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4:7-12절 고린도후서강해17
제목 : 다양하게 일하시는 하나님!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어떤 한 신자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교회 직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에 매달리느라 직분도 감당하지 못하고, 심지어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결국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그 후로 늘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루 둘 멀어지고, 그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많은 배신감을 느끼며 큰 낙심이 몰려왔습니다. 그러자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들 수 있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때로는 실패가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고, 실패가 신앙의 기회가 된다는 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은 실패라는 방법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도 바울은 실패를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실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됨으로 신앙의 큰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다양하게 일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지난 시간, 바울이 자신과 더불어 모든 신자들이 질그릇이라고 말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신자가 되고, 직분자가 되어도 우리 모두는 여전히 질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믿음을 가지고 신앙의 열심을 가진다고 해서 결코 은그릇, 금그릇으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앞으로도 우리는 질그릇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현세적인 특별대우를 해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래야만 세상 사람들이 질그릇된 우리를 통해 우리안에 있는 보배에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모든 신자들이 질그릇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이 보배를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질그릇된 우리를 통해서 보배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들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바울은 사도된 자신 역시 질그릇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라고 말하지만, 어느것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바울의 모습으로 인해서 사도됨을 의심한 것입니다. 즉, 사도라면 질그릇 같을 수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자가 되고, 사도가 되어도 여전히 질그릇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이 자신이 격은 일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들입니까? 8절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일, 답답한 일을 당한 일’ 9절 ‘박해를 받은 일’ ‘거꾸러 뜨림을 당한 일’ 10절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 일(곧 고난을 당한 일)’ 11절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진 일(고난)’을 당했다고 말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바울은 자신의 사역 가운데 격었던 수많은 실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자신이 격은 일들, 특별히 실패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 역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가진 착각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성공과 형통이라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시지, 결코 실패라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착각을 가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에 실패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바울이 사도일리라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시며, 특별히 실패라는 방법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혼자 일하기도 하시지만 우리와 함께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창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혼자 일하는 방법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창조된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일은 우리 인간에게 위임해주셨습니다.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빠르게도 일하시지만 느리게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단9장을 보면,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하나님은 가브리엘천사를 통해서 응답을 주셨습니다. 정말 빠르게 일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한나의 경우는 자식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오래 기도한 후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빠르게도 일하시지만 느리게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의인(믿는 자)을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악인(불신자)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라는 의로운 왕을 통해서 성전을 건축하셨지만, 바벨론의 아닥사스다왕이라는 불의한 왕을 통해서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의인을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악인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동물의 입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등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어리석은 발람선지자를 꾸짖으실 때, 나귀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밖에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부자를 통해서 일하시기도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건강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나병환자와 같이 병든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권력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대로 일하시지만 때로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면서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죄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을 방법으로 삼아 일하시는 분입니다. 이용규선교사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에서는 ‘하나님은 대단히 창의적이신 분’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다양하게 일하시는 분이라는 점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생각, 우리의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왕하 6장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사마리아성이 아람군대에게 포위를 당하게 됩니다. 그 결과 양식이 바닥이 나고, 심각한 기아상태에 빠집니다. 그래서 먹지도 않던 나귀의 머리, 비둘기 똥까지 비싼 값에 팔리게 되고,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잡아 먹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때 왕하7장을 보면, 엘리사선지자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내일 이 맘때 사마리아 성문에서 풍성한 양식을 얻게 될 것’ 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한 한 장군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조롱의 말을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람이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식을 풍성히 얻는 것은 자신의 생각, 자신의 경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람사람들에게 큰 군대의 소리(환청)을 듣게 하심으로 모든 것을 두고 도망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두고간 양식으로 인해 엘리사의 말대로 풍성한 양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 우리가 예측할 수도 없는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마리아성의 장관과 같은 실수를 하면 안됩니다. 즉, 내 생각, 내 방법이 전부라고 여기면 안됩니다. 내 방법이 아니면 안된다고 여기면 안됩니다. 무한하시고, 창의적이신 하나님을 제한하면 안됩니다. 그럴 때, 우리 개인의 신앙생활도, 공동체신앙생활도 더 잘 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실패로도 일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지금까지 참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특별히 하나님은 성공이라는 방법만이 아닌, 실패라는 방법으로도 일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성공이라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갈멜산의 영적 대결을 보십시오! 엘리야는 850명의 이방선지자들과 영적 대결을 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속시원할 정도로 엘리야를 성공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이심이 선포되었습니다. 