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4:1-2절 고린도후서 강해14
제목 : 사도됨을 증명하려는 이유!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즉,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모두 공경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군사부일체라는 말은 이미 옛날이 된지 오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권위부재’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부모의 권위가 사라진 시대이며, 교사의 권위가 사라졌으며, 어른의 권위도 사라진 시대입니다. 그 결과 더 이상 자식들이 부모의 훈계를 받지 않고,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젊은이들이 어른을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결과는 마땅히 인정되어야 권위가 사라지면서 사회가 흔들리고, 정말 상상 할 수 없는 참혹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권위가 추락하고 사라지는 것은 세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안에서도 주의 종 곧 목회자의 권위가 추락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말씀이 힘을 잃게 되고, 결국,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도로서의 권위가 추락되어 있던 바울이 사도됨의 증명을 통해서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의 종 곧 목회자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사도의 권위를 찾으려는 이유
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성을 증명하는 내용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더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어떤 방법으로 증명하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먼저, 바울은 자신을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구원을 받고, 신앙이 성장했다는 점 곧 자신을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앙의 유익을 얻었다는 점을 통해서 자신이 사도임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하시고자 하는 일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일이며 세우시는 일인데, 바로 자신이 사람을 구원하시고, 사람을 세우시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자신이 사도라는 분명한 증명으로 말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바울 자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서 사도됨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또, 지난 주간에 살펴본 대로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예를들면, 겸손한 삶, 낙심이 있을 만한 삶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삶, 항상 하나님만을 나타내고 증거하는 삶..., 등이었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안팎으로 사도됨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얼마든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요구하는 실력과 능력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실력과 능력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세상적인 방법이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주 하나 묻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자신의 사도됨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증명하려고 했을까요? 다르게 말하면, 바울은 왜 자신의 사도라는 권위를 되찾으려 하는 것일까요? 사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참 치사한 일 아닙니까? 자신을 사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성도들에게 자신은 사도가 맞다고 증명하려고 하는 것..., 마치 어린 아이 앞에서 어른이 자기를 증명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참 치사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는 대단히 괴로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 성도가 되고, 양육과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도가 아니라고 말한 일 그 자체만으로도 괴로운 일이고, 그 일을 생각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고,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도 대단히 마음이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은 왜 그토록 사도됨을 증명하려고 했을까요? 다르게 말하면, 바울이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존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억울하고 괘씸해서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일까요? 자기를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자신을 위함이 아닌,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위함인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참 많이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늘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양육하고, 그들을 위해서 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고, 권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즉, 바울이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권면을 해도 받아 드려지지 않는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책망을 받아들이고, 권면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책망과 권면을 받아들이고, 신앙의 회복과 성숙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울이 그토록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려고 한 것은,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기 위함이고, 또, 사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이유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 신앙의 위대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성경을 기록하고,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많은 교회를 세우고...,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울의 위대함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울의 위대함은 어떤 것도 자신을 위해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도리어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했습니다. 예를들면, 자유를 사용하는 것, 고기를 먹는 것, 마시는 것, 어떤 계획과 결정..., 모든 것을 다른이의 유익을 위해 바울은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신앙의 위대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바울의 위대함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역시 모든 것을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 누구를 위해 하십니까? 물론, 당연히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고전10:31절의 말씀처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는 말씀처럼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하나님을 위한 일입니까? 바울은 고전10:31절 이후에 32-33절에서‘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 말을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말은, 우리의 이웃에게 유익을 줄만한 뭔가를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바울처럼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할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주의 종의 권위를 인정하라!