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TV > 설교말씀 > 우리는 여전히 질그릇입니다!(고린도후서강해16)
HOME 로그인회원가입
교회안내 설교말씀 목장 및 양육 선교사역 부서소개 사랑방

  사랑 i TV  
     설교말씀 
     찬양영상 
     행사영상 
     성가대찬양 
     찬양소개 
     QT영상 





설교말씀
    > 설교말씀 >>  수요설교
 
[수요설교] 우리는 여전히 질그릇입니다!(고린도후서강해16)
 본문말씀 : 고후4:7-12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6.8.3
조회 : 7,320   추천 : 0  
본문 : 고후4:7-12절  고린도후서강해16
제목 : 우리는 여전히 질그릇입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2015년도 후반기 부터 생겨난 가슴 아픈 신조어가 있습니다. 바로 수저계급론(─階級論)입니다. 즉,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재산과 배경)가 사회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신조어입니다. 예를들면, 태어날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고 사는 사람을 ‘금수저’ 라고 표현을 하고, 정반대로 태어날 때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부모로부터 아무것도 물려 받지 못하고, 아무런 배경이 없이 고생하며 사는 사람을 ‘흙수저’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얼마전 지하철 구이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하던 19살 청년이 지하철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때로, 죽은 이 청년을 애도 하면 또 다시 이슈가 되었던 것이 흙수저 논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금수저입니까? 흙수저입니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1) 연결 –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의 환경, 배경, 가진것과 전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질그릇’ 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여전히 질그릇입니다.
 오늘은 7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7절을 보면,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는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도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질 그릇과 같은 존재’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질그릇은 무엇입니까? 오직 진흙으로만 구워 만든 그릇입니다. 겉 표면에 아무런 윤기도 없고, 꾸며지지 않아 볼품도 없고, 투박하고,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그릇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기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또는 오늘날 흙수저 처럼 정말 자신이 가진게 없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배경이 없는 사람임을 말하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질그릇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도됨을 변증하기 위함입니다. 이미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목적중 하나는 자신의 사도됨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자비량사역을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지난 주에 살펴본대로, 바울이 사역에 실패함..., 등을 근거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고 공격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됨을 의심하는 또 한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라고 말하는 바울의 모습이 질그릇처럼 너무나 볼품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예전의 모습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세웠다면 그의 모습이 질그릇과 같이 보잘 것 없을리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이 바울을 세웠다면, 아볼로처럼 말도 대단히 잘해야 하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 잡아야 하고, 모세처럼 외모에서도 신비로움이 묻어나야 하고, 모세가 죽기 전까지 몸이 쇠약해지지 않은 것처럼 강건한 육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하는 일마다 형통이 있어야 하고, 무슨 일이든 능력으로 행해야 하고..., 사도만이 가지는 뭔가 특별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보기에는 바울에게서 그런 특별한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고후10:10절을 보면,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는 말입니다. 글은 잘 쓰는데 말은 잘 못한다고, 설교는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바울의 외모에서도 영광스럽거나 신비스러운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울만 아는 육체의 가시가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다 알만한 가시였습니다. 그리고 그 육체의 가시가 사역에도 걸림이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역에도 실패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며 정말 사도가 맞는가? 라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결국,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생각한 사도의 모습은 적어도, 보통 사람과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까? 잘못된 것 같습니까?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같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1차적으로 목회자들이 금그릇이기를 바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박사학위도 있고, 유머도 있고, 얼굴도 잘생기고, 강철 체력도 가지고 있고, 설교도 잘하고, 찬양도 잘하고, 다재다능하고..., 등 목회가 금그릇이기를 바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잘못된 생각은, 2차적으로는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면, 더나가서 신앙의 열심을 가지면 금수저, 금그릇이 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특별대우를 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안되던 일을 되게 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고난과 시련이 피해가고, 아프지도 않고..., 등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하나님은 현세적이고 세상적인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런 약속을 주신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현실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바로, 마13장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알곡과 가라지는 서로 다른 밭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밭에서 같은 환경속에서 자라게 됩니다. 즉, 우리가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신앙의 열심을 낸다고 해서 다른 밭으로 옮겨 심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 또는 신앙의 열심을 가진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해 특별대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열심에 걸맞는 특별대우가 없으면 쉽게 원망하고,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예수를 믿어도, 그리고 목사가 되어도 여전히 질그릇 일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금그릇으로 바꾸어주지 않고, 집사, 권사,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다이아몬드 그릇으로 바꾸어주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질그릇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이 말하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사명자로 살아가지만 우리 모두는 여전히 질그릇입니다. 그래서 여전이 죄의 유혹도 받고, 마음에 상처게 생기도 하고, 육체가 병들기도 하고, 시련과 고난도 격고, 실패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질그릇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2.그러나 보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저에게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의 나음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질문에 대해 바울은 7절에서 다음과 같이 답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자의 나음은, 질그릇이 다른 것으로 바뀌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진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배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풀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왜 질그릇으로 바꾸어 주지 않는가?’입니다.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를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열심을 가질수록 금그릇으로 만들어 주신다면 세상 사람들은 금그릇 안에 있는 보배에는 관심이 없고, 금그릇인 우리에게만 관심을 갖을 것입니다. 마치,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를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같을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40일간 머물러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모세의 얼굴에는 신비한 광채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세의 얼굴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아온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신비한 광채가 나는 모세의 얼굴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행14장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앉은뱅이를 고치게 됩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이 보기에 바울과 바나바는 금그릇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처럼 여기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바울과 바나바를 금그릇으로만 보고, 그 안에 있는 보배는 사람들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과 능력을 행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금그릇으로만 보았지, 예수님안에 있는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금그릇이 되게 하신다면, 세상 사람들은 금그릇된 우리들에게만 관심을 갖고, 우리 안에 있는 보배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점은 이미 모세, 바울,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여전히 질그릇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질그릇된 우리가 아닌, 우리안에 있는 보배,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현실, 같은 환경, 같은 조건 속에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예를들면, 세상 사람들처럼, 어떤 일에 실패도 하고, 낙심된 일도 만납니다. 때로는 몸이 아프기도 하고, 자녀들로 인해서 속상한 순간도 격게 하십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세상 사람들은 시42편의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라는 스스로의 생각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예를들면, 절망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절망하지 않고, 낙심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낙심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몸이 아플 때에도 세상 사람들처럼 예민하게 굴지 않습니다. 또한, 배우자와 자녀가 속을 썩여도 사랑으로 품어줍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그 이유는 질그릇된 우리안에 ‘보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현실, 같은 형편, 같은 상황속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을 보면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을 갖겠습니까? 질그릇인 우리이겠습니까? 아니면 질그릇된 우리안에 있는 보배이겠습니까? 당연히 보배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서 질그릇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7절에서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들을 질그릇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들에게 현세적이고 세상적인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으시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모두 아멘하기를 바랍니다.

