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4:1-2절 고린도후서강해13
제목 : 삶이 중요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자기개발서 부분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마시멜로 이야기’의 한 부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햇살 뜨거운 어느 여름날 오후, 개구리 세 마리가 나뭇잎에 올라탄 채 유유히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개구리 한마리가 벌떡 일어나 결심했다는 듯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너무 더워, 난 물속으로 뛰어들 거야!’ 다른 개구리들은 그 용기에 감탄하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뭇잎에는 몇 마리의 개구리가 남아 있었을까요? 아마 자신있게 2마리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뭇잎에는 여전히 3마리의 개구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이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결심도 중요하지만, 결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결심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는 것, 아는 것,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 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실천이고, 삶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도바울은 그 무엇보다도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소원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삶이 중요합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기 이전에 여러분이 한가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계속해서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 변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2절 마지막 부분의 ‘스스로 추천하노라’ 라는 말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고후3:1절을 보면,‘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겠느냐’ 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해줄 만한 누군가의 추천서에 대한 요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은 누군가의 추천서가 아닌, 자신이 스스로를 사도로 추천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 엉뚱한 말같지만 대단히 의미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자신이 사도라는 점을 어떤 방식으로 증명했는지 기억나십니까? 먼저, 바울은 자신을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구원을 받고, 신앙이 성장했다는 점 곧 자신을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앙의 유익을 얻었다는 점을 통해서 자신이 사도임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하시고자 하는 일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일이며 세우시는 일인데, 바로 자신이 사람을 구원하시고, 사람을 세우시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자신이 사도라는 분명한 증명으로 말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바울 자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서 사도됨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얼마든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요구하는 실력과 능력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실력과 능력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세상적인 방법이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어떤 방식으로 증명하려고 하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어떤 방법일까요? 바로 ‘사도된 자신의 삶’을 통해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는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 외부적인 근거를 통해서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고자 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사도됨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다시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이 사도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자신의 삶을 통해 사도됨을 증명하고자 했을까요? 그것은 삶이야 말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7:16-18절에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열매는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가를 증명하는 최고의 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나무는 무엇을 가르킬까요?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는 무엇을 가르킬까요? 결국, 각 사람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근거로 자신이 사도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결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구원받은 자이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현관문에 붙은 교패, 또는 집사 권사 임직식에서 받은 임직패, 아니면 세례증서, 아니면, 교회안에서 여러분이 취득한 다양한 수료증, 또는 어떤 봉사의 경력...., 과연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임과 그리스도인됨을 증명해 줄수 있을까요? 요즘 신천지 이단들은 기존교회에 침투해서 짧게는 3년에서 길게 10년간 교육도 받고, 임직도 얻고, 봉사의 일도 하고..., 그 후에 신천지의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임직패, 수료증, 봉사의 경력이 여러분의 구원받음과 그리스도인됨을 증명이 될수 있을까요? 적어도 하나님이 여러분이 고작 그런 방식으로 구원받은 자이며,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이 증명되기를 바라실까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들이 삶으로 우리들이 구원받은 자이며,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이 증명되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 점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한 예수님의 꾸중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왜 그들을 꾸중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일까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일까요? 종교적 열심히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사람들이고, 종교적 열심도 꽤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꾸중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에 상응하는 삶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삶으로 증명한 것처럼, 우리의 구원얻음, 그리스도인됨 역시 다른 무엇이 아닌, 우리의 삶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2.사도된 바울의 삶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살펴볼 것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기 위해 말하고 있는 삶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3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은 겸손했습니다. 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긍휼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도 자신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근거한 것이고, 더욱이 자신이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 역시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근거한 것이고, 또한 자신이 사도가 된 후에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자신의 실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얻은 구원, 사도됨 사도로서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힘과 자격, 실력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은 바울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겸손한 삶을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 이러한 겸손함이야 말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야 할 가장 우선되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되는 삶은 무엇입니까? 