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4:13-15절 고린도후서강해18
제목 : 내가 살아가는 이유!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몇 년 전, 우리나라의 명문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한 대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대입에 실패한 것도 아니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는데 자살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을 모두 마친 후 부모는 뒤늦게 자식의 유서를 발견했습니다. 그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는 저와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단순한 비관이 아닌 삶의 이유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삶의 이유를 분명히 가지는 일이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에도 내 삶의 이유,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시한번 삶의 이유를 확인함으로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는 지난 시간 바울이 격은 일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일들입니까?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죽음에 넘겨지고..., 등 한마디로 말하면, 사역 가운데 격은 수없이 많은 실패들이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의 실패들을 소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시고, 특별히 하나님은 실패라는 방법을 대단히 중요한 방법으로 삼아 일하시는 분이심을 소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이 실패라는 방법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자신이 사역에 실패한 것으로 인해 사도성을 의심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임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양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을 제한하는 실수를 하면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실패가운데 특별히 일하시는 하나님임을 알고, 실패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바울이 다양한 실패를 격으면서도 사역을 포기하지 않고 감당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15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여러 가지 실패의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감당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살아가는 이유, 바울이 사도로서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신자로서 이 땅에 존재하고, 우리가 신자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이 목적 의식을 놓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존재의 이유, 삶의 이유를 놓쳐버리면, 결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예로 들어봅시다. 먼저,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은 장점이 많은 교회였습다. 우선, 성경적 교리에 대한 지식이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지식에 대한 열정도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는 매우 많은 성령의 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인, 병고침, 예언과 방언, 통변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성도들이 방언을 하고 많은 성도들이 예언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의 모임도 매우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볼로와 같은 유능한 목회자 여러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재정도 꽤 넉넉한 교회로서 구제활동에 대단한 열심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세운 몇 몇 교회들 중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지적이며, 능력과 은사가 풍부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불과 3-4년만에 대단히 급속도로 성장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후서가 씌여진 이유는 고린도교회안에 방치할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분쟁(1-4장), 음행(5장-서모), 성도들끼리의 법정 소송, 사기, 성적타락(6장), 심각한 외도와 이혼(7장), 교만(8장), 우상숭배(10장), 차별(11장).., 등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사도바울이 가장 심각하게 여긴 문제는 바로 “분쟁과 다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가 이와같이 교회답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이라’ 는 목적의식을 놓쳤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한 중요한 권면이 무엇입니까? 바로, 고전10:31절‘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존재와 살아감의 분명한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점을 권면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래서 장로교 교리의 표준인 소요리문답 제 1문에 ‘사람의 제일된 목적’ 에 대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왜 쉽게 신앙이 흔들립니까? 우리들 왜 쉽게 지칩니까? 우리들이 왜 쉽게 신자다움을 잃습니까? 왜 신앙이 자라가지 않습니까? 왜 감사가 줄고, 원망 불평이 많아집니까? 그 이유 역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존재와 삶의 목적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왜 사십니까? 죽지 못해 삽니까? 지금 여러분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더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건강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실력과 능력을 키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이 저녁 예배의 자리에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열심히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봉사의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답은 무엇일까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났다면, 다시 이 목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납니다. 곧장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바울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이웃 사랑이라는 관문!
우리들이 살다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부모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해산의 수고입니다. 올림픽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국가대표 선발전입니다.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입시입니다.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면접입니다. 마트의 물건을 내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계산대입니다. 또, 성도가 되어 세례를 받기 위해서도 반드시 통화해야 할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문답입니다. 또, 우리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습니다.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습니다. 그게 혹시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결코 감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사랑을 감정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가장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바로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원수가 배고프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서로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웃 사랑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오늘 본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고난과 다양한 실패를 감수한 목적, 자신이 사도로서 역할들을 성실히 수행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15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을 위해 바울 자신도 ‘이웃 사랑’ 이라는 관문을 통과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죽음에 넘겨지고..., 등 이러한 일들을 감당한 것이 바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웃 사랑이는 관문을 통과함으로 비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또, 이 점은 성경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고전10:31절을 보면,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것 같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고전10:33절에서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 말합니다.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이웃 사랑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마5:16절을 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 말을 하기 전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라고 말을 합니다. 역시, 이웃 사랑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 역시, 이웃 사랑이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원한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성도로 부름을 받고, 구원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 서로의 유익을 위함이라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돌지라...,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신 목적이 그 개인의 성공이 아닌, 복의 근원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대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또, 이 점을 이스라엘 나라의 모습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19: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출애굽 시키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제사장이 뭐하는 사람입니까?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즉,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은 나만의 행복, 나만의 성공과 출세를 위함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받은 큰 은혜와 사랑을 근거하여 우리도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더 유익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성공과 출세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3.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이웃 사랑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13절을 보아야 합니다. 13절은 사도 바울이 시116:10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116편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 돕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속에서는 그런 하나님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라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와서 보니 그들의 말이 맞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내용의 시편 말씀을 인용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도 시편기자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주님을 몰랐고, 그래서 주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자였지만, 이제는 주님을 알게 되었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사도됨을 의심하고, 여러 가지로 신앙이 미성숙한 것은 아직 잘 몰라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대로 말하면, 아직 몰라서 그러는 것에 대해, 또는 아직 신앙이 연약하기에 그러는 것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서로를 이해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유익을 줄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서로를 이해해주게 되면, 서로를 위해 손해와 아픔도 참아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옆에 계신 분에게 말해봅시다. ‘이해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유, 우리들이 이 땅에서 신자로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존재와 삶의 분명한 목적을 놓치면 안됩니다.
2)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이웃사랑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3)서로를 이해하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웃사랑이라는 관문을 통과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