또, 여리고성을 무너트리는 사건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그 결과 난공불락과 같은 여리고성은 모래성이 무너지듯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을 성공,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또,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그 누구도 상대하지 못한 골리앗을 상대했고, 골리앗을 쓰러트렸습니다. 다윗을 성공,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다윗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목받게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전도여행을 갔을 때,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들을 고치고,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들을 성공, 승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제자로서의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그 밖에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공과 승리라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장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마도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대하는 것이 이런 성공과 승리의 방법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공과 승리라는 방법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정말 중요한 일을 하시고자 할때에 실패라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물론, 실패라는 말은 하나님 편에서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보기에 실패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예를들면,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요셉에게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격게 하셨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당하게 하시고,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하시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하시고..., 이것은 요셉의 인생의 실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실패들을 통해서 요셉을 더 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셨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실패를 통해서 요셉을 애굽나라의 총리가 되게 하시고, 기근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요셉의 실패를 통해서 하신 일들인 것입니다. 또, 출애굽사건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해서 모세와 아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10번의 재앙이 내린 후에야 출애굽을 할수 있었습니다. 물론, 10가지 재앙 자체도 큰 기적이고 승리처럼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9번의 실패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은 애굽사람들에게는 우상에 대한 징벌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실패라는 방법으로 일하신 것입니다. 또, 구약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 끊임없이 주변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북이스라엘은 bc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남유다는 bc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실패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재건하셨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실패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행15장을 보면, 바울이 바나바에게 2차 전도여행을 제안합니다. 즉, 1차전도여행에 다녔던 소아시아 지역을 다시 방문해서 성도와 교회를 견고히 세우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러자 바나바가 바울에게 마가요한을 데리고 갈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마가요한은 1차 전도여행 당시 중간에 포기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마가요한에게 한번더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고 여긴 것입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크게 다툼게 됩니다.(행15:39절 ‘심히 다투어’) 그리고 서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것은 전도팀 입장에서 본다면, 틀림없는 실패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전도여행을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다툼과 분열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로 바울은 실라와 함께 마게도냐로, 바나바는 마가요한과 함께 구브로로 갔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견고히 세우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서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실패로 일하신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누가 봐도 실패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실패의 사건으로 하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용서하셨고, 구원하신 최고의 방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하게 일하십니다. 특별히 성공이라는 방법으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때로는 실패라는 방법으로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더 중요한 일, 더 귀한 일을 하실 때에는 실패라는 방법을 더 즐겨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시말해, 우리를 온전케 하고, 우리는 겸비하게 하고, 우리를 더 나은 신자로 만드시는 일을 하실 때에는 실패라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실패 앞에서 비로서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실패가 결국, 우리 안에 있는 보배를 빛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3.실패를 만날 때!
그렇다면, 우리들이 실패의 순간이라 느껴질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실패라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포기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패라고 느끼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고,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수없이 많은 실패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입니다. 예를들면, 홈런왕의 특징은 누구보다 많이 삼진을 당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성공한 사람들 역시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격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발명왕 에디슨을 아실 것입니다. 그가 축전기를 발명하는 가운데 4만번 정도의 실패를 했을 무렵, 한 친구가 찾아와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러자 에디슨은 ‘지금까지의 실패를 통해서 축전지를 만들 수 없는 수천가지의 물질을 찾아냈네. 난 실패한게 아니라 성공할걸세’ 그리고 에디슨은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 ‘내게는 실패도 필요하며 성공만큼 가치가 있다’ 고 말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생활 가운데 참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실패가 아닙니다. 그 실패로 보이는 순간은 성공을 위한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위인들을 보십시오! 실패가 없었던 위인은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실패했지만, 다시 새롭게 도전한 것이고, 결국, 신앙의 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다양한 실패가운데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다시 일어서,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실패에 관대해야 합니다. 요즘 올림픽을 보면, 국가대표선수들이 참 불쌍해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나친 비난을 받을 때입니다. 누구나 실수할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이 지나친 비난을 받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실패하고 실수한 사람들을 향해 관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실패, 실수를 통해서 더 큰 일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수, 실패한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더 많은 위로와 격려를 줄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실패의 늪에 디딤돌을 던져 줄수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특별히 하나님은 실패라는 방법으로도 즐겨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2)왜냐하면, 실패속에 우리들이 더 만들어지고, 우리안에 보배가 더 빛나기 때문입니다.
3)그러므로 실패라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 도전해야 하고, 실패한 자를 격려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실패라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실패의 순간에도 보배를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