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27:51-66절
제목 : 우리도 한 알의 밀알이 됩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리우는 알버트 슈바이처박사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24살에 대학교 교수가 될정도로 철학, 음악, 신학에 뛰어난 천재로 불리우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에서 온 선교편지와 요12:24절의 말씀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라는 말씀을 접하면서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로 갈것을 결심하고 7년간 공부를 한 뒤 36살에 의사가 되어 90세의 나이로 죽을때까지 아프리카 원주민을 위한 의료와 전도활동을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산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예수님께서 밀알의 삶을 사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도 한알의 밀알로 이 땅을 살아갈 것을 결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나를 위한 죽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크게 3가지 사건으로 요약할 수있습니다. 첫 번째는, 51절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진’ 사건입니다. 둘째는, 52-53절에 ‘이미 죽은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57-61절까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는 사건’입니다.
우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은 누구를 위한 죽음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57-60절을 보아야 합니다. 보면, 당시 유대종교 최고회의 기관인 산헤드린의 회원이며(요즘으로 말하면 국회의원)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태사도가 예수님의 무덤이 누구의 것이었다고 까지 기록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누구를 위한 죽음인가를 교훈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누구를 위한 죽음입니까? 표면적으로는 아리마대 요셉을 위한 죽음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예수님은 누구의 무덤에 장사되었습니까? 아리마대 요셉이 들어가야 할 무덤에 장사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아리마대 요셉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나가서, 아리마대 요셉을 대표로하는 모든 인간들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을 언급하는 마태의 의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우리를 위한 죽음인 것입니다. 이 점은 이미 바라바의 놓임, 구레네 시몬의 십자가를 짊어진 말씀으로도 여러번 확인했던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번! 저는 이번 고난주간 가운데 예수님의 죽음이 나를 위한 죽음이라는 확신과 감격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미 여러분은 예수님의 죽음이 나를 위한 죽음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확신이 머리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나를 위한 예수님의 죽음을 머리로만이 아닌, 가슴으로 뜨겁게 확신하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해 봅시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아멘!
2.휘장이 찢어짐!
이제 우리들이 묵상할 것은, 51절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짐’ 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휘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휘장이란? 언약궤가 놓여진 지성소와 떡상과 분향단이 놓여진 성소를 구분하는 천막, 커텐입니다. 그렇다면, 이 휘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기 위한 목적일까요? 아닙니다. 휘장은 목적은 아무나 함부로 지성소를 들여다 보거나,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요세푸스의 책을 보면, 이 휘장에는 불칼을 들고 선 천사의 모습이 수놓아져 있었다고 합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추방하시고, 그 입구를 천사로 하여금 지키게 하신 그 모습을 수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라 함부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지성소에는 누구만 들어갈수 있습니까? 바로 대제사장만이 그것도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피를 뿌리며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누구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결국, 이 휘장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킨 죄의 문제가 해결했고, 그 결과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허물어진 것이고, 이제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제 기꺼이 만나주시겠다고 두 팔을 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준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갈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을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혹시, 대제사장은 아닙니까? 1년에 한번 만나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자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순간 우리와 만나고 교제하는 자리로 나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2가지 권면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삶을 사십시오!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할수 있을까요? 말씀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둘째는, 여러분이 어떤 아픔과 상처, 힘듦과 고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나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갈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언제든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탕자의 비유를 아실 것입니다. 집을 나간 탕자가 고통과 슬픔의 문제를 안고 아버지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아버지가 탕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그러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아픔과 상처, 힘듦과 고민을 가지고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가지고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만들어 놓으신 축복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11: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고아처럼 살아가는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여러분의 아픔과 슬픔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한 알의 밀알이 됩시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죽음이 나를 위한 죽음이며, 언제든 하나님께 나갈수 있게 하는 죽임이었다는 점을 살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60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 묻히시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하신 말씀, 곧 요12: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라는 말씀의 성취라고 여겨집니다. 마치 예수님이 묻히시는 장면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묻히는 장면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한 알의 밀알로 오셨고, 땅에 떨어져 썩어져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많은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그 첫 번째 열매가 오순절(첫열매의 절기)의 120명의 성도들이고, 예루살렘교회이고, 초대교회 성도들이고, 2000년 기독교 역사가 열매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밀알로 썩어지시므로 바로 우리라는 열매가 맺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주님이 다시 재림하시는 날까지 수없이 많은 열매를 맺으실 것입니다.
오늘 밀알이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이 다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도 밀알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밀알로서 썩어지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밀알로서 썩어지는 인생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서로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썩어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밀알로 사는 것, 썩어지는 인생을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철저히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입니까?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섬김이란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더 어려운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제자들에게 넓은 문, 넓은 길이 아닌 좁은 문, 좁은 길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섬김과 가장 비슷한 말은 사랑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도 다른 이의 덕 곧 유익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고난주간을 마쳐가며, 우리가 마지막으로 결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의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이 땅에서 한알의 밀알이 되고 썩어져 가는 삶을 살겠노라는 결단입니다. 같이 결단해 봅시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지겠습니다!’ 아멘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오늘 여러분 모두 알버트 슈바이처의 고민처럼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라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밀알이 될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본문과 삶
1)주님의 죽으심으로 여러분의 죄사함이, 그리고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2)여러분의 아픔과 고통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십시오!
3)무엇보다 밀알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한 알의 밀알이 되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신 주님처럼, 여러분도 밀알이 되어 썩임이 있는 헌신된 신자의 삶을 통해, 여러분으로 인해서 많은 열매가 맺혀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