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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에녹의 믿음!
 본문말씀 : 히11:5-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6.7.8
조회 : 10,549   추천 : 0  
본문 : 히11:5-6절, 창5:18-24절
제목 : 에녹의 믿음!  
  
  성도들의 삶속으로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클래어 루스 부스(Clare Boothe Luce)는 ‘누구의 인생이든지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고 말을 했습니다. 예를들면,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를 해방시킨 대통령’이라는 문장으로 요약이 될수 있고,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삼은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요약되고, 성경의 인물인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요약되며, 예수님께서도 스스로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선한목자’이라고 요약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라고 요약이 될까요? 혹시, 꿈과 비전없이 사는 사람, 불순종하는 사람, 게으른 사람, 욱하는 사람, 욕심많은 사람..,등은 아닙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도리어 참 사랑이 많은 사람, 겸손과 섬김의 사람, 기도하는 사람, 믿음 좋은 사람, 본받고 싶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 감사하는 사람..., 등으로 여러분의 삶이 요약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에녹은 히11장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 이라고 요약이 되며, 창5장에서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고 그의 인생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연결 -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에녹과 같이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으로 요약되기를 소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에녹의 믿음
 우리들은 지금 계속해서 믿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확인합시다! 믿음이 무엇일까요? 믿음이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삶을 결정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반응과 결정이 있을 때, 믿음이 있는 것이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 에녹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에녹이 가지고 있었던 확신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6절을 보면, 에녹은 2가지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계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하나님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지거나, 음성을 들을수 있는 분 아니고, 다시말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분이 아니고, 더욱이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더 더욱 하나님이 안계신 것 같아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계심을 확신했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상주시는 분 곧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심판하실 분이라는 점을 확신했다는 말입니다. 물론, 에녹은 하나님이 계시고, 상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에녹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녹은 어떤 반응으로 어떤 삶의 결정을 했을까요? 먼저, 창5:22절에서는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이라는 반응이 있었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300년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65세까지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1차적으로는 ‘창을 던지는 사람’ 이라는 뜻이며, 또 다른 뜻은 ‘그가 죽으면 보내리라’ 는 뜻입니다. 즉, 므두셀라가 죽으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계시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은 그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반응이 있었고, 오늘 본문 5절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이라는 결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녹을 믿음의 사람,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믿음으로 에녹이 하나님의 계심과 하나님의 심판을 확신했고, 그 결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반응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결정들이 있었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녹을 우리들에게 소개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모두를 향해서 에녹이 가진 믿음을 요구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심과 심판하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매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요구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십니까? 매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2.하나님과 동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들이 생각해 볼 것은,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제가 이렇게 묻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이신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도대체 에녹을 무엇을 어떻게 살았기에 하나님은 기뻐하셨을까요?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삶을 살았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에녹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5:21-23절을 보십시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365세를 살았더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에녹이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하며 한 일이 무엇입니까? 단지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잠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과연 에녹은 300년간 몇 명쯤 낳았을까? 18c 러시아의 어느 여인이 40년간 출산을 했는데, 쌍둥이를 16번, 3쌍둥이를 7번, 4쌍둥이를 4번 낳아 총 69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과연 에녹은 몇 명 쯤낳았을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몇 명을 낳을까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의 삶이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일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속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특별함을 기뻐하시기 보다는, 우리의 평범함속에서 기뻐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에녹이 어떻게 살았기에 하나님이 그토록 기쁘셨을까요? 그것은 에녹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창4-5장의 족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창5장은 아담으로부터, 아벨대신 낳은 셋으로 이어지는 족보입니다. 그리고 이 족보안에 에녹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녹은 아담으로부터 몇 대 손인가요? 7대손입니다. 그런데 창4장에도 똑같이 족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4장에 나오는 족보는 아담에서 가인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족보입니다. 그러면 아담으로 시작해서 가인의 7대손은 누구일까요? 바로 ‘라멕’입니다. 이것이 창4-5장의 족보가 나타내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즉, 창4장은 가인의 7대손인 라멕을 강조하고, 5장은 셋의 7대손인 에녹이 강조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에녹과 라멕은 아담의 7대손으로 동일한 시대를 살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녹은 어떤 시대에 살았던 사람일까요? 