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히11:8-12절
제목 :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리빙스턴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분이 선교중 잠시 고국에 들어올 일이 있었고, 때마침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리빙스턴은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하며 격었던 고생스러웠던 일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그런데도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갈수 있는 용기와 힘이 어디에서 생깁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바로 그 약속이 내게 가장 큰 힘입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로 돌아간 리빙스톤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프리카 선교사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세상을 떠날 때,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었고, 그 옆에는 마28장이 펴있었고, 20절 구절에 옆에 ‘존귀하신 분의 약속의 말씀’ 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리빙스톤은 평생,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산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았던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아브라함과 사라의 확신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가진 하나님께 대한 확신은 무엇이었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먼저, 아브라함이 가진 하나님께 대한 확신은 무엇일까요? 먼저, 8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부름을 받을 때에’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믿음의 조상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 속에는 후손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창12장을 보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런데 계속해서 8절을 보면,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신의 고향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왜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고향을 떠났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가진 하나님께 대한 확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후손과 땅의 약속을 분명히주셨다는 점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사라가 가진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1절을 보면, 사라는 나이가 많아서 단산했다고 말을 합니다. 무스 말입니까? 아이를 낳을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라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고 말을 합니다. 도대체 사라는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라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브라함과 사라가 가진 하나님께 대한 확신은 무엇입니까?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더 간단히 말한다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약속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 봅시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약속들이 있다는 점과 하나님께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점을 확신하십니까? 먼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된 약속들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주셨다는 점을 확신하십니까? 언제 무슨 약속주었냐고요? 여러분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찬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신약, 구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신 약속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같이 생각해보십시다. 예를들면, 영원히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겠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 우리를 모든 불의한 것으로부터 지키시겠다,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겠다,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채우시겠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 우리가 자백하면 죄를 용서하시겠다, 십일조를 드리면 하늘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복주시겠다, 순종하는 자에게 1000대까지 복을 주시겠다, 무거운 짐을 맡기는 자에게 위로와 쉼을 주시겠다, 우리의 전도를 통해서 사람을 구원 하시겠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겠다..., 등 그 외에도 대단히 많은 약속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이러한 약속들이 여러분에게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럼 여러분에게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약속을 지키실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주신 모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라고 말을 합니다. 또, 12절을 보면,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밍마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지켜 주심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채우심이라는 약속을 경험한 다윗, 위로와 쉼이라는 약속을 경험한 엘리야, 기도의 응답이라는 약속을 경험한 히스기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이루시겠다는 약속을 경험한 요셉,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약속을 경험한 나아만, 의지하는 자에게 이기게 하신다는 약속을 경험한 다니엘, 몇날이 못되어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경험한 오순절 초대교회 성도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경험한 수없이 많은 성도들...., 등 물론, 여러분 역시, 지금까지 믿음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많이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중에 어떻게 모든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물론, 약속을 다 지킬 수 없는 우리의 입장이나 우리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약속을 지키실 수 있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생각이 결과가 되게 하시고, 원하는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모든 약속을 지키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7:9절에서 모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즉,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된 약속을 많이 주셨음과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2.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만으로 그들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의 사람으로 소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약속을 주신 하나님,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실 하나님께 대한 확신에 반응과 삶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어떤 반응과 어떤 삶의 결정을 했을까요? 먼저, 아브라함에 반응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8절을 보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후손과 땅에 대한 약속을 지켜주실 것을 확신함으로 자신의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과연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는 일이 쉬웠을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땅을 주신다고는 말씀하셨지만, 어디를 주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4000년전의 사회는 씨족을 중심으로한 부족사회로서, 자신의 부족을 떠나 유랑생활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부족의 족장인 자신의 아버지를 이어 부족의 대표가 될수 있었으로, 아버지에게 물려 받을 땅도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은 보장된 미래를 가지고 있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더욱이 고향과 집을 포기하고 무모한 도전을 하기에는 75세라는 그의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아브라함이 짐을 챙겨 유랑생활을 한다고 말을 했을 때,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이 ‘어디로 갈건가?’ ‘가서 뭘 할껀가?’ 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대답했을 것입니다. ‘글세 모르겠는데.., 그렇지만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갈걸쎄’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무엇이라 말했겠습니까? 분명히 미쳤다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 정도만 생각을 해봐도 아브라함의 순종은 결코 간단하고 쉬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확신하고, 고향, 친적, 아비의 집을 떠나는 반응과 삶의 결정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라의 반응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사라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여 어떤 반응을 나타냈을까요? 11절을 보면,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라는 분명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그 약속을 하나님이 지키실 것을 확신했기에 희망을 가지는 반응, 아이를 갖기를 포기하겠다는 삶의 결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쉬운 반응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늙고, 기력이 쇠하여 가는 자신의 몸을 보고 느낄 때마다 확신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아이를 낳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노력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봅시다. 여러분도 분명히 성경에 기록된 약속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약속이라는 점을 확신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만으로 여러분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따를 반응과 삶의 결정들이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머릿속으로만 기억하면 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약속하시면서 ‘요구하신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시면서 지금 있는 곳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떠나는 것이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했고, 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하나님은 우리들이 기도할 때,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우리를 도우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특별히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더욱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 저것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게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쌓을곳이 없도록 복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이게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직 잘모르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지 않는 사람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지 않고 사는 사람은 기쁨이 없습니다. 작은 일에도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또, 욕심 가운데 살게 됩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늘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10명과 그들의 말에 귀 기우린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두려움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또, 존 번연의 ‘천로역정’ 이라는 보면, 주인공 크리스천이 ‘절망 거인’에 의해 ‘절망의 성’에 갇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이 크리스천이 절망의 성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약속의 열쇠’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지 못하고 놓치게 되면, 절망의 거인, 염려의 거인, 두려움의 거인, 불행의 거인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이런 거인에게 붙잡히지 않으려면, 또는 이런 거인에게서 빠져나오려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확신하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3.믿음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만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정말 대단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소개하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모습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들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었고,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기는 했지만 여기 저기 방황했고, 거짓말로 위기를 극복하려 했고, 자식에 대한 약속을 받았지만, 이스마엘을 그리고 자신 노종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라는 하나님이 90살에 아들을 주신다고 했을 때, 웃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다면, 믿음의 조상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아브라함이나 사라 말고, 다른 사람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호칭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예를들면, 요셉, 에놋, 모세, 다니엘과 그 친구들, 에스더..., 등 어쩌면 아브라함과 사라보다 더 믿음의 조상이라는 호칭이 어울려 보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가 어울리지 않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믿음의 조상으로 내세우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상을 섬기던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이끄신 하나님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처음부터 약속을 전적으로 붙잡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은 그들이 만들어낸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이끄시고, 그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믿음의 자리로 이끌어가고 계시고,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분임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다양한 삶을 신앙의 훈련을 삼아 우리를 이끌고 만들어 가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의 모든 순간이 신앙의 훈련임을 기억하고,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붙드는 여러분이 됨으로, 여러분 모두도 믿음의 조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2)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듦으로 더 나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