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2:1-11절 고린도후서강해6
제목 : 서로에 대한 우리의 책임!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기복주의 신앙이라니, 교회가 물량주의에 빠졌다느니, 세속적이며, 세상과 다르지 않다니, 교회가 왜 그러냐? 예수 믿는 것들이 왜 그 모양이냐? 등의 비난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가슴 아픈것은 그러한 비난의 소리를 들으면서 세상을 향해 그건 오해고 다 틀린 말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비난 받을 만한 그리스도인,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할만한 교회의 모습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에 존경과 칭찬을 받아야 할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비난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말한다면, 교회의 표지중 하나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표지라는 말은 ‘교회의 교회 다움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3가지를 말합니다. 첫번째는 올바른 말씀의 선포, 둘째는, 거룩한 성례(성찬과 세례)의 시행, 셋째는, 권징 곧 죄에 대한 지적과 책망입니다. 이중 이 시대의 교회가 가장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권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징이 실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다움을 잃고 비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 연결 – 그런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권징 곧 책망을 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누군가를 사랑으로 꾸중할 줄도 알고, 또한 겸손함으로 꾸중을 받을 줄도 아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꾸중의 목적
먼저, 3절을 보면, ‘내가 이 같이 쓴 것은’ 이라고 말을 합니다. 즉, 바울이 이전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를 말합니다. 아마도 고린도전서일 것입니다. 또는, 고린도전서 이후에 보낸 또 다른 편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계속해서 3절을 보면,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 라고 말을 합니다. 즉,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다시 만났을 때, 근심하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네 맞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에 대한 권징과 책망, 꾸중의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맞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했습니다. 예를들면, 교회가 분열이 된 점, 성도들 중에 음행하는 자들이 있다는 점, 성도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그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 법정에 나가게 된 점, 무분별한 결혼생활 특별히 무절제한 이혼이 있었다는 점, 우상숭배에 참여한다는 점, 거짓교사를 따랐다는 점,그 밖에도 교만, 차별, 잘못된 은사주의..., 등 의 잘못을 꾸중하기 위해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아주 중요한 한가지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안에는 권징 곧 꾸중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헌법 가운데 권징이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즉, 성도 가운데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난 일을 하거나, 교회의 법을 지키기 않을 때, 교회가 수찬금지, 직분정지, 그리고 출교까지 내리게 하는 교리가 있습니다. 물론, 이 권징이라는 교리가 시행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교회는 권징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마18:15절 이하를 보면,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권면하고, 다음은 2-3증인을 세워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가 말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모든 교회 역시 권징을 시행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뮬론, 권징이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저는 설교시간이 권징의 시간, 꾸중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설교를 통해서 위로가 주어지고, 소망도 주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설교는 권징이어야 하고, 꾸중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설교시간마다 하나님 앞에 꾸중을 아멘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교회안에서 범죄한 자들에 대한 권징, 꾸중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3절을 보면, 바울이 범죄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한 목적은 ‘모두의 기쁨을 위함’ 이라는 것입니다. 좀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꾸중을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와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좀 전에 살펴본 마18장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5절 ‘네 형제를 얻을 것이요’ 즉, 권징과 꾸중을 통해서 범죄한 사람이 죄를 깨달고, 회개하고, 올바르게 신앙이 세워지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한 이유는, 그들을 기쁘고 복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한 이유가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을 과시하거나,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에 대한 분 풀이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들도 신앙생활 가운데 누군가를 꾸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꾸중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 자랑, 자기 과시 일때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경우는 상대방을 위함이나 하나님의 기쁨보다는 자기 마음에 안들어서 꾸중하는 경우, 분 풀이를 위한 꾸중이 될 때가 사실은 많이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예로, 여러분이 어린 자식에게 꾸중하고 화를 낼 때, 정말 100% 자식 잘되라고만 꾸중하셨습니까? 분풀이의 마음은 없었습니까? 그런데 그런 식으로 교회안에서도 다른 누군가를 꾸중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릭웨렌 목사의 공동체를 세우는 삶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우리들이 하는 권면의 대부분은 인격 모독일때가 많다’ 동감하는 말입니다. 아닌 것 같습니까? 그럼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꾸중을 했습니다. 그런 바울의 모습을 자세히 보십시오! 4절입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썻노니...,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바울은 꾸중의 편지를 쓸 때에 정말 많은 눈물로 썼다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누군가를 꾸중 하기전에 눈물 한방울이라고 흘린 경험이 있습니까? 적어도 꾸중을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은 느껴보셨습니까? 이렇듯 우리가 하는 꾸중은 주님이 명령하신 꾸중에서 벗어난 꾸중일 때가 많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누군가를 꾸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꾸중이 자기 자랑, 자기 과시, 더나가서 마음에 안들어서, 분 풀이로 하는 꾸중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나가서 여러분의 꾸중이 도리어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7절에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 하노라’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꾸중으로 인해서 상대방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는데, 도리어 꾸중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지 않도록 주의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바울은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꾸중은 옳은 것이고, 마땅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꾸중을 통해서 사람을 실족하게 하고, 신앙을 포기하게 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계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경험해본바에 의하면 꾸중을 통해서 신앙이 성장한 사람보다는 꾸중 때문에 신앙이 파멸하고, 무너진 사람이 많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올바른 꾸중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누군가를 꾸중하고자 할 때, 사랑으로, 눈물로, 그리고 꾸중을 받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꾸중 할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꾸중으로 많은 성도들이 신앙의 큰 유익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2.