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하18:13-37절
제목 : 침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들어가는 말
하루는 어떤 여집사가 목사님을 찾아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더 이상 남편과 살지 못하겠어요. 너무 신경질과 짜증이 지나쳐요!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이 다시 화목해질 수 있을까요?’ 그때 목사님은 물을 한통 주면서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이 물을 바로 한 모금 입에 넣기만하고 결코 마시지 마세요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겁니다’고 말했습니다. 이 여집사는 목사님이 주신 물 한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밤 늦게 남편이 술에 잔득 취해 들어오면서 평소처럼 부인에게 잔소리를 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같으며 같이 다투었겠지만, 목사님이 주신 물을 한 모금 입에 넣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잔소리와 짜증이 잠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남편이 신경질을 부릴때마다 물을 한 모금 입에 넣었습니다. 그런 일을 면번 반복하는 동안 남편의 신경질이 몰라보게 줄었습니다. 이 부인이 남편의 달라진 모습에 너무 기뻐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신비한 물을 조금 더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이 물이 신비한 능력을 가진게 아니라, 부인이 남편의 신경질과 짜증부리는 동안에 침묵했기 때문에 남편의 마음이 잠잠해진 것이라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앗수르 나라로부터 시련을 당하는 가운데 침묵했던 히스기야왕과 유다 백성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침묵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이 주시는 시련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된지 14년째 곧 BC701년에 앗수르에 의해 위협을 당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금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니다. 먼저 13절을 보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유다의 성읍들을 점령하게 됩니다. 고대 앗수르의 문헌에 의하면, 앗수르가 유다의 46개의 성읍을 점령했고, 약 20만명이 넘는 사람이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까지 점령하고자 대군을 이끌고 온 것입니다. 그때 14-16절을 보면, 다급해진 히스기야왕이 앗수르왕이 원하는 대로 엄청난 조공(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17절을 보면, 또다시 앗수르왕이 대군을 이끄는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유다사람들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18-35절까지 보면, 앗수르의 지휘관인 랍사게가 많은 말로 유다백성들을 위협하고, 히스기야왕을 비난했으며, 심지어 하나님까지 모독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36절을 보면, 유다백성들이 위협과 비난과 조롱하는 말을 들으면서 한마디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침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왕이 유다백성들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히스기야왕과 유다백성들이 격은 시련”에 대해서입니다. 먼저 13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나라가 유다의 많은 성읍을 점령했고, 이제 예루살렘까지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왕과 유다백성들에게는 풍전등화와 같은 심각한 위기이며 시련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앗수르왕이 원하는대로 은300달란트(11,000kg), 금30달란트(1,000kg) 라는 엄청난 돈을 주었습니다. 참고 이 은과 금을 주기 위해 히스기야왕은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주고, 심지어 성전의 문과 기둥에 입혀진 금을 벗겨서 주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앗수르는 예루살렘을 위협했습니다.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것입니다. 유다민족과 히스기야왕에게 매우 큰 시련입니다.
그러나 시련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22절을 보면, 앗수르의 장군인 랍사게가 유다백성들 앞에서 히스기야왕과 그의 신앙적인 통치를 비난했습니다. 즉,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말과 그러기 위해서 산당과 제단을 제거하는 일이 쓸모없는 일이라고 비난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29-31절을 보면, 히스기야의 말에 속지 말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랍사게의 말이 히스기야에게는 매우 큰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33-35절을 보면, 랍사게가 하나님까지 조롱을 합니다. 즉, 어느 신도 앗수르의 공격에서 자신의 민족을 지킨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마리아도 하나님께서 지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 역시, 하나님만 섬기던 유다와 히스기야게 큰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은 유다나라, 그리고 히스기야왕에게 대단히 큰 시련이 닥쳐왔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시련의 이유
그런데 오늘 히스기야왕과 유다민족이 시련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은 한가지 불편한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즉, 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을 가진 히스기야에게 시련이 생겼을까? 왜 오랜 전통인 산상을 제거하고,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놋뱀까지 제거하는 결단의 신앙을 가진 유다민족에게 시련이 생겼을까? 라는 불편한 생각이 드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두 번째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왜 믿는 사람들에게 시련이 생긴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을 보면, 크게 2가지 이유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징계의 이유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들이 뭔가를 잘못하고, 신앙적인 삶에서 이탈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주십니다. 예를들면, 야곱의 경우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지 않고, 도리어 항상 자신을 의지하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야곱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고쳐가시기 위해, 라반 삼촌에게 속임수를 당하게 하고, 에서로 인한 두려움을 갖게 했고, 자녀들로 인해 끊이지 않는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시련이 있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입니다. 