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히11:17-19절
제목 : 시험당한 아브라함!
성도들의 삶속으로
아이들이 7-8살이 되면 학교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적어도 12년 이상 학교에 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여러 가지 과목들을 배우게 됩니다. 예를들면, 국어, 수학, 영어, 역사, 과학, 지리, 음악, 미술, 체육...,등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배우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운 것들을 반드시 정기적으로 시험(test)을 보게 됩니다. 시험을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학생들을 고생시키고, 스트레스 받게 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고생하고, 스트레스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험의 목적은 아닙니다. 시험을 통해서 학생의 학업실력이 얼마나 되는가를 확인하고, 더 나은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험(test)이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우리 모두에게도 다양한 과목의 시험(test)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고난이라는 시험, 슬픔이라는 시험, 가정이라는 시험, 직장이라는 시험, 자녀라는 시험..., 등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목적 역시, 우리의 신앙의 점검과 성숙을 목적하고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시험을 받고, 시험을 통과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시험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도록 합니다. 창22장을 보십시오! 먼저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서 부르십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어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누구입니까? 통한과 눈물의 기다림속에 100세 낳은 아들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누리게 해준 아들입니다. 하나님도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어떤 존재인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2절에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번제는 무엇입니까? 번제라는 것은, 레1:3-9절을 보면, 5대 제사중 하나로서, 짐승의 목을 따서 죽인 후에 가죽을 벗기고, 부위별로 각을 뜬 후 내장과 모든 것을 단위에 모두 불사르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손으로 아들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물론,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 10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그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신앙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을까요? 그것은 창22:12절에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즉,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인 자신을 경외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으셨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과 믿음을 확인해보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고 있는가? 또한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가? 또,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마음과 믿음을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시험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주심으로 그들을 시험하셨고(출15:25절,출16:4절)), 가나안땅에 정착한 이후에도 가나안 거민을 남겨두시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심을 이스라엘백성을 시험하셨고(삿2:22절), 히스기야왕이 부귀영화를 부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바벨론의 사신들을 보내어 그의 마음을 확인하시고자 시험하시고(대하32:31절), 또한 여러 가지 모양을 욥을 시험하셨고, 또, 시편을 보면, 여러 시편의 기자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시험하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렘20:12절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여 그 폐부를 알아보시는 하나님이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시고자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십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지?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많은 고백들이 진실한 것인지?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신앙을 확인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 혼자 좋자고 시험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도 성장해가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시험을 통해서 더 능력있게 되고, 시험을 통해서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26:2절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라고 고백하며, 욥42: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시험은 믿음을 낳습니다. 작은 시험은 작은 믿음을 낳고, 큰 시험은 큰 믿음을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1:2-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으로 시험하시든지간에,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마음과 신앙이 진실되고, 분명함을 확인 시켜드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순종만이 우리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시험을 받을 때에, 우리의 마음과 신앙이 진심함을 어떻게 확인시켜 드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그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받을때에 순종으로 자신의 마음과 신앙을 확인시켜드렸습니다. 순종으로 답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다양한 것을 통해서 우리들을 시험하십니다. 예를들면, 물질로, 배우자로, 자녀로, 사업으로, 건강으로, 낮추심으로..., 등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게 어떤 시험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힘이든 시험일지라도, 시험의 정답은 오직 순종인 것입니다. 즉, 어떤 순간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순종하는 삶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시험의 정답은 순종입니다. 순종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과 신앙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과 신앙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 말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시험을 당할 때, 피할 길을 준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할 길이란 무엇일까요? 도망칠 길을 준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피할 길은 순종인 것입니다. (요나의 경우 풍랑, 물고기 뱃속이라는 시험의 자리에서 피할 길은 순종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시험가운데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순종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순종이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째로, 우리안에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성이란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죄된 성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순종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청하는 순종의 상당부분은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세상 사람들은 원수를 미워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복수하는 삶을 살지만 하나님은 오른빰을 대면 도리어 왼빰도 돌려대는 것을 원하십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내 마음대로 자식을 키우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이 신앙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찾아주는 방식으로 키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은 욕심을 부리고 높은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이 욕심을 버리고 낮은자가 되고 섬기는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순종의 내용이 너무나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순종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순종이 어려운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셋째로, 결과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어떤 결과가 생길 것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순종의 결과에 집착했다면, 예를들면, 이삭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었던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들을 번제로 바친 이후 아들이 없음으로 인해 생길 아픔, 슬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라는 결과에 집착했다면, 그는 결코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한 것입니다. 그 결과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러나 순종이 쉽지 않은 이유는, 그 순종의 결과를 내 방식대로 예측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정직하게 사업을 하면..., 금방 연상이 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또, 회식자에서 술을 거절하면..., 자녀들을 신앙중심으로 양육하면..., 성경적 관점으로 결혼을 결정한다면...., 내년도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 내가 누군가에게 전도를 하면...., 금방 연상이 예측되는 결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에 대한 염려가 순종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산상수훈의 본문입니다. 여러분은 산상수훈이 어떤 본문인지 아실 것입니다. 바로 천국백성의 삶을 다루는 본문입니다. 그리고 그 본문안에 오른빰을 치거든 왼빰을...,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원수를 사랑하라,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라..., 천국백성이 마땅히 순종해야 할 삶의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산상수훈 중간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아십니까? 바로 염려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산상수훈 중간에 염려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 염려가 무엇입니까? 염려는 아직 일어난 일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즉, 결과를 예상했을 때, 생각는 불안한 마음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결국, 결과를 생각하고, 결과에 집착하면, 천국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를들면,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사람과 가축 모든 것을 진멸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사람과 병든 가축은 진멸했지만 살찌고 건강한 가축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백성들의 반발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울왕은 살진 짐승까지 죽였을 때 일어난 백성들의 반응이라는 결과에 집착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생각하고 예측하는 결과에 집착하면 순종하는 삶을 살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길 때 순종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순종을 원하실까요? 여러분! 너무나 잘 아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순종하지 않는 것이 결과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을 앞에 두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순종만 생각하십시오! 왜냐하면, 결과는 우리의 몫이 아닌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리고 오직 우리의 몫은 순종뿐이기 때문입니다.
3.책임지시는 하나님
어느 임금이 한 신하를 불러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우물물을 길어 저기 밑 빠진 독에 가득히 채우시오.” 밑 빠진 독에 물이 채워질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충성스러운 신하는 오직 임금의 명령만 생각하면서 밤낮 물을 길어 날랐습니다. 결국 우물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물 바닥에 무엇인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금덩어리였습니다. 신하는 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임금님, 용서하소서. 독에 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그러나 우물 바닥에서 이 금덩이를 건졌나이다.” 임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겠다고 우물이 바닥나도록 수고했구려. 그대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요. 그 금덩이는 그렇게 순종하는 신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값진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모르는척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순종으로 인한 모든 손해와 아픔을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몇주전에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또다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기록해 두었을까요? 이것이 오늘 본문의 가장 중요한 결론입니다. 그것은 아픔과 손해를 감수한 아브라함을 책임져 주신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후에 다시 만난 이삭은 순종 이전의 이삭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의 손해와 아픔을 책임지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책임져주심에 대한 약속을 믿고 어떤 시험 가운에서도 순종할 수 있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지금 신앙의 학교를 다니고, 하나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시험하실 것입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과 믿음을 확인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낙제생이 되지 않기 바랍니다.
2)결과는 하나님의 몫, 순종은 우리의 몫임을 알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께서는 그런 여러분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며, 풍성함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책임져주심을 믿고 늘 하나님의 원하심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참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