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2:12-13절 고린도후서강해7
제목 : 끝까지 사랑합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여러분은 시종일관(始終一貫)이라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시종일관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같다는 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 의지, 마음, 열정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이 어떤 일이든 시종일관한 사람은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앙이 시종일관 곧 한결같은 사람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도바울이 시종일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모든 면에서 시종일관해야 하지만, 특별히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시종일관해야 함을 배우고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끝까지 사랑하는 바율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을 보면, 바울이 드로아(오늘날 터키 서쪽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죽은 유드고를 살린 곳)에 있었을 때의 일을 소개합니다. 즉,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드로아에 갔고, 그곳에서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렸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많은 열매가 맺어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를들면,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을 때, 500명, 3000명이 복음을 믿게 된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귀한 기회입니까? 그런데 13절을 보면,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드로아에서 복음의 문이 열렸지만, 마음이 편하지 못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갔다는 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했습니다. 그리고 디도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드로아로 오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디도가 오지 않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없었고, 그로 인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드로아에 복음의 문이 열렸지만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문이 열렸음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바울의 모습은 참 의외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복음이 전파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큰 기쁨으로 여겼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자신의 생명보다도 귀하여 여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가는곳마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늘 있던 일입니다. 고후1:8절을 보면,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라고 말을 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빌1:12절 이하를 보면,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5절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게 되었느니라’ 18절‘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복음만 전해진다면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해도 기쁘고 좋게 여겼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다시보면, 드로아에서 복음의 문이 열렸고, 복음만 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때문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꾸중을 들은 성도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그들의 신앙이 회복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이러한 염려와 걱정 때문에 바울은 드로아에서의 사역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드로아에서의 사역을 포기한 것을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바울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살펴보도록 하고,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마음의 심정, 마음의 마음에 대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바울의 심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걱정하고, 얼마나 염려하고, 얼마나 사랑했는지...., 결국, 바울은 드로아에서 사역을 포기하고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울은 자신이 그 토록 기다리던 디도를 만나게 됩니다. 이 부분은 고후7:5절 이후에 나옵니다. 함께 보십시다. 5절부터 보면,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많은 어려움을 격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도가 전해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회개의 소식으로 인해서 바울은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좀 더 생각해봅시다. 고린도교회와 바울은 어떤 관계입니까? 바울이 교회를 개척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엄밀히 말하면 바울은 이미 고린도교회를 떠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보낼 당신 고린도교회를 누가 담임하고 있었는지(실라, 소스데네...,등) 정확히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담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적지 않은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고, 바울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 때문에 사역이 손에 잡히질 않아 드로아에서의 사역을 포기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 점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2.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사랑입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마음, 곧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의 마음이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은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변함없이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 점은 성경에 소개되면 모든 인물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야곱을 생각해 봅시다.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욕심쟁이고, 아버지와 형을 속인 사람입니다. 누가 봐도 하나님께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도리어 욕먹어도 싼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형을 피해 라반 삼촌의 집으로 가던 길에 벧엘이라는 곳에 머물러 노숙을 하게 됩니다. 그때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간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 야곱은 사닥다리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사닥다리는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려고 놓은 사닥다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기 위해 내려오시기 위해 놓으신 사닥다리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욕먹어도 싼 야곱을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로 야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자신의 방법대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20여년 후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자객400명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근심하며 얍복나루에 있을 때, 하나님이 또 다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형 에서와 화해를 하게 됩니다.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야곱이 인생 말년이 되었을 때 요셉의 초대를 받아 애굽으로 가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가나안 땅을 떠나는 일이 두려웠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가기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고,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비유가 바로 탕자의 비유입니다. 어느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유산을 받은 후 먼 나라로 떠납니다. 이것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날부터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다립니다. 그리고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을 감싸안고, 입맞추고, 옷과 신을 갈아입히고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들을 사랑한 아버지 곧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또, 요13:1절을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 말씀합니다. 또, 마28:18절 이하를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게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독생자를 보내시고 여러분의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습니다. 교회사에 내려오는 명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여러분 한사람만 존재했어도 주님을 십자가를 지셨을 것입니다(잃어버린 드라트마, 양비유의 핵심).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야곱과 같은 인생, 탕자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떠함과 수준과 상관없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실 것입니다. 이 사랑이 가장 큰 축복이고, 우리의 소망이며,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3.우리도 끝까지 사랑합시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끝까지 사랑했다는 점과 더나가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믁상할 것은,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드로아에서의 사역을 포기한 바울의 모습, 바울의 심정을 묵상하면서, 예전에 초등부 학생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목사님은 새로 나온 친구들만 잘해준다’ 그때 이 말을 들을 때에는 철없는 아이의 투정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의 모습을 보면,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누군가를 전도해서 새신자를 만들고, 그 새신자를 잘 챙겨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고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지체를들을 서로 돌봐주고 기도해주는 일인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서로를 늘 염려하고 걱정해주고, 누군가에 대한 염려와 걱정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종 종 사랑이 있다, 없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도대체 사랑이 있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잘 웃어주고, 잘 챙겨주고..., 그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사랑이 있다는 말은, 심판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누군가 실패하고 실수하고, 죄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래서 그 사람을 만들어 주실 것을 믿고,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품어주고, 끊임없이 기도해주고, 살펴봐주고, 잘하는 것을 기뻐해주고, 못하는 것을 격려해주고..., 끝까지 붙잡아주는 것..., 이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끝까지 사랑했고,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를 이와 같이 끝까지 사랑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모든 면에 변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심에 변함이 없습니다.
2)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실 것입니다.
3)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바울처럼 서로를 끝까지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바울처럼, 하나님처럼 서로를 진심으로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