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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믿음이란 무엇인가?
 본문말씀 : 히11:1-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6.6.17
조회 : 10,705   추천 : 1  
본문 : 히11:1-3절
제목 : 믿음이란 무엇인가?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를 신용사회라고 말을 합니다. 신용사회라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근거로 더욱 행복한 사회가 될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용, 또는 신뢰가 깨진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될수 없습니다. 가정은 더욱 그렇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믿고, 아내는 남편을 믿으며, 자식은 부모를 믿고, 부모는 자식을 믿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관계를 통해서 가정은 더욱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더욱 필요로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신앙이라는 영역입니다.  
  
1) 연결 - 오늘 우리들이 살펴볼 내용이 바로 믿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우리가 생각하는 믿음?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속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는 신앙의 용어이지만 정확하게 그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은혜, 섬김, 신앙, 예배, 사랑, 영생, 섭리, 찬양, 은사..., 등 이렇듯 우리들이 신앙생활속에서  자주 사용하지만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가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용어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내 말로 정리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역시,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누군가 여러분에게 믿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해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보통 신자들이 생각하는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믿음을 자기암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입으로 된다~ 된다~  잘될거야~ 잘될 거야~ 라고 말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고 확신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닌, 긍정적 사고, 또는 좋은 습관일 뿐입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믿음을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우리들이 종종 기도할 때, ‘주실줄 믿습니다!’ 라고 기도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으니까 달라는 것입니다. 또는 설교시간에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할 때 아멘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멘으로 믿음을 표현했으니 그 축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받아내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으로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실재로 존재하는 분, 천지를 창조하신 분, 전지전능하신 분, 온 세상을 심판하실 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 등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믿음으로 생각을 합니다. 맞습니다. 이 정도로 믿음을 이해해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갖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존재하심, 천국과 지옥, 최후심판, 하나님의 사랑..., 등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라는 믿음을 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한, 자기암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 더나가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만 온전한 믿음 정의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성경이 말하는 믿음?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특별히 믿음장이라고 불리우는 히11장이 말하려는 믿음의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요? 먼저, 1절 말씀을 봅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혹,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이 말씀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자신이 바라시고 소원하시는 것은 반드시 그대로 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OK(결정)하신 모든 것이 OK(결정)가 되어지는 것, 또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결과가 되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계속해서 3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고 말합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요? 이 말씀은 온 세상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라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고, 설득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계획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내고야 마는 분이시지만, 그 계획을 이루실 때, 강요나 억압이 아닌 우리의 삶에 개입, 간섭, 설득하심으로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반응과 결정을 요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리가 반응하고 삶을 결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결국, 히11장이 말하는 믿음이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삶을 결정해 가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다시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반응이며 결정입니다. 반응과 결정이 없다면 바른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마치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과 같다는 말과 일치합니다. 어느 집사님이 주일에 예배를 안드리고 등산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발을 헛딛어 그만 낭떨어지로 떨어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살기 위해서 손과 발을 허우적 대가, 나뭇가지를 붙잡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위를 보니 올라 갈수도 없고, 아래를 보니 내려갈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위기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문뜩 무슨 일을 만나든 기도하라는 말씀이 떠올라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 ‘뛰어내리라 내가 받아주마’ 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답니다. 순간 마귀가 자신을 죽이려는 속임수로 알고 다시 기도했답니다. 하나님이시면 다시 음성을 들려 주십시오! 그때 또다시 ‘뛰어내리라 내가 받아주마’라는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이때 집사님이 다시 기도하기를 위에서 밧줄을 내려주시면 안됩니까? 라고 기도를 했고, 하나님은 여전히 뛰어 내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잠시 이 집사님은 위를 쳐다보며 이렇게 외쳤답니다. ‘거기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이 집사님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익히 잘 알고, 기도해야 함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은 반드시 반응과 삶의 결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점은 히11장을 보면, 가장 분명히 나타납니다. 여러분! 히11장을 보면, 각 시대를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아벨, 에녹, 노아,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등 많은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노아는 하나님이 심판주이시고,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방주를 만드는 말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기생 라합은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애굽나라와 광야에서 행하신 일을 듣고,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이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여리고에 정탐온 이스라엘의 정탐군들을 숨겨주고, 도망갈 길을 열어주는 말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결국,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말씀에 반응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 묻습니다. 여러분 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합니까? 기억못하십니까? 기억 못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머리가 정말 나쁘던지, 아니면, 설교를 제대로 안들었던지, 아니면, 안나왔던지, 아니면, 지난 주일에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 곧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묵상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난 주일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지는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끊임없이 그 말씀에 반응했다면 주일 말씀을 기억하지 못할까요? 결정과 반응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반응의 차이입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외부적인 자극에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외부적인 자극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사망 진단을 내리기 위해 동공반응(또는, 항문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사람은 동공이 빛에 반응을 보이지만, 죽은 사람은 동공이 빛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건강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반응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냄새, 소리, 온도, 자극..., 등에 반응이 빠릅니다. 그러나 반대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반응이 적거나 느려지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곧 믿음이 좋은 사람이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을 잘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즉, 믿음이 좋은 사람일수록 반응이 분명한 것입니다.

  3.왜 반응이 안될까?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도 알고, 신앙의 연수도 많은데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이 잘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집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말씀에 반응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비유로 책망하셨습니다. 마11:17절을 보면, ‘너희를 향하여 피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례요한이 회개할 것을 선포해도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이 천국잔치에 초대를 해도 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생각, 자신이 원하는 삶을 고집부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응하는 것이 믿음이고,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역시, 우리의 억척스러운, 소 힘줄 같은 고집 때문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삶을 고집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고집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에 반응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기도해라, 말씀을 묵상하라, 사랑하라, 용서하라, 섬겨라, 전도해라, 예배해라...., 해도, 꼼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사는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영적인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우리들이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고집이듯이,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 역시, 영적인 고집때문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특별히 우리들은 하나님께 은혜와 복을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생각, 내 삶, 내 원칙, 내 삶을 고집부리기 때문입니다. 그 고집을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하나님께 약속받은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고,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영적인(신앙적인) 고집불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고집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일에 조금 더 노력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반응이 있다는 말입니다.
 본문과 삶
 1)살아있는 믿음 역시 반응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2)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내 삶, 내 원함에 대한 영적인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3)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을 결정하고 반응하는 일에 노력을 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의 영적감각 세포가 되살아 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의 모든 것이 결정되고, 반응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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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돈 16-06-18 21:04
 
목사님 금요기도회 말씀에 많은 은혜 받고 새힘얻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최용민 16-06-18 23:33
 
샬롬! 함께 기도할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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