단적으로는 화장을 해서 완전히 불타버린 몸이 어떻게 다시 신령한 몸이 될 수 있을까? 또는, 흔적도 없는 죽은 몸이 어떻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마22장을 보면, 당시 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개인이 예수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7명의 남편과 살던 여자가 부활을 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고 묻습니다. 이 말은 부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두개인이 생각하기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무슨 말입니까?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입장과 기준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 편에서 생각한다면 사실 부활이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아름다운 온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생명의 소망이 100%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처녀의 몸에서 아기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또한 에스겔서를 보면 골짜기의 마른 뼈로 하나님의 군대를 만드셨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죽은자, 썩은자, 다 태워진자, 흔적도 없는 죽은 몸을 신령하고 영원한 몸으로 부활시키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우리 몸의 부활을 조금도 의심이 없이 믿기를 바랍니다. 더나가서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매일의 삶에 힘과 위로와 신앙의 담대함을 얻기를 바랍니다.

  2.이 몸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지금까지 이 땅에의 몸과 천국에서의 몸의 연속성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즉, 지금 우리의 몸은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 신령한 몸으로 덧입혀질 몸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몸의 연속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당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이들이 가진 몸(육체)에 착각, 오해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 땅에서의 몸은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육체는 악하고, 죽고 썩어지면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더나가서 죽고 썩어지고 없어질 몸이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긴 것이고, 그 결과 방탕, 방임, 방종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 원인이 몸 곧 육체에 대한 잘못된 오해 때문이라고 지적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천국에서 신령한 몸이 될, 지금 우리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땅에서 나를 더욱 ‘신령한 사람’이 되도록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또, 나를 더욱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골1:22절의 말씀처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라는 말씀처럼, 또, 살전5:23절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는 말씀처럼 우리 자신을 신령하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변화시키는 일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몸의 연속성을 믿는 우리들이 마땅히 힘써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변화를 위해 힘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에게 신령한 몸을 덧입혀 주실 주님이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엡4:22-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바로 변화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축복을 받고, 신앙의 능력을 갖고, 남들보다 더 많은 봉사를 하는 것, 은사를 갖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러한 것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변화’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에 다니는 것, 성경을 보는 것, 기도를 하는 것, 찬송을 부르는 것,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 사랑을 실천하는 것..., 물론 이것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을 신앙생활의 본질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핵심,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대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원하심 대로 나 자신을 끊임없이 고쳐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며, 이유이며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계속해서 거룩하고, 흠도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늙어만 가고 있습니까? 물론, 여러분이 믿음을 갖고 난뒤 지금까지 참 많은 것이 변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주일예배를 기다려지는 마음, 한번은 더 참으려는 마음, 힘든 일이 생기면 기도하려는 마음..., 등 의 여러 가지 변화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들의 모습속에서는 변해야 할것들이 참 많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예를들면, 때때로 교만해지고, 때때로 혈기를 부리고, 때때로 욕심에 사로잡히고, 때때로 함부로 말하고, 때때로 잘못된 고집을 부리고, 때때로 맡은바 책임에 소홀히 하고..., 등 이렇듯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거룩하지 못하고, 신령하지 못하고 흠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고치고 변화시키는 일을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흠없는 자를 목적으로..., 이것이 부활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들이 더 변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나 보다는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누가 변해야 하는데...’ 아닙니다. 이것은 너무나 틀린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여러분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 주변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즉, 여러분이 변해야 배우자가, 가정이, 자녀가 성도가 변합니다. 예를들면, 베드로가 변한 후 3000명, 5000명이 변한 것입니다. 사울이 변했을 때, 소아시아 사람들과 마게도냐 사람들이 변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에게 일어나야 하는 변화는 무엇입니까? 지금 주님이 여러분에게 간절히 기대하시는 변화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 일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3.더 변화되려면?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변화되어 갈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성경을 보면, 변화된 사람들을 많이 볼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야곱입니다. 야곱은 항상 자신의 꽤를 의지하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또, 베드로는 겁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 역시 혈기왕성한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주먹이 앞선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온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삭개오는 부당하게 부를 축적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변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요? 우리들이 변화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3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주님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변화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주님을 만났다’ 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바울은 다메섹에서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야곱은 천사로 가장한 하나님을 얍복강에서 만났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불붙은 가시떨기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만났고, 삭개오는 뽕나무 아래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런 주님과의 분명한 만남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많은 변화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를들면, 예배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찬송을 통해서..., 

 둘째는, 순종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당연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는 노력이 없이 변화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를들면, 고기잡이 어부였던 베드로가 제자로 변화된 근거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을 위한 노력이 있을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셋째는, 죄와의 싸움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곧 죄에 대한 승리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이 가장 힘써야 할 것이 있다면 죄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반복되는 죄, 습관적인 죄, 아직 사람들에게 들통나지 않은 죄와의 싸움을 통해서 우리들은 더욱 신령한 사람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듯, 우리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지금의 몸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2)무엇보다도 우리의 몸이 더욱 거룩하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3)그러기 위해 매일 주님과의 만남, 말씀에 대한 순종, 죄와의 싸움이 필요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주님이 오시는 날의 변화될 몸만 바라는 신자가 아닌, 그날까지 더 거룩하고 신령한 몸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주님이 오시는 날에 칭찬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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