  3.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질그릇된 우리를 통해 보배를 발견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가진 보배에 관심을 갖을만한 삶을 살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이 보배에 관심을 갖을만한 삶을 살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있는 삶을 살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 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다름이 있는 삶’입니다. 먼저 레11:45절을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룩이라는 말은 다르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가 다르듯, 우리와 세상 사람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청하는 삶의 핵심인 것입니다. 또, 마5-7장을 보면, 산상수훈의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들이 있습니까? 팔복이 있습니다. 사실 그 본문은 복많는 방법이 아니라, 복안에 들어온 사람들의 삶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뭡니까? ‘가난, 애통, 온유, 주리고 목마름, 긍휼, 마음이 청결, 화평, 박해’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이 뭡니까? 세상 사람과 다름입니다. 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니’입니다. 뭡니까? 이것 역시 다름입니다. 그 외에도 마음의 미움이 살인이다, 마음의 음욕이 간음이다. 오른빰을 치거든, 겉옷을 달라거든, 오리를 가자거든..., 또, 원수를 사랑하라! ..., 등의 모든 말씀의 핵심은 다름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세상사람과 다름이 있는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안에 있는 보배에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다름이 있습니까? 가장 쉽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확인해보면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얻어지는게 아니라, 다름에서부터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감옥안에서, 고난을 받으면서도 기쁨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를 당하지만 기쁨이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다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삶에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즉, 여러분의 생각, 계획, 삶의 방법, 목표, 말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달라야 합니다. 또, 다름이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안에 있는 보배를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질그릇입니다.
 2)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보배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3)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배를 발견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Share

 
 

번호 말씀제목 보기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자 조회 추천
2533 [주일설교] 다시 걷기-변화된 삶으로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50 0
2532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6 0
2531 [특별새벽기도] 소망하기!(고난주간5) 롬8:18-25절 최용민목사 2026.4.3 43 0
2530 [특별새벽기도] 사랑하기!(고난주간4) 롬5:6-11절 최용민목사 2026.4.2 609 0
2529 [특별새벽기도] 한 걸음 내 딛기!(고난주간3) 잠16:1-9절 최용민목사 2026.4.1 488 0
2528 [특별새벽기도] 방향 묻기!(고난주간2) 시119:57-64절) 최용민목사 2026.3.31 658 0
2527 [특별새벽기도] 기억하라!(고난주간1) 시77:1-12절 최용민목사 2026.3.30 350 0
2526 [주일설교] 거룩한 멈춤! 집중!(고난주간)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3580 0
2525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110 0
2524 [수요설교] 다시 세워진 신앙!(사사기강해15)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6 2142 0
2523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5 107 0
2522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습관(習慣)!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2306 0
2521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15 0
2520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60 0
2519 [수요설교] 원칙(原則)이 있는 신앙!(사도행전강해96)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185 0
2518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227 0
2517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결단!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365 0
2516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176 0
2515 [수요설교] 위로받고 위로하고!(사도행전강해96)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154 0
2514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252 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