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3:12-15절 고린도후서강해11
제목 : 우리들이 따라가야 할 것!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어느 교회에 부흥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했는데 100명 정도가 모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번 부흥회에서는 유명연예인을 모시고 간증집회를 했다고 합니다. 몇 명이 모였을까요? 약 500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도들이 설교보다는 간증을 더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연예인을 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기는 하겠지만, 설교보다 간증을 좋아하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신자들이 설교보다 간증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미가 있기 때문일까요? 은혜가 되기 때문일까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설교는 목회자가 준비하여 전하는 말씀이고, 간증은 어떤 사람이 경험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 예를들면, 기적이나 신비한 일들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설교보다는 간증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기적이나 표적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모세의 얼굴이 빛나는 현상에 더 관심이 많았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붙들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
오늘 본문은 구약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수건을 쓴 사건을 배경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구약의 본문인 출34장을 보도록 합시다. 먼저,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모세 자신이 깨트린 돌판과 같은 모양의 돌판을 준비하여 시내산에 오를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28절을 보면, 모세는 40일을 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두 돌판에 새겨주셨습니다. 그리고 29절을 보면, 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리고 30절을 보면, 아론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남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모세에게 가까이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자 31절을 보면, 모세가 아론과 백성들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후 32절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한 후 자신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그리고 34절을 보면, 하나님을 대면할 때에는 수건을 벗었고, 나온 후 수건을 벗은채로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35절을 보면, 말씀을 전한 후에는 다시 수건을 쓰고 있었습니다. 다시 간단히 정리해봅시다. 모세가 수건을 벗을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님께 나갈 때와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입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수건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합니다. ‘과연 모세는 평상시에는 왜 수건을 쓰고 있었을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출34:30절을 보면,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14절입니다. 즉,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입니다. 즉,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고함 때문에 수건을 벗을 수 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말씀을 받고나면 얼굴에 신비스러운 광채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신비한 광채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전한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항상 있을수 없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사려졌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한가지 걱정이 든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에 광채가 나는 신기한 현상 때문에 듣고 있으며, 자신의 얼굴에 광채가 사라지면 당장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놓아버릴 완고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자신의 얼굴에서 광채가 사라진 것을 보여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수건을 쓰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어떤 신비한 현상 또는 기적을 더 따르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이 점은 광야 40년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속에서 얼마든지 확인할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를 원망하고 불신앙의 모습을 들어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마실 물을 주었을 때에는 신앙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가 먹을 양식이 없어지자 그들은 또다신 불신앙의 자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적처럼 만나라는 양식을 주었을 때 또 다시 신앙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못가 고기를 못먹는다고 원망하며 또 불신앙의 자리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기적적처럼 메추라기 고기를 먹게 하시자 또 다시 신앙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가나안 사람들의 강성함을 보고 절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서 애굽을 섬기자는 극단적인 불신앙의 자리로까지 나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신앙이 흔들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눈에 보이는 신기한 현상, 기적들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비와 기적을 따르던 완고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역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말씀보다는 눈에 보이는 특별한 뭔가를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바울의 사도됨의 증명을 기적이나 신비의 방법으로 증명해주기를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적을 따르는 신앙 및 그러한 방법으로 사도됨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자 한 것입니다.
2.그렇다면 올바른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신앙일까요? 그리고 무엇으로 나의 그리스도인됨을 증명해야 참다운 증명일까요? 분명한 것은 기적을 따르는 신앙은 결코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16:4절에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떤것이 올바른 신앙일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신앙이 올바른 신앙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야 말로, 나의 그리스도인됨의 가장 중요한 증명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기적이나 신비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분명히 기적이 있는 종교입니다. 구약, 신약 성경안에는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를들면, 100세에 아들을 낳게 하신 것, 3일간 흑암만 있게 하신 것, 홍해바다를 갈라지게 한 것,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것,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 태양이 멈춘 것, 풀무불속에서도 지키신 것, 사르밧 과부의 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았던 것, 불치병자들이 고침받는 것,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물이 포도주가 된 것,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은 것, 보리떡 5개와 물고기2마리로 5000명을 먹인 것..., 등 성경은 기적과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인해서 기적과 신비한 일은 있습니다. 제가 경험했고, 여러분도 경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얼마든지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이유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하나님께 기적을 행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일까요? 또는 기적 자체가 목적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참됨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붙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추구하고, 기적을 목적하고, 기적을 따르는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될수 없고, 뿐만 아니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수도 없고, 신앙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는 당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께 대한 놀라운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소문입니까? 무슨병, 특별히 불치병까지 고치셨다더라, 귀신을 쫓아 내셨다더라, 기적을 행하셨다더라..., 등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더 보기를 원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다양한 문제에도 기적을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따른 것입니다. 심지어 요6장의 말씀을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까지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임금이 된다면 기적으로 가득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같이 기적이나 표적을 보며 예수님을 따르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에게 등을 돌렸고, 심지어 돈 몇푼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 성난 군중이 되었습니다. 즉, 이적과 표적이 그들의 신앙에 참된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을 부인하고 못난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주님을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비약하나면 영생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적과 표적, 어떤 신비한 것들을 추구하는 신앙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추구하고 따라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추구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래야 합니다. 그 이유를 2가지로 말씀 드립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 믿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어느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실 것과 땅을 선물로 주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롯을 믿음으로 살았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말씀을 추구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말씀을 추구하고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할 때, 우리의 신앙이 더 성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유다왕 요아스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7살이라는 최연소에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스는 왕으로서 유다나라를 신앙으로 잘 통치했습니다. 예를들면, 요아스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전을 보수하며, 백성들을 신앙으로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나이에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갈수록 좋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왕하12:2절을 보면, ‘여호야다가(대제사장)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 라는 말이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요아스는 여호야다를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고 따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고 따르는 일을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 신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이 추구하고 따라야 할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고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더 올바르고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복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구체적인 제안!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고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편안한 신앙생활을 꿈꾸지 마십시오! 여러분! 사람들인 하나님의 말씀보다 기적과 신비를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일은 편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편한 신앙생활, 편안한 신자의 삶을 꿈꾸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살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좁은 문, 좁은 길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경을 매일 매일 읽고 묵상하십시오! 즉, 성경을 읽는 거룩한 습관을 갖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계의 통계를 보면, 매일 성경을 읽는 사람이 15%이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 읽는 사람이 18%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한번도 읽지 않는 사람은 67%나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혹시 그 67%부류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성경을 읽는 거룩한 습관이 있으십니까? 좀 쉽게 숫자적인 얘기를 해봅시다. 여러분은 하루에 성경을 얼마나 읽으십니까? 1시간은 읽으십니까? 30분은 읽으십니까?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고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셋째로, 순종의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말씀을 추구하고 따르는 삶이 될수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말씀을 추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어느날 D. L. 무디(D. L. Moody) 목사님과 동역자인 R. A. 토레이 목사님과 함께 시카고의 높은 전망대에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대화를 하던중 무디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보게 난 하나님이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한다해도 뛰어 내릴 생각이네!’ 이 농담같은 말안에 무디 목사님의 순종의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순종의 의지를 가지고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얼마든지 우리를 위해서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2)그러나 우리가 기적을 추구하고 따르는 것은 원하지 않으십니다.
3)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추구하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삶, 곧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고 따르는 올바르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