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4:16-18절 고린도후서강해20
제목 : 겉 사람과 속사람 !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집이나 빌딩을 짓는 공사현장에 가보면, 공사와 관련된 안내 푯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어떤 용도의 건물을 짓는지, 공사 기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공사 책임자가 누구인지, 공사를 담당한 건설회사가 어디인지..., 등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완공된 후 어떤 모양의 건물일지를 미리 보여주는 ‘조감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조감도의 모양대로 완성되어가는 건물을 볼 수 있게 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신앙이란 우리를 완성시켜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완성을 위해 다시 분발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겉 사람과 속사람이 의미하는 것
오늘 우리들이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과연 겉사람은 무엇이고 속사람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겉사람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속사람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겉사람을 육체와 연관해서 생각을 하고, 속사람은 영혼과 연관하여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가 죽어져야 영혼이 살아난다고 생각을 합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잘 못하는 이유가 육체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말을 하면, 우리의 영혼이 육체의 지배와 영향을 받게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영혼이 육체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가 영혼에 지배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몸이 생각을 지배합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생각이 몸을 지배합니까? 우리의 생각이 몸을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이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선하고, 육체가 영혼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바울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분리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의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점을 몇가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인간을 구분할 때, 옛사람과 새사람으로 구분을 했습니다. 옛사람은 아직 구원받기 이전의 인간 곧 자연인, 아담의 후손을 말합니다.(롬6:6절) 그렇다면, 새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신자,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사람이라고 말을 할 때, 영혼만 두고 하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도 포함하여 새사람인 것입니다. 또, 바울은 영에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도 인간을 구분했습니다. 그렇다면, 육에 속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고전2장) 그렇다면, 영에 속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을 할 때, 영혼만 두고 하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육체도 포함되어 영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또, 이 점은 우리가 받게될 구원의 모습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의 영혼만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도 구원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의 육체가 부활하고, 영혼과 더불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강조하려는 것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은 분리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육체의 수준과 영혼의 수준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겉사람은 육체와 연관해서 생각하거나 속사람을 영혼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겉사람과 속사람은 무엇일까요? 이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 참고해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18절입니다. 보시면,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이라는 표현이 2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겉사람은 지금 보이는 나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속사람은 무엇입니까? 지금 보이지 않는 앞으로의 나의 모습입니다. 다시말해, 나의 완성된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칭의와 영화라는 관점에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를 의롭다(100점)고 선언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비록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존재가 되었지만, 실제적으로 아직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의롭다함을 칭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단지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신 것 뿐입니다.(신분적인 변화) 그러나 우리는 결국, 완전한 의로움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상태를 영화라고 부릅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겉사람은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못나고 연약한 지금의 우리를 말하는 것이고, 속사람은 우리들이 아직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도달하게 되는 영화를 입은 나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제 간단히 말하면, 겉사람은 신자된 지금의 나이며, 속사람은 마지막 날의 완성된 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겉사람과 속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의 나를 방치하지 말고, 마지막 날의 나의 모습으로 나를 완성해 가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신분의 변화에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신분에 걸맞는 수준으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
우리는 지금까지 겉사람이 낡아지고,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가 나를 완성해가는 것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신앙생활이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신앙생활이란 마지막 날에 완성될 나의 모습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행하는 모든 신앙의 열심의 목적이 나를 완성해 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이런 유일한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만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여러분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가장 바라시고, 기대하시는 것 역시, 자신을 완성시켜가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삼하7장의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하7장을 보면, 다윗이 모든 대적을 이기고 나라의 평안을 누릴 때, 법궤를 예루살렘의 성막으로 옮겨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셨겠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결심을 많이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의 마음을 단호하게 거절을 하십니다. 다음과 같이 거절 하셨습니다. 삼하7:5-7절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한번도 이스라엘 백성 그 누구에게도 성전을 원한적이 없고, 성전을 짖지 않는다고 나무란적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삼하7:11절을 보면,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집은 건물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다윗 자신입니다. 그리고 넓게는 이스라엘 나라이고, 다윗의 후손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을 거절하시고, 하나님이 다윗이라는 집을 짓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가장 바라시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 자신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고, 완성해 가는 것을 가장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많이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자신을 완성해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이런 저런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교회다움을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한번 더 확인해 봅시다. 여러분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신을 완성해 가십니까? 매일 매일 완성되어져 가는 여러분 자신을 보고 있습니까?(참고로,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을 가면서 요진 y시티가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해가는 일을 놓치고, 단지 신앙의 열심만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심을 자신의 신앙의 수준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열심히 여러분의 수준이 될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신앙의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신앙적인 열심히 있었습니다. 마23:23절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시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무슨 말입니다. 대단한 열심히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그들을 꾸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즉, 자신을 완성해 가는 일에는 무관심했다는 말입니다. 또, 마7:22절을 보십시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거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꾸중하셨습니다. 역시, 열심은 있지만 자기를 완성해가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은 불법을 행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우리들이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해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3.신앙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
우리들이 아는 교리중 ‘성도의 견인’ 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칭의 받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영화의 자리로 이끌어 가신다는 교리입니다. 마치, 고장난 차를 견인차가 끌고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해 가는 일을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친히 우리를 완성시키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성시키시기 위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그것을 ‘낙심 또는 환난’ 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신앙의 완성을 위해서 왜 낙심 또는 환란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실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낙심하게 될 때, 비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낙심, 환란이라는 방법으로 우리를 신앙의 완성의 자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낙심이나 환란을 통과하지 않으면 완성의 자리로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5:3절에서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낙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즉, 지금 여러분 가운데 낙심이난 환란을 만난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 하나님이 나를 신앙의 완성의 자리로 이끌어 가고 계시구나~’‘내가 지금 완성의 자리로 인도받고 있구나’ 이런 올바른 이해를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롬5:3-4절의‘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는 말씀처럼 낙심과 환난 중에 더욱 완성의 자리로 나가게 될 것을 확신하고 기뻐하며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 인내는 무조건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낙심과 환난 가운데서 완성을 향해 인도받는 지체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공동체의 사명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신앙이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시켜 가는 것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매일 매일 나를 완성시켜 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물론, 하나님도 우리의 완성을 위해서 낙심과 환난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3)그러므로 낙심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를 완성의 자리로 이끌어 가심을 알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더욱 완성된 모습을 보이며, 서로의 완성을 돕는 자가 되어,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칭찬받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