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침체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이 시대 한국교회가 침체하는 이유를 2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권위주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라는 직분을 계급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급을 통해서 성도들을 지배하려는 너무나 잘못된 자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목회자의 권위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교회 성도들이 목회자들을 하나님이 세운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목회자를 교회가 채용한 직원 정도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권위주의는 나쁘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교회안에 권위주의가 있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목회자(하나님이 세우신 리더)의 권위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권위가 무너지면 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면 가정이 올바르게 세워질 수 없고,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면 올바른 교육이 될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의 권위를 인정해야 할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롬13:1-2절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이 말은 목회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나라의 대통령, 정치인, 교사, 부모, 어른..., 등을 포함한 말입니다. 핵심은 무엇입니까? 권세자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히13:17절을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함으로 얻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더 잘 복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권세자들, 그리고 목회자들의 권위를 인정하라고 말씀하신 의도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나라, 가정,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끌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도는,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훈련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더욱 복종하는 신자가 될수 있다는 유익을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분이 목회자들의 권위를 인정할 때, 여러분의 신앙의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여러분이 목회자의 권위(하나님이 세운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가 되겠습니까? 신앙의 권면을 받아 들이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여러분의 신앙의 유익이 없게 되는 입니다. 이 점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유익을 전혀 얻지 못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실력이 부족해서 일까요? 예수님 잘 못 가르쳐서 일까요? 아닙니다.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그럼 그들은 왜 신앙의 유익을 얻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한낮 나사렛 출신이며, 목수의 아들로 밖에는 안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그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권면으로도 어떤 신앙의 유익을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점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그토록 증명하고,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제 잠시 제가 엎드려 절 받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제가(교역자들 포함) 하나님이 세운 주의 종, 목회자라는 권위를 인정하셔야 합니다. 정말 엎드려 절 받기입니다. 물론, 실력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고, 잘하는 것도 없고,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저를 하나님이 세운 주의 종 곧 목회자로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신앙에 큰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질 수 있고, 교회가 부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는게 여러분에게 어떤 인정, 존경,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아닙니다. 물론, 조금은 그런 욕심이 들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하는 가장 긍극적인 이유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저와 사랑하는교회 교역자들을 권위를 인정하고, 목회자의 권위를 세워주는 지혜로운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3.어떻게 권위를 인정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면 좋을까요? 3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목회자에게 순종하십시오! 물론, 인간적인 순종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할 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회자의 권면에 순종하는 것이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함에도 순종하지 않다면, 목회자의 권위가 서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 성도들은 목회자에 대한 순종을 잘 못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신앙상담의 경우입니다. 종 종 성도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상담하러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듣고 몇가지를 말해줍니다. 예를들면, 결단하십시오! 기도하는 이에 힘쓰십시오! 희생하십시오! 포기하십시오! ..., 등 하지만, 순종하는 성도들을 찾아보기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가 상담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상담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가기 위함이 아닌, 이미 자신이 정해놓은 결정에 동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성도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권면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지혜로운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목회자가 즐거움으로 사역하도록 도우십시오! 히13:17절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목회자의 비유를 맞추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럴 필요없습니다. 목회자가 목회에 최대한 집중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나라 70-80% 목회자는 지나친 목회업무에 탈진한다고 합니다. 예를들면, 너무나 많은 설교, 교회의 모든 일을 다하고(교회 청소, 주보제작, 뒷정리, 장 보고...,등) 본질적인 목회보다 비본질적인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면 목회에 집중하기는커녕 도리어 쉽게 지치고 탈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회자의 권위가 세워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하나님이 세운 사람임을 인정한다면, 목회자가 본질적인 임무에 집중하도록 함께 하는 것이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녀들이나 사람들 앞에서 목회자 험담을 하지 마십시오! 참 나쁜 행동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 앞에서 목회자를 험담하고, 사람들에게 목회자를 비난 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도리어 갈6: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씀처럼 여러분이 목회자들과 좋은 것을 함께 하려는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리고 자녀들에게 목회자와 좋은 것을 함께 할 것을 가르치십시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모든 권세, 특별히 목회자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우리는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2)그럴 때 목회자와 성도들과 교회에 큰 유익이 있습니다.
3)그러므로 앞으로 목회자읫 신앙의 권면에 순종하고, 목회에 집중하도록 도우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저와 교역자들의 권위를 세워주는 지혜로운 신자가 됨으로,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큰 유익을 얻고,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지고 부흥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