능력있는 삶이고, 자랑이 있는 삶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실 때, 단 한번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하실 때, 마11:29절을 보면,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참고로, 온유와 겸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자신이 겸손한 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 법을 만드신 분이 법에 순종하시고, 재판장이신 분이 죄인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고...,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겸손한 삶을 살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어떤 능력을 행하고, 어떤 놀라운 결과를 이루었다 해도 여러분은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실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어떤 가지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지가 맺은게 아닙니다. 쉽게 확인시켜드립니다. 물과 거름은 어디에 줍니까? 뿌리에 줍니다. 결국, 가지는 뿌리로부터 양분을 공급받기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열매를 맺으십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실력에 결과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소망하는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고후4:8절을 보면,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을 합니다. 또, 고후4:16절에서도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지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울이 낙심하지 않았다는 말속에는 낙심할 만한 일이 많이 있었다는 말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사도직을 감당함에 있어서 한순간도 낙심을 떼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바울의 사역속에 낙심할 만한 일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점을 우리의 입장에서 확인해 봅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 낙심하게 됩니까? 가장 최근에 신앙적인 낙심을 한 것이 있다면 어떤 이유에서 입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10년을 목회하면서 성도들에게 신앙의 성숙과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일로 인해 낙심이 들때가 종 종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기도할 때, 순종할 때, 헌신 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때, 구별된 삶을 살아갈 때...,등 낙심하게 됩니다 그렇지요? 기도 안하고, 순종 안하고, 헌신 안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섬기지 않고, 구별된 삶은 안 산다면, 인간적인 낙심은 있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낙심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사도답게 살았기에 그의 삶속에는 끊임없이 낙심할 만한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낙심스러운 순간에도 낙심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연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낙심이 있을만한 삶를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난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삶이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명이 되는 삶인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만을 나타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2절을 보면,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도로서 부끄러움이 될만한 삶을 버렸고, 뿐만 아니라, 사도로서 부끄러운 것, 부족한 것들을 사람들에게 감추고 속이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자신을 과장하고, 자신을 들어나게 하려고 하고, 도리어 자신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고후12장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천국에 다녀온 일에 대해서는 도리어 자신을 감추고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사람을 아노니’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핍박하던 자였다는 점을 들어냈고, 뿐만 아니라, 롬7장을 보면, 자신안에 있는 죄성까지로 사람들에게 들추어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의 부끄러운 것까지 감추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들어내고, 하나님만을 나태내고, 그래서 사람들을 자기 앞에 세우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세우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예를들면, 정말 은혜로운 간증을 들으면 간증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끄러운 일, 챙피스러운 일들을 숨기지 않고 말을 합니다. 그 이유는 그래야 하나님을 더욱 들어나고 빛이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훌륭한 간증가이며 복음선포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거짓교사들은 자신의 부끄러운 것들을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들어냈습니다. 이유는 사람들을 자기 앞에 세우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을 들어내고, 자랑하기 위한 신자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들어내고 나타내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나타내고 들어나게 하는 간증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결국, 바울은 자신의 겸손한 삶, 낙심된 일속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삶, 하나님만을 나타내는 삶을 통해서 자신이 사도임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 나의 구원얻음, 그리스도인됨을 증명할 것이 아니라, 바울과 같은 삶을 통해서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3.실천이 필요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도 바울과 같은 삶을 살수 있을까?’ 입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실천’입니다. 캐나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억만장자가 된 깁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억만장자가 되자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비결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깁슨은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첫째, 술을 마시지 말 것. 둘째,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할 것. 셋째,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말 것’ 이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이 ‘그건 누구나 다 아는 거잖아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깁슨은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와 당신이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왜? 열매가 없을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하는지 몰라서 일까요? 아닙니다. 적어도 1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라면, 언제 어디서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열매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마시멜로 이야기에 소개된 뛰어들겠노라 큰소리만 치는 개구리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다이어트 계획을 빈틈없이 세웠지만 체중계의 눈금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운동은커녕 넥타이도 매지 못한 채 허겁지겁 출근하고 있지 않습니까? 날마다 새벽을 깨우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했건만 혹여 주일 아침조차 급하게 교회로 향하지는 않습니까? 매일 성경을 읽겠다고는 결심하지만 성경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삶에 열매가 없는 이유는 결국, 행동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바울과 같은 삶이 있기를 원한다면, 실천하는 일에 힘쓸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보시고, 삶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삶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2)특별히 바울처럼 겸손한 삶, 낙심하지 않는 삶, 하나님을 들어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그리고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끊임없는 실천으로, 바울과 같이 삶으로 여러분의 신자됨을 증명할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