꾸중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소천하신 한경직 목사님의 일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느 주일에 한목사님이 장로들과 당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교회의 한 청년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한목사님의 신사참배를 비롯한 죄의 목록을 일일이 열거하더랍니다. 얼마나 무례한 일입니까? 이 때 한경직 목사님이 뭐라고 하셨는 줄 아십니까? ‘다 맞습니다. 사실 난 그보다 더한 죄도 너무나 많이 지은 죄인입니다.’ 라고 하시면서 계속 우시더랍니다. 비록 신사참배라는 실수를 하셨지만 그래도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꾸중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잘못을 인정하고, 꾸중을 겸손히 받아들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누군가의 꾸중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어떻습니까? 누군가 나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꾸중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그리고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더 심한 경우는 나의 잘못을 꾸중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공격합니다. 이것이 보통 꾸중을 받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사랑으로 꾸중 할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묵상할 것은, 우리도 누군가의 꾸중을 겸손히 받아들일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누군가의 꾸중을 기분 나뻐 하지 않고, 겸손히 받아 들이는 분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잘 모르겠습니까? 그러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난 한 달을 살면서 누군가가 여러분을 꾸중한 일은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여러분은 꾸중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도 여러분을 꾸중한 적이 없다면, 여러분이 완벽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거나, 아니면 여러분이 꾸중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도 여러분을 위해서 꾸중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확인이 되셨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꾸중을 받을 줄 아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꾸중을 받을 줄 아는 사람과 꾸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 소개됩니다. 먼저, 꾸중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누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왕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다윗은 밧세바를 간음했고, 그 가운데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이자 충신인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때, 나단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 다윗의 잘못을 꾸중했습니다. 그때 삼하12:13절을 보면, 다윗은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라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꾸중을 받아 들인 것입니다. 또, 히스기야왕입니다.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민족에서 위문사절단이 찾아옵니다. 그 중에는 바벨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절단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기 위해 나라안에 있는 값진 것들을 다 보여주게 됩니다. 교만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이사야선지자가 찾아와 히스기야왕의 잘못을 꾸중하고 유다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그때, 히스기야왕은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나이다’ 라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꾸중을 받아들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꾸중을 들었고, 회개했습니다. 꾸중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꾸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사울왕입니다. 어느날 하나님은 사울왕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을 할 것과 승리 할 것, 그리고 모든 전리품을 남겨두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아말렉왕과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끌고 왔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선지자 사울을 찾아가 꾸중을 합니다. 그때 사울왕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라고 핑계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다시한번 꾸중하자,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끌고 왔나이다’라고 또 핑계했습니다. 결국, 이일로 인해서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꾸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예수님을 이들을 호되게 꾸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꾸중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꾸중을 받아 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꾸중을 받아야만 하는 연약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꾸중을 받아 들이는 사람은 결국,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룰수 있지만, 꾸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올바른 신앙을 갖을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꾸중하는 자를 존경하고, 꾸중을 감사히 받는 겸손한 성도가 됨으로, 여러분의 신앙이 갈수록 성장하고 온전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3.서로에 대한 우리의 책임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를 꾸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 꾸중을 받을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서로에 대한 우리의 책임’ 이 무엇인가에 대해서입니다. 즉, 제가 여러분을 향해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여러분이 저와 서로에게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죄에서 돌이키고, 회복시키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세워주는 책임’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누군가를 꾸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우리들이 누군가의 꾸중을 받아드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잘못을 회개하고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세워지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신앙을 도와주어야 하는 책임, 서로의 신앙을 세워주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우리들이 누군가를 꾸중해야 하는 이유, 꾸중받아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모습으로 증명하셔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끊임없이 꾸중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2)그러므로 서로를 사랑과 지혜로 꾸중해야 합니다.
3)또한, 겸손함과 감사함으로 꾸중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의 신앙을 돕고 세워주는 책임을 맡은자임을 기억하고, 그 책임을 다 함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온전함으로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