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행13:4-12절
제목 : 성령의 보내심을 따라 삽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복음의 황무지였던 아프리카에 선교를 처음으로 시작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데이빗 리빙스톤(David Livingston(1813-1873)) 선교사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리빙스톤을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리빙스톤이 아프리카 선교에 소명을 갖게 된것은 그의 나이 12살때였다고 합니다. 리빙스톤이 12살이던 어느 주일 저녁에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의료와 구제 사업이 시급하다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아프리카 사람을 위해서 헌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집이 가난했던 리빙스톤은 헌금을 드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리빙스톤은 자신에게 다가온 헌금그릇에 다리를 넣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리빙스톤의 모습을 본 어른들이 장난을 한다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때 리빙스톤은 아니라고, 자신은 돈이 없으니 자신의 몸을 아프리카를 위해 드리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정말로 아프리카를 품고 평생을 헌신하며 사셨습니다. 리빙스톤은 12살 어느날 아프리카에 대한 말씀을 성령께서 자신을 보내시는 음성으로 들었고, 그 보내심에 순종한 것입니다.
1)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성령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구브로섬으로 보내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도 누군가에게 보내시는 분이심을 확인하고, 성령의 보내심을 따라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성령의 보내심은 받은 사람들.
먼저 4절을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실루기아에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브로섬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구브로섬에 도착한 후 살라미로 가서 그곳의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 후 이 두 사람이 구브로의 수도인 ‘바보’ 라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총독인 서기오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서기오 바울이라는 사람이 매우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이 귀한 일을 방해하는 사건이 생기게 됩니다. 즉, 유대의 거짓선지자이며, 마술사인 바예수라는 사람이 서기오 바울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그때 11절을 보면, 바울이 이 바예수를 꾸짖으므로 몇일간 앞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 12절을 보면, 성령의 뜻대로 서기오 바울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번째 생각해야 할 것은 4절입니다. 즉,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입니다. 여러분! 바나바와 바울이 구브로 지역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살라미에 가고, 바로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4절을 보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라고 말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행16장을 보면,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 일행이 갑자기 마게도냐 곧 유럽으로 일정을 변경하게 됩니다 그 이유 역시, 성령의 보내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바울의 모든 전도여행은 성령의 보내심을 따라 되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바나바와 바울이 자신이 원하는 곳,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전도여행을 간 것이 아니라, 성령의 보내심을 따라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바나바와 바울을 왜 살라미와 바보로 보내셨을까요? 그 이유는 먼저 4절입니다. 즉, 유대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왜 그렇습니다. 그곳에 예수를 믿어야 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바보의 총독인 서기오 바울을 예수 믿고 구원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바나바와 바울을 성령께서 구브로섬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구브로(유대인과 서기오 바울)로 보내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누군가에게 그리고 어떤 곳으로 보내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주간 가신곳이 어디입니까? 아마 참 많은 곳을 갔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만나셨을 것입니다. 왜 그곳에 갔고, 왜 그 사람들을 만났습니까? 혹시, 성령의 보내심 때문에 간곳, 만난 사람은 혹시 있습니까? 혹시,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님께서는 지난 한주간 여러분을 보내시고자 한 곳, 만나게 하시고자 한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구원의 자리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보내시는 분이심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부르심의 자리에 머물러만 있으려 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늘 사명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이렇듯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보내시고, 누군가를 만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디에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성령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시고, 만나게 하신 것은 아닌가?’ 라는 고민을 하셔야 합니다. 그럴때, 성령의 보내신 목적을 이루는 복된 삶을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2.특별히 성령이 우리를 보내시려는 곳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어디로 보내시려 하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우리를 어디로 보내고 싶어하는지 아십니까? 네, 성령께서는 종 종 사람들을 세계 먼곳, 곧 타국 선교지로 보내시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돕고 있는 5분의 선교사님들이 그런 보내심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때로 성령께서 우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보내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들을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의 일터에 보내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고, 두려움과 절망이 있고, 외로움이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보내십니다. 혹시, 지난 한주간 아픔이 있는 사람을 만나셨습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분을 보내신 것입니다. 혹시, 예수를 믿지 않는 분을 만나셨습니까? 그것 역시 성령께서 여러분을 보내신 것입니다. 왜 보내셨을까요?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우리 사랑하는교회로 보내신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그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성령께서 여러분을 보내시고자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가정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주된 배경인 구브로가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바로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들을 누군가에게 보내기를 원하고 계신데, 그 최우선의 곳이 선교지도, 어떤 낙도도 아닌, 여러분의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더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성령께서는 여러분의 남편을 위해서 여러분을 아내의 자리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아내를 위해서 여러분을 남편의 자리로 보내셨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여러분을 부모의 자리로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정안에서 서로 위로와 격려, 사랑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를, 성령께서 보내신 계획과 뜻을 이루어가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될 것입니다.
3.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8절입니다. 즉, ‘바예수’ 라는 박수가 “바나바와 바울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종교가 다르기 때문일까요? 어느 정도는 그럴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손해때문입니다. 즉, 바예수라는 사람은 마술사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신들린 남자 무당입니다. 그리고 무당일을 통해서 권세도 물질도 얻었던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무당일로 먹고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지역의 총독이 예수를 믿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더 이상 무당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될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쓰던지 서기오 바울 총독이 예수를 믿는 것을 막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방해를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울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손해보는 것을 무서워하고, 손해보는 것을 싫어한다면 결코 성령의 보내심에 순종하고, 보내시는 뜻을 이루어낼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보내시려고 하는 자리는 대부분이 순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아픔, 상처, 불신앙, 분노, 미움..., 등 그러기 우리들이 손해를 감수하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성령의 보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하냐고요? 즉 우리를 위해서 생명이라는 가장 큰 손해를 기쁨으로 보신 주님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신 장소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마28:10절을 보면, ‘갈릴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명령하셨을까요? 과연 갈릴리는 어떤 곳인가요?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 곳이며, 처음으로 기적을 일으킨 곳이며, 주된 사역의 장소였고, 많은 제자들을 부르신 장소이기도 합니다. 여기만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로서 실패한 제자들에게 다시금 새출발을 하게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릴리로 가라는 말씀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갈릴리라는 지역은 사람들에게 소외와 멸시가 되던 곳입니다. 심지어 유대의 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은 갈릴리를 ‘이방의 갈릴리여(요7:41절)’ 라고 불렀던 곳입니다. 이 정도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소외당하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바로 갈릴리였습니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은 소외와 멸시의 장소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보내심을 받고 가야할 곳, 만나야 할 사람들은 우리들이 손해와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위해 생명까지 기쁨으로 손해보신 주님 앞에 여러분이 해야 할 결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인도하시고, 성령이 보내시는 길을 가겠습니다. 어떤 손해가 있다해도 그 길에 순종하겠습니다.’ 는 결심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결국에 주님께서 여러분의 손해를 갚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본문과 삶
1)그리고 그 성령님께서는 우리들을 어딘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보내시기를 원하십시다.
2)그리고 그곳,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과 섬김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3)그러기 위해 우리는 손해를 두려워 말고 감수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12살의 리빙스톤이 성령의 보내심을 따른 것처럼, 또, 바나바와 바울이 성령의보내심을 따른 것처럼, 여러분 모두도 매일 매 순간마다 성령의 보내심을 따라 살아감으로, 여러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서기오 바울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