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6:13-14절
제목 :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이 잘 아는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손양원 목사님을 아실 것입니다. 손목사님의 본명은 손영준입니다. 그런데 손목사님이 여수에 있는 나환자촌인 애양원에 가시면서, 그곳 나환자들을 위해 목숨걸고 충성을 다하시겠다는 결심으로 이름을 고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심대로 손목사님은 나환자들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 내면서 그분들을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그러던 중, 손목사님은 큰 아픔을 당하게 됩니다. 즉, 당시 공산당원이었던 안재선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2아들인 동인, 동신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손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았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의 삶을 살았던 손목사님을 ‘사랑의 원자탄’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도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소원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사랑을 따라 행하라
먼저,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겠습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합니까?’아마도 엘리야처럼 기도에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이단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성경을 많이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하시고, 아브라함처럼 어떤 말씀에도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하시고, 또, 고침받은 문둥병자처럼 감사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하시고, 베드로처럼 전도 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하시고, 또, 오순절 마가의 다박방의 120명의 성도처럼 방언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하시고, 또,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하시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하실 것입니다. 참 좋습니다. 저 역시 지금 여러분이 소원하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또 다시 묻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하실까요? 우리가 지금 말한 기도와 성경에 능하고, 감사와 순종을 하고, 전도와 방언을 하며, 구제와 헌신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할까요?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이 사랑이 많고,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더욱 소원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14절에서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방언, 구제, 지식, 헌신, 열심이라는 대단한 신앙의 장점들이 있었지만, 반대로, ‘사랑이 없다’는 신앙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뭔가를 많이 하고, 잘하고, 그래서 자랑할 게 많은 그리스도인이 되는것도 분명히 원하시지만, 더욱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은로서 사랑이 많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2가지를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이 믿음의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고전13:13절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드십니까? 왜냐하면,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을 한다면 믿음 소망 사랑이 아니라, 사랑, 믿음, 소망이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랑이 최고라고 말하면서 믿음을 먼저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가진 믿음이 소망과 사랑으로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 내가 가진 믿음의 미래적 표현이 소망이고, 내가 지금 가지 믿음의 현재적 표현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 내가 가진 믿음의 분량과 사랑의 분량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이 모든 것을 정답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골3:12-14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무슨 말입니까? 사랑이 없으면 미완성이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것, 선한 것, 옳은 것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쉬운 예로, 사랑이 없는 위로는 정답이 아니라 오답이 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위로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사랑이 없는 책망도 정답이 아닌 오답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책망으로는 결코 바른 길로 인도 할수 없습니다. 또, 사랑이 없는 봉사와 섬김도 정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봉사와 섬김속에서는 끊임없는 분쟁과 다툼이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사랑이 없는 전도도 정답이 아니며, 사랑이 없는 구제도 정답이 아니며, 사랑이 없는 직분감당도, 사랑이 없는 생각, 말, 행동도 정답이 아닌 오답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행동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선택을 하든지 사랑을 따라 행하기를 바랍니다. 더나가서 기도도, 봉사도, 전도도, 구제도 사랑을 따라 하는 사랑으로 정의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사랑이 강조되는 이유
그렇다면, ‘우리들이 서로에게 사랑으로 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결코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고전13:9-12절을 보면, 쉽게 확인이 가능합니다. 먼저, 9절을 보면,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1절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고’ 12절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표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과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들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13:8절에서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즉,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이 영원토록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완전한 사람, 흠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서 확인해봅시다. 여러분은 방주를 만든 은혜의 사람 노아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입고, 당대 의인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아는 완전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노아는 술을 마시고 자식들 앞에서 허물을 들어낸 사람입니다. 또, 아브라함을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누구입니까?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우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을 얻기 위해 대단히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한 사람입니다. 또,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땅에 해방시킨 민족의 영웅이며 하나님께 친구라는 칭호를 들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완전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모세 역시 분노와 혈기를 참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가나안 땅 입성을 거절 당했습니다. 또, 아론을 보십시오! 아론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대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아론은 완전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있을 때,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아론입니다. 또,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고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완전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대로, 간음과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 밖에도 엘리야, 솔로몬, 요나, 베드로, 사도요한, 바울..., 등을 보십시오! 모두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사람들이고, 믿음의 선배들이지만, 그들 역시 완전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연약하고, 실수가 많고, 흠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소개하는 그 누구도 완전하고 흠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외일까요? 아닙니다. 그 누구도 예외 일수 없습니다. 마치 롬3:10절의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흠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행위대로 대우하지 아니하시고, 사랑으로 대우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하나님 앞에 설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살아갈 때, 연약하고 부족한 누군가의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나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경각심을 갖아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러므로 비난과 정죄가 아닌, 사랑으로 품어주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사랑이 필요한 존재임을 알 듯이 다른 모든 사람도 사랑이 필요한 존재임을 늘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사랑으로 대우할수 있는 것입니다.
3.사랑이란 무엇인가?
이제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그렇다면,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여러분은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성경은 사랑을 감정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고린도전서에서도 사랑을 감정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고전13:4-7절을 보면,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고전13:4-7절을 보면, 사랑을 15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치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며, 견디느니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15가지의 정의 중에서 우리가 사랑이라고 여기는, 보고싶음, 설레임, 콩닥거림, 안보면 미칠 것 같음...등과 같은 감정적인 내용들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사랑은 감정적인 사랑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랑은 감정이 아닌 실천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15가지 정의들을 보십시오! 모두가 실천적인 것들입니다. 그래서 약2:15-17절을 보면,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렇습니다. 배고프고 추운 사람들에게 배부르게 하라, 더웁게 하라고 말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위선입니다. 요일3:18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라고 말을 합니다. 즉, 말만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강조하려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것’ 또는 ‘상대방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는 것’ 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8:1절에서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덕을 세운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유익을 준다는 말이고 기쁨을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아주 유명한 선언을 합니다. 고전8:13절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방간이 많아서 입니까? 채식주의자라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사랑이 무엇인가를 이해했는지를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배고픈 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먹을 것을 주면 됩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사랑할수 있을까요? 옷을 입혀주시면 됩니다. 외로운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친구가 되어주면 됩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사랑해줄 수 있을까요? 아픔을 인정하고 이해해주면 됩니다. 또, 남편은 어떻게 사랑해줄수 있을까요? 밥 잘 차려주고 보약 먹여주면 됩니다. 아내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루에 30분씩 말을 들어주고 따듯하게 말한마디 해주면 됩니다. 그러면, 사랑하는교회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유익을 주는 일을 하면 됩니다. 웃어주고, 앞장서고, 태신자 작정하고, 기도하고, 예배참석하고..., 등 이것이 우리들이 실천해야 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희생’ 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희생없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서로를 더 잘 사랑해주기 위해서는 기쁨으로 희생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사랑으로 정의되어야 합니다.
2)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입니까? 연약하고 부족한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더나가서 서로의 기쁨을 내 기쁨 삼는 것입니다.
3)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위해 우리는 기쁘게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사랑으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