이제, 라멕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창4:19절을 보면, ‘두 아내를 취하였다’ 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 곧 창조질서를 거역했음을, 하나님의 뜻이 거역되는 시대였음을 말합니다. 또한 창4:23절을 보면 라멕은 자신의 두 아내들에게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다’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창상이나 상함이라는 것은 작은 상처를 말합니다. 그런데 실수로 자신에게 작은 상처를 낸 어린아이까지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4:24절을 보면 자신이 악한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도 당당히 자랑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시대를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먼저, 창4:17절을 보면 ‘가인이 성을 쌓았다.’ 라고 말을 합니다. 왜 성을 쌓았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들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해야 할 만한 위험과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창4;20-22절을 보면 3종류의 조상들이 소개됩니다. 즉, 육축 치는자, 악기 연주하는자, 날카로운 기계만드는자 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전쟁의 도구들을 만드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사는 시대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라멕의 시대이며, 에녹이 살던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에녹이 살던 시대를 한마다로 한다면 창6:5절입니다. 즉,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 곧 전적으로 부패한 시대였고, 그래서 하나님이 분노하시고, 심판을 결정할 수 밖에없었던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라멕(당대 사람들)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당대 사람들이 가던 죄와 불의의 길을 그들과 동행하지 않습니다. 비록 에녹은 너무나도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생각이 달랐고, 그의 마음이 달랐고, 그의 행동이 달랐고, 그의 목표가 달랐고, 그의 삶이 달랐습니다. 즉, 구별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에녹의 구별된 삶을 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십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다시 묻습니다. 에녹처럼 구별된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다름이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 남편과 다릅니까? 세상 아내와 다릅니까? 세상 부모와 다릅니까? 세상 자녀와 다릅니까? 세상 젊은이들과 다릅니까?..., 등 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이런 다름이 없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름이 믿음이고, 다름이 신앙의 진짜 실력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할까요? 성경을 잘 몰라서입니까? 100% 아닙니다. 환경 때문입니까? 누구 때문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핑계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의 에녹을 보십시오! 그 시대는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함에 대해 얼마든지 핑계거리를 만들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핑계거리만 찾는 삶이 아닌, 구별된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다름이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핑계거리를 먼저 생각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보겠다는 마음과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왜 구별되게 살아야 해’ 여러분!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과 의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예배, 기도, 순종, 헌신..,)도 마찬가지이고, 우리의 구별됨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의지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에녹처럼 구별된 삶,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이 주시는 상(보상)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에 대해서입니다. 즉, 신앙의 보상에 대해서입니다. 사실 이 주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반복되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도 ‘상주심’ 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보상은 어떤 것일까요? 먼저, 여러분이 기대하는 신앙과 믿음에 대한 보상은 무엇입니까?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대하는 보상은, 일차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물질적 보상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적 보상, 자녀가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배우자 만나 결혼하는 보상, 성공의 보상, 안전에 대한 보상, 형통에 대한 보상..,등 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을 보며, 에녹이 가진 믿음의 보상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음”으로 생각하는 분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은 것은 신앙의 보상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이 사실은 쉽게 증명될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4절은 믿음으로 살아간 아벨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믿음을 살다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천국에 올라간 에녹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히브리 기자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우리들에게 말하기 위함입니다.  뭘 말하려고 할까요? 에녹은 믿음이 좋았기 때문에 죽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으며, 아벨은 믿은 좋지 않아서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믿음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기록된 것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정말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 죽고 사는 방식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신앙과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 성공과 실패의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보상은 현세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그런것들을 조금도 안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시지만, 그러한 보상은 본질적인 보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덤, 서비스일뿐)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과 믿음에 대한 보상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에녹의 경우로 말한다면, 힘들고 벅찬 현실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기쁘시게 하는 것,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본질적인 보상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게 보상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동행하는 자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리, 구별된 삶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의 보상을 받고 살아가는 것임을 알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닙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각 사람을 심판(보상)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2)그러므로 우리는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3)즉, 어떤 순간속에서도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인다운 삶 자체가 참된 보상임을 알고, 매일의 삶, 매일의 현실이 어떠하든 상이되고, 보상이 되는 삶을 놓치지 않는 이 시대의 에녹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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