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4:3-6절 고린도후서강해15
제목 : 그리스도의 종 된 우리!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19c초 스코틀랜드에 한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사는 대단히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목회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가 늘지 않았고, 심지어 최근 몇년 동안 새로 나온 교인이라고는 로버트라는 어린 소년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몇 안되는 교인들이 목사에게 문제가 있어서 부흥이 안된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목사의 귀에 들려졌고, 그 말이 목사에게는 대단히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회에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 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로버트라는 소년이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겠어요.’ 이 말에 목사는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그 후 정말 그 소년는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을 구원한 훌륭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로버트 모펫입니다.(남아프리카선교를 창설한) 그리고 이 로버트 모펫을 양육했던 목사는 비로서 , 자신은 종일 뿐이고,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이 자신은 단지 하나님의 종일 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의 종임을 확인하고 충성된 종의 삶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그리스도의 종
먼저, 3절을 봅시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복음이 가리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복음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소극적인 이유로는 4절에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사단이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는, 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바울 자신과 신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각 심령을 찾아와 주시고, 각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셨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각 사람을 찾아와 주지 않으시고,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신다면, 누구도 구원을 받을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 모두는 감사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우선 지금 여러분이 주목하실 것은,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역에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역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들이 계속 살펴보고 있는 사도권에 대한 의심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했습니다. 예를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방문할 것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안지켰다, 바울은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바울이 자비량하는 것을 보며 돈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바울은 사도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추천서나 증명서가 없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도권을 의심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울의 사역 실패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고후2:12절을 보면, 바울이 드로아에서 사역을 할 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걱정하는 마음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바울은 사역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전해진 것이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생각에는 ‘정말 하나님이 세운 사도라면 사역에 실패하겠는가?’ 라는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바울의 흠을 잡으려고 했고, 꼬투리를 잡으려 한 것입니다. 우리식대로 말하면, 하나님이 세운 목사라면 교회가 부흥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라고 공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과 더불어 자신의 사도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역의 실패, 또는 열매 없음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안하고는 사도된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사람을 구원하고, 자신이 능력이 없어서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는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은 단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을 전파하는 것 뿐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6절에서 ‘어두운데서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곧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을 구원하고,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바울은 자신이 사람을 구원하고 안하고를 결정하는 주권이 없고, 단지 자신은 구원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종일뿐이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하는 것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종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와 같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는 지팡이로 많은 능력을 행했습니다. 물을 피로 변화게 했고, 재앙을 내리게 했고, 홍해바다를 가르게 했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했고..., 그러나 지팡이 자체에서 능력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손에 붙들렸기 때문에 능력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기 때문에 능력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일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사도바울만 하나님의 종일까요? 또는 목회자만 하나님의 종일까요? 여러분은 아닐까요? 어떤 분이 목회자는 종님들이고, 성도는 종이라고 하는걸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똑같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냐고요? 고전6:20절에서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 주고 산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종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 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주인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 답게 살고 있습니까?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마5장을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등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씀들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식과 확신이 없이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늘 명심하고, 하나님의 종답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우리는 충성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종된 우리들에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결과에 대해서 자유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고 지치고, 절망스러울 때가 언제입니까? 언제일까요? 일이 많고, 고되서.., 아닙니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성장하지 않을 때 지치고 실망스럽습니다. 또는, 우들이 정말 열심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되지 않을 때입니다. 또는, 우리가 누군가를 전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거절을 당할 때입니다. 교회에서 교사로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아이들이 달라지지 않고, 심지어 안 나올 때입니다. 남편, 아내, 부모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력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지치고 절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 사람관계, 사업...,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지치고 절망하는 것은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인 것입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교역자생활을 할 때에도 늘 갖었던 부담이 결과에 대한 부담이었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교회를 10년간 섬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지금도 가장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다면, 결과에 대한 마음입니다. 더욱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늘 결과만 생각하고,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결과에 대해서 자유하기가 쉽지 않고, 그로 인해서 더 나은 하나님의 종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결코 결과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또한, 결과만으로 우리를 평가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은 마25장의 달란트 비유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 듯이 주인이 먼 곳을 가기전 3명의 종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5,2,1달란트를 맡깁니다. 그리고 5,2달란트 맡은 종들은 성실히 일해서 2배로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을 땅에 묻어두고,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오랜 후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5,2달란트 받은 종들에게는 칭찬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 밭은 종에게는 책망과 꾸중을 하셨습니다. 이제 묻습니다. 주인이 5,2달란트 받은 종들을 칭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결과물 때문이 아닙니다. ‘착하고 충성됨’ 이라는 마음과 자세, 또는 과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왜 꾸중을 했을까요? 그것 역시 결과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악하고 게으름’ 이라는 자세와 마음, 또는 과정 때문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 결과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마음과 자세, 과정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1달란트 받은 종이 칭찬받을 만한 종이 되지 못한 것은, 주인에 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무슨 말입니까? 주인이 못된 사람이고, 결과만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이 칭찬받는 종이 되는 것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바울은 결과는 자신의 몫이 아닌,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말이 어디에 있냐고요? 고전3:6-7절을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 말합니다. 결과는 자신들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도 바울은 자신은 단지 전파하는 것뿐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듯 바울은 결과로부터 자유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칭찬받는 종의 삶을 살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칭찬받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결과에 대한 집착’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종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결과에 대해 자유해야 한다’ 는 점을 살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을 대단히 무책임한 말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결과에 대해서 자유하다는 말은 결코 우리의 책임이나, 우리가 감당해야 몫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몫은 무엇일까요? 둘째, 우리의 몫은 오직 충성뿐 입니다. 좀 강하게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일을 할 때, 결과까지 만들어 내겠다, 또는 책임지겠다고 마음을 품는 것이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고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직 충성됨입니다. 즉, 주어진 사명, 주어진 역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됨을 하나님은 요구하시고,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4:2절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1970년대 영화 ‘빠삐용’을 아실 것입니다. 그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는, 빠삐용이 꿈속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입니다. 빠삐용은 꿈속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관이 말합니다. ‘넌 유죄다’ 빠삐용이 말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재판장이 다시말을 합니다. ‘그래 너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너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most terrible crime by human being)를 저질렀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한 죄(wasted life)이다’라고 하자, 빠삐용은 수긍하고 체념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신앙의 빠삐용은 아닙니까?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니 하나님의 종으로서 낭비하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즉,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성됨 없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소원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3.서로의 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 종으로서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점을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절대 잊으면 안되는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서로에게도 종노릇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하나님에게만 종이 아니라, 서로에게도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바울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 말을 합니다. 또, 갈5:13절에서도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종노릇 해주어야 합니다.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종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 종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면서도 서로에게 왕노릇하고, 주관자노릇하고, 대장 노릇하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서로에게 왕노릇 대장노릇 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 종의식이 없기 떄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종이라고 확신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도 종노릇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종 다운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본문과 삶
1)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종입니다.
2)그러므로 늘 하나님께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3)뿐만 아니라, 서로에게도 종노릇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종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