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히11:13-16절
제목 : 신앙의 선배들의 믿음!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조선후기 방랑시인이었던 김삿갓(김병연(金炳淵))의 일화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김삿갓이 길을 가다 해가 저물어서 더 이상 길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큰 집이 눈에 띄어 그 집에 가서 하룻밤 유하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여기는 여관이 아니니 객줏집으로 가 보시오’ 그러자 김삿갓은 주인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이 집에서 몇 대나 살아왔소’ 라고 물었고, 주인은 16대를 계속해서 살아왔다고 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김삿갓이 또 물었습니다. ‘그럼 그 16대가 다 생존해 계십니까?’ 주인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야 다 세상을 뜨셨지요’ 그러자 김삿갓은 빙그레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집도 여관과 다를바가 뭐가 있소. 그리고 또 당신도 언젠가 갈거니 같은 처지에 하룻밤만 쉬어 갑시다.’ 집주인은 재치 있는 김삿갓의 말을 듣고서 하룻밤 유숙하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다 나그네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나그네의 마음으로 살던 신앙의 선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도 나그네임을 확인하고, 나그네다운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의 시작은 “이 사람들은”입니다. 과연 누구를 말할까요? 오늘 본문 전 본문에서 소개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말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넓은 의미로는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펴본 믿음의 선배들 곧 아벨, 에녹, 노아와 그리고 계속해서 살펴볼 신앙의 선배들, 그리고 성경에는 소개하지 않지만 각 시대를 살았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살았다는 것입니까? 다시 13절을 보면, 믿음을 따라 살았고,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외국인과 나그네와 같은 마음으로 곧 나그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믿음의 사람들이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살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땅에서 자신은 나그네라는 정세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아벨이 끊임없는 유혹속에서도 더 나은 제사와 더 나은 삶을 살수 있었던 원인은 다른 무엇이라 아니라 자신이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에녹 역시 세상 사람들과 철저히 구별된 모습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수 있었던 이유도 자신이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노아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근거로 방주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갈바를 알지 못한체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믿음을 지키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온갖 고난과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얺았고, 목숨도 아까워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나그네라는 자기 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몇 몇 사람을 예로 구체적으로 봅시다. 먼저,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창23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헷족속 사람들에게 죽은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창23: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헷족속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라고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나그네라는 자기정체성과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야곱을 보십시오! 창47장을 보면, 야곱은 가족들과 함께 애굽땅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애굽왕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이 애굽왕에게 다음과 같이 소개를 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야곱 역시 자신이 나그네라는 정체성과 나그네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또,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라는 칭찬과 모든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역시 나그네라는 자기정체성 곧 나그네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즉, 대상29:15절을 보면,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물론, 이러한 나그네라는 자기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산 것은 구약시대 신앙의 선배들만은 아닙니다. 신약시대에 살던 신앙의 선배들 역시 나그네라는 자기 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예를들면, 사도 바울이 위대한 사도의 삶을 살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근거 역시 나그네라는 자기 정체성 곧 나그네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3:20절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 교회 대표자였고,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한 베드로 역시 나그네라는 자기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2:1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이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벧전1:1절을 보면,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말했습니다. 즉, 당시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나그네라는 정체성 곧 나그네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을 살아갈 때 나그네라는 자기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갖는 일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그네 의식을 가지게 될 때, 비로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것, 그 이유는 나그네라는 자기 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이 나그네라고 인정을 하던 안하던 우리 모든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나그네라는 자기정체성 곧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이 땅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2.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는?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을 목적지로 삼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세상에서 재미를 보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세상에서 인기를 얻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세상이 주는 기쁨을 목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을 무엇을 목적으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나그네된 우리들의 목적지가 어디라고 말을 합니까? 바로 ‘본향’ 이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말해, 천국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에 다다르기 까지 우리는 나그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을 목적하는 삶은 무엇일까요?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을 목적하는 삶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주인이며 통치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목적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이 가치있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에녹을 보십시오! 그가 300년간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더 정확히 말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나그네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이 세상을 살면서 다른 어떤 목적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는 목적으로 가지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천국의 원리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이미 여러분과 살펴본대로, 우리의 목적지는 본향 곧 천국입니다. 그 말은 비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천국에 속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3:20절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본향이 천국이고,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우리들이 죽어서 천국가는 날만 기다리며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나그네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도 천국의 원리대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천국과 지옥이 이렇게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천사의 안내를 받아 먼저 지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생각했던 지옥과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가 본 지옥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했더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흉직하게 말라 기운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그들 손에는 1m나 되는 젓가락이 들려져 있었고, 아무리 음식을 먹으려 해도 먹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흉하게 말라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사람이 천사의 안내로 천국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본 지옥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산해진미가 가득해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똑같은 1m짜리 젓가락이 들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이유는 서로 먹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천국을 본향삼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사랑이고 섬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천국의 원리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은 결국,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섬김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예로 한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창13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조카 롯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하란땅을 떠날 때에 그의 조카 롯도 함께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롯의 집안이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가축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결과 두 집안이 함께 거주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분가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한 말은, 창13:8-9절을 보면,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고 양보를 합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더 큰 어른입니다.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땅을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게 양보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고 섬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즉, 이 세상나라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본향인 천국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로 세상 나라에 살지만, 우리는 천국의 원리인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나그네된 우리의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즉, 하나님의 기쁨을 목적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랑과 섬김이라는 천국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나그네된 신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나그네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3.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의 복!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16절입니다. 즉,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행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나님으로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겠다는 말이고, 나그네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성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기자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을까요? 그것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그네로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손해와 아픔, 부끄러움, 비난을 받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손해와 아픔이 오더라도 나그네의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우라 아야꼬씨의 소설 ‘빙점’을 아십니까? 이 책은 기독교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원죄를 다룬 소설로 인간의 악함과 나약함을 보여주는 매우 좋은 책입니다. 그런데 아야꼬씨가 소설로 유명해지기 이전에 아주 가난한 주부였다고 합니다.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해가는 것이 어려워 조금이라도 가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작은 구멍가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자 점점 손님들이 늘어나 크게 번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농담삼아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보, 우리 가게가 커지는 것은 좋은데 이러다간 옆집 가게들이 망하는거 아니요’ 이 말을 들은 아야꼬씨는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날부터 물건을 조금씩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심지어 옆에 가게로 소개까지 했다고 합니다. 나그네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장사는 안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시간이 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리고 완성된 작품이 바로 빙점입니다. 빙점을 통해서 아야꼬씨는 일본의 최고의 소설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나그네의 삶을 살아간 아야꼬씨에게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갚아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조금도 손해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칭찬하실 일이고, 더욱 복된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의 삶을 갈등하거나 망설이거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나그네의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 모두는 나그네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이 세상이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2)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이며, 사랑과 섬김입니다.
3)그리고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칭찬하시며 복된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남은 인생도 참된 나그네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