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1:8-11절 고린도후서강해3
제목 : 환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우리들이 인생을 살다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물건을 갖기 위해서는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당연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예배를 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큐티하는 것, 감사하는 것, 순종하는 것, 전도하는 것..., 등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것들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또 한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환난이 있는 삶’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환난이 있는 삶이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삶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그리스도인에게 환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소개하며, 환난을 당하는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8절을 보면,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고 말을 합니다. 물론,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무엇인가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이방인의 반대, 유대인의 공격, 거짓교사들의 모함...,등), 분명한 것은 환난으로 인해서 바울은 대단히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8-9절에서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9절에서 ‘하나님만 의지’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11절에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고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 번째 묵상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은 당연한 것’ 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아시아에서 당하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환난’입니다. 더 풀어서 말하면, 반대, 미움, 공격, 배신, 고통, 시련, 낙심, 두렴..., 등을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이 환난을 당한 것이 아시아에서만의 일은 아닙니다. 바울이 유대 땅에서도 사역할 때도, 유럽에서 사역할 때도, 로마에서 사역을 할 때에도 환난을 당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사도가 된 이후로 줄 곧 환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와같이 환난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도라는 특별한 직무, 또는 선교라는 특수한 임무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바울과 같이 사도도 아니고, 바울과 같이 특별한 사명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환난이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지난 시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위로를 말하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위로를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환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환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난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계7:13절을 보면, 144,000명을 ‘큰 환난에서 나온 자’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 144,000명은 누구입니까? 구약, 신약 모든 시대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의 총수를 상징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44,000명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즉, 전 시대를 살아가던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이고,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어디에서 나온자라고 말합니까? ‘큰 환난에서 나온 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전4;12-13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이 당연한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빌3:20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은 어디 입니까?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환난을 당하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란 무슨 말입니까? 우리들은 삶의 방식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든지 정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워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을 합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대단히 교만해서 늘 자신이 최고라고 말을 합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은 늘 원망과 불평속이 많습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익을 따르지 않고 가치를 따릅니다. 그러나 세상은 가치보다는 이익을 따라갑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은 과정이 어떠하든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또,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험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험담을 합니다. 특별히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천국)을 얻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와 세상이 다른점은 너무나 많습니다. 결국, 세상은 자신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세상은 자신의 잘못을 보고, 자신의 허물이 들어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박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환난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2.환난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더 중요한 한가지 질문을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는 환난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신앙과 믿음의 이유로 환란, 곧 핍박이나 박해를 받냐! 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네 물론, 초대교회시대나, 일제시대, 6.25때와 같이 예수를 믿는다고 죽임을 당하고, 직장을 잃고, 매를 맞고, 고초를 당하는 일은 적어도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 땅에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는자 들에게 환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환난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움과 괴롬, 억울함, 손해입니다. 그렇습니다. 옛날과 같은 그런 환난은 아니지만, 미움이라는 환난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그리스도인으서 회식자리에서 술과 향락을 거절한다면 어떨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업하면서 뇌물과 청탁을 하지 않는다면, 또 제사때 신앙의 이유로 절을 하지 않는다면, 어디서든지 정직하고 청념하다면..., 그래도 정말 손해와 억울함, 미움받음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여러분을 증오할 것이고, 욕할것이고, 미워할 것이고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딤후3: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고 말합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환란은 아니라도 미움과 억울함, 손해, 불이익을 당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물론, 여러분이 뭔가를 잘못해서 당하는 미움 말고, 또, 누군가에게 말을 함부로 해서 당하는 미움 말고, 또, 지혜없이 행동함으로 당하는 미움 말고,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못해서 당하는 미움 말고, 또, 자신의 이익만 챙기다가 당하는 미움 말고요! 바울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정말 144,000명답게, 흰옷입은자 답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면서 환란을 느끼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때문에 미움을 당하십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 때문에 손해와 불이익을 당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을 정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이런 삶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삶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예배를 놓치고, 기도를 놓치고, 성경을 놓치는 것만 큼이나 너무나 당연한 삶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에 환란 또는 미움과 손해를 당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죄를 지으며 살기 때문이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기 때문이고, 욕심을 부리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을 하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모습 곧 다름이 있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추구하는 것에 다름이 없고, 목표에 다름이 없고, 삶의 방식에 다름이 없고, 죄의 기준에 다름이 없고..., 등 세상사람들과 다름이 없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자신들과 다르지 않는데 왜 박해하겠습니까? 왜 미워하겠습니까? 같은 모습, 같은 편인데...,박해할 이유가가 없고, 미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름이 없는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둘 다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명분과 생활과 축복도 놓치고 싶지 않고, 세상에서 얻고 누릴 수 있는 재미도 놓치고 싶지 않는 두 마음 때문입니다. 이런 2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속셈 때문에 그리스도인이지만 교회에서는 신자의 모습, 세상에서는 세상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중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사람들과 다름과 없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세상에서 어떤 미움도 불이익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카톨릭이 성장하는 이유, 곧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교묘하게 하나님과 세상을 모두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도 드리지만, 술과 담배를 합니다. 신앙을 말하지만 제사도 드립니다. 또, 예수님으로의 구원을 말하지만 다른 종교의 구원도 인정합니다. 그러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올바른 신자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항상 하나님 편이 되는 신자입니다. 얼마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설교자는 ‘성도들 편을 들어주는게 아니라, 하나님 편을 들어주는 설교를 하는 사람’ 이라는 말입니다. 참 제 마음에 감동이 되었고, 하나님 편을 드는 설교자가 되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 편을 드는게 아니라, 성도 편을 드는 설교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하나님 편을 드는 설교를 할수 있도록 기도바랍니다. 그런데 이것이 설교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성도들 역시 항상 하나님 편을 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에게 큰 환난이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디서든지 하나님 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항상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편을 드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신앙이고 그게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게 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3.환란을 당할 때?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환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환난의 유익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환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켜 가시는 방법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 시련, 환란..., 이것들은 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없고, 그것들을 당하는 순간에는 참 힘들고 괴로운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힘든 순간들이 결코 우리의 신앙에 손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조금만 성경의 인물들을 생각해보면 금방알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욥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10자녀를 한날 잃고, 전재산도 한날에 잃고, 악창이라는 심각한 병에 걸리고, 아내가 집을 떠나고, 친구들이 와서 죄인이기 때문에 당한 일이라고 정죄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의 시간들을 격고난 다음 욥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욥42: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또, 요셉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노예생활 가운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겠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시간을 통과한후 그는 애굽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창50:20절에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 외에도 다윗,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니엘, 요나...., 등이 고난과 환란, 시련을 통해서 신앙의 성장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환난은 손해가 아닙니다. 도리어 환난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자라고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1:2-4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환난의 의미와 가치를 알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9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다양한 모양의 환난을 당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11절을 보면, ‘간구함으로 우리를 도우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렘17:7절에서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시37:5-6절을 보면,‘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환난은 그리스도인에게 당연한 것입니다.
본문과 삶
1)왜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 편에 서기로 결정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그러므로 환난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거나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3)그리고 환란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기도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합시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환난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편’을 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