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3:16-18절 고린도후서강해12
제목 : 우리는 자유자 입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아주 유명한 조각상이며 건축물이 있습니다. 바로 ‘자유의 여인상(Statue of Liberty)’ 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의 여인상은 원래 프랑스에 있었던 것입니다. 1884년에 프랑스에서 완성되었고, 잠시 프랑스 파리에 있다가 1885년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선물로 미국으로 옮겨져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자유의 여인상을 자세히 보면, 양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독립선언문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의 여인상이라는 이름 그대로 자유와 희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자유의 여신상 한 모퉁이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를 바라는 그대여, 가난에 찌들어 지친 이여, 나에게 오라. 고난에 처해 의지할 곳 없는 자들이여, 나에게 오라. 나는 황금의 문가에서 횃불을 들리라.’ 그러나 자유의 여신상에 간다고, 또는 미국에 간다고 진정한 자유를 얻겠습니까?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1) 연결 – 오늘 본문은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경이 말하는 자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자유에 대해서
오늘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먼저 한가지 묻습니다. ‘구원받았다는 말은 무엇일까요?’혹시, 죽어서 천국에 갈수 있는 보장을 받았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았다고 고백하는 구원은 고작 죽어서 천국가는 보장 정도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구원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은 크게 4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첫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의 옮김이 구원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해, 사망의 자리에서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말을 합니다. 둘째는, 신분의 변화가 구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놀랍고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사명으로의 초대입니다. 더 멋지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우리를 동참 시켜주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사건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그리고 넷째로, 우리들이 오늘 살펴볼 ‘자유를 얻음’ 이 구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유가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17절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라는 말은 결국, 자유를 얻음이 바로 구원얻음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자유의 사전적인 의미는, 1)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또는, 2)법률에서 말하는 자유는, 법이라는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전이 정의하는 자유라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자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생각하는 자유 역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예를들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등 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자유는 무엇입니까? 사전이 말하는 자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와 혹시, 다른 내용이 있습니까? 그러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던 자유는 어떤 것일까요? 여러 가지 개념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육체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즉, 인간의 영혼은 대단히 소중하지만, 육체는 영혼을 담아두는 그릇(포장지)에 불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육체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육체적인 자유인 것입니다. 결국,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와 결과적으로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려는 자유? 곧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죄와 죄의 결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죄와 죄의 결과에서 결코 자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에 대해 자유한 사람이 되었고, 죄의 결과에 대해서도 자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갈5:1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와 죄의 결과에서의 자유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자유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둘째,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자유자가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근거하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세상 사람들에게 자유가 없어 보이고, 우리 믿는자들에게만 자유가 있는 것 처럼 보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역시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보다 세상의 안믿는 사람들이 더 자유가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화를 내지 못하고, 속이지 못하고, 술과 담배를 못하고, 험담을 못하고, 세상과 타협을 못하고, 욕심을 내지 못하고, 주일에 마음대로 여행도 못가고..., 등 믿음을 갖은 이후로 우리들의 삶에는 못하는 것들, 하면 안되는 것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들, 또는 내가 원하지는 않지만 하라고 하시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세상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세상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며 삽니다. 누가 더 자유자인 것처럼 보입니까? 당연히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자유자가 아니라, 우리들이 자유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참고, 갈5: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또, 고전7:22절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자유자라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자유가 없습니다. 어떤 자유가 없을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자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유 또는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는 자유가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우리들이 진정한 자유자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자유는 무엇입니까? 마음대로 사는 그런 자유가 아닙니다. 죄와 죄의 결과에 지배받지 않는 자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우리가 얻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들이 하나님께 받은 자유는 정말 큰 축복인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이 말하는, 바울이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가지로 설명을 드립니다. 첫째는, 우리의 자유를 칭찬과 상 받기 위한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종 종 초신자들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스스로 선택할수 있수 있는 결정권)를 주셨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주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죄를 짖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칭찬과 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자유의지가 없고, 지시한 대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만드셨다면, 칭찬과 상이 있겠습니까? 예를들면, 로봇청소기가 온 집안을 청소했다고 해서 칭찬을 주고 상을 주십니까? 아닙니다. 입력된 프로그램 대로 움직인 것 뿐입니다. 전혀 자신의 의지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칭찬과 상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손주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잘 닦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처럼 칭찬해주실 겁니다. 그리고 손주가 한 일에 비해 더 큰 상을 줄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의지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칭찬을 주시고, 상을 주시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방종과 방탕의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자유의지의 가치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남쪽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고 너무 지나치게 마음대로 사는 것 같다.’ 라고 말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자유자라고 말하면서, 그 자유를 칭찬과 상받기 위한 기회가 아니라, 방종과 방탕의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참고, 이단들의 특징은 자유를 방탕의 기회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갈2:4절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께 자유의지를 선물로 받으셨습니다. 즉, 무엇이든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오늘 이 저녁에 이 자리에 나올 수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분의 삶에 모든 순간이 자유의지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십니까? 칭찬과 상받기 위한 기회로 사용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방종과 방탕의 기회로 삼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일까요? 당연히 칭찬과 상받음의 기회로 삼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유의지를 칭찬과 상받의 기회로 삼으려는 노력을 통해서 여러분의 신앙은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칭찬과 상받을 위해 자유의지를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는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고전9:19절을 보면,‘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 말했습니다. 일예로, 우상의 고기문제를 생각해봅시다. 우상의 고기를 먹는 것은 죄일까요? 아닐까요?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상의 고기를 먹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상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유를 누구를 위해 사용했습니까? 자신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유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고전8:9절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선물로 받은 자유를 바울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이 바른 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를 남의 유익이 되도록 사용해야 합니다. 또, 죄가 아닌 이상 여러분이 어떤 옷을 입고 다니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또, 죄가 아닌 이상 여러분이 무엇을 하던지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셋째, 나를 더욱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변화시키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하시고자 하는 일, 기대하시는 일이 주님의 형상과 같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주님이 주신 자유로 우리를 더욱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변화시켜가는 일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리, 여러분이 겪는 모든 일들을 여러분의 변화와 성숙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가 방종과 방탕의 기회가 아닌, 하나님께 칭찬과 상받는 기회가 되게 하시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을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변화시키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신 목적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진정한 자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3.진정한 자유자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은 책임을 묻는 분’ 이라는 점에 대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예를들면, 물질, 건강, 은혜, 은사, 능력, 기회, 그리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결코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신다’ 라는 점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십시오! 맡긴 달란트에 대한 책임을 묻습니다. 자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자유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칭찬과 상받음의 기회로 사용했는지, 이웃을 위해서 사용했는지, 나를 변화시키는 일에 사용했는지..., 등 반드시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본문과 삶
1)죄에서의 자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2)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상 받는 일, 이웃을 위해, 나의 변화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3)무엇보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 시간 이후로 진정한 자유자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