그들은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2주면 갈수 있는 거리를 40년간이나 방황하는 시련의 순간들을 주신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바로 요나의 경우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바다에 빠지게 되고,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간 있는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 외에도 징계의 이유로 시련을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다윗, 솔로몬, 웃시야..., 등 물론, 징계의 차원으로 시련이 주어지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징계의 의미로 시련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다시말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 또는 확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를들면, 아브라함의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삭을 빼앗기 위함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신앙을 확인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또, 욥의 경우입니다. 욥은 아브라함과 동일시대 사람으로서 신앙이 대단히 탁월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상상할 수 없었던 시련을 격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욥의 신앙, 욥의 순전함을 확인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요셉, 사울..., 등을 하나님께서는 시험하셨습니다. 즉, 그들의 신앙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즉, 히스기야왕과 유다백성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신앙의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산당과 놋뱀을 제거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신앙을 확인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신앙을 확인한 하나님은 그들을 앗수르로부터 구원해주시고, 히스기야와 유다백성을 더욱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고백과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시기 위해서,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신뢰하는지, 사랑하는지, 많은 고백과 결심들이 진정인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시련이라는 시험을 주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이유는 징계의 이유 이든, 아니면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의 시련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에 어떤 시련이 있으십니까? 물질의 시련, 건강의 시련, 가정의 시련, 자녀의 시련, 사업의 시련, 여러 가지 환경의 시련..., 등 그렇다면, 여러분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셔야 합니다. 즉, 지금 내가 당하는 이 시련이 징계의 이유로 주어진 시련인지? 아니면, 나를 시험하시기 위해 주신 시련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징계에 의한 시련이라면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잘못된 것을 회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시험으로 인한 시련이라면, 신앙을 잘 붙잡고 잘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신앙고백과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에게 유익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시련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침묵하십시오!
그렇다면, 시련을 당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까? 물론, 많은 지혜로운 자세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기도를 한다거나, 금식을 한다거나, 자신을 돌아본다거나, 신앙의 선배와 삼당을 한다거나..., 등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바로 “침묵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니’ 라고 말을 합니다. 히스기야가 시련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대답하지 말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왭니까? 침묵이 유익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의 권면은 대단히 지혜로운 권면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랍사게의 말에 일일이 아니라고 논쟁하다 보면, 틀림없이 마음에 하나님께 대해, 히스기야왕에 대해 원망과 불평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앙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이 무너지면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지게 됩니다. 또,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고 비방할 때, 욕을 할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논쟁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무너지고 신앙에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을 의지한 왕입니다. 그 의지함 이후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라고 침묵할줄 아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침묵이야 말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첫 출발점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침묵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침묵입니다. 왭니까? 서로 걱정스러운 말을 하다보면 순종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지나가는 사람과 유대지도자들, 심지어는 함께 십자가에 못밖힌 강도들까지 비난과 조롱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이런 침묵의 위대함과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침묵의 가치를 말하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잠13:3절에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고 했습니다. 또, 욥13:5절에는 ‘너희가 잠잠하고 잠잠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속담중에 ‘말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는 속담도 있습니다. 또, 테레사 수녀는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이다.”라고 말하면서, 침묵할 때,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침묵할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미국의 인디언 부족중에 아파치부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이 부족의 특징은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나, 또는 뜻밖의 일을 만났을 때에는 말을 하지 않고, 오랜 동안 침묵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시련을 당할 때, 또는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당하게 될 때, 침묵할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하고 싶고, 누군가에게는 따지고 싶고, 자신에 대해 변론하고 싶고..., 그러나 먼저는 침묵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아직도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이 없을수 없습니다.
본문과 삶
1)그래서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시련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2)그것은 징계에 의한 것이거나, 시험을 위한 것 중 하나입니다.
3)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침묵할 아는 지혜를 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에 의해, 또는 누군가에 의해 시련을 당할 때에, 침묵할 줄 아는 신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