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16:15-34절
제목 : 마음의 소원을 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저널리스트인 벤 스타인이라는 분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내가 뭘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다소 말장난처럼 느껴질수도 있지만, 이 말은 우리들에게 소원하는 마음을 품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교훈하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얻고 이루려면 그 무엇인가를 소원으로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날씬해져야겠다는 소원을 품지 않으면 날씬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소원을 품기 이전에는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없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에 대한 소원하는 마음을 품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신앙생활에 대한 소원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소원하는 마음을 품지 못함으로 갈수록 악을 행한 이스라엘 왕들에게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신앙에 대한 소원하는 마음을 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갈수록 태산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5대왕인 시므리왕과 6대왕인 오므리왕, 그리고 7대왕인 아합왕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북이스라엘의 5대왕인 시므리왕은 쿠테타(16절)를 일으켜 왕이 되었지만, 고작 7일간(16절) 통치하고 자살(18절)하게 됩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면, 성경은 시므리왕을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 북이스라엘의 6대왕인 오므리왕은 12년간 통치(23절) 했으며, 사마리아성을 건축(24절) 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성경은 오므리왕을 지금까지 왕들보다 더 악행을 저질렀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7대왕인 아합왕은 오므리왕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을 22간 통치했고, 특별히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30절을 보면, 성경은 이전의 모든 왕들보다 더 악을 행했다고 말하고, 심지어 33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니’ 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 3명의 왕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갈수록 태산’(갈수록 더 나빠지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소개하는 3명의 왕의 모습을 보면, 대를 거듭할수록 더 악하고, 더 비신앙적인 모습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므리왕은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므리왕은 더욱 악을 행한 자였고, 아합왕은 우상숭배까지 행한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이처럼 갈수록 더욱 악한 왕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갈수록 악해지는 3명의 왕을 우리들에게 소개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옛날에 그랬다는 것만을 말해주기 위함은 아닙니다. 성경, 그리고 역사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다시말해, 점점 더 악해지는 그들을 우리들에게 소개함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점검하게 하기 위함이고, 또한 그들의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이 살수록 좋아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신앙이 갈수록 거룩해지고, 그리스도인다워 지고 계십니까? 또, 갈수록 더욱 자비롭고 사랑많고, 넓은 마음을 가져가고 계십니까? 또, 갈수록 더 겸손해지고 계십니까? 갈수록 말씀과 기도의 사람이 되어가고, 갈수록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갈수록 예수님을 더 닮아 가십니까? 갈수록 더 성숙해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잘하십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오늘 본문에 소개하는 왕들처럼 갈수록 더 교만해지지는 않습니까? 또, 갈수록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되어가지는 않습니까? 갈수록 더 원망과 불평이 많아지지는 않습니까? 갈수록 더 신앙이 소홀해지고, 갈수록 더 미련해지고, 갈수록 더 주님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는 신앙, 갈수록 더 은혜로워지는 신앙을 갖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을 우리들에게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2.소원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나답, 바아사, 엘라왕의 가문을 죄와 악행으로 인해 엄중하게 심판하는 것을 시므리, 오므리, 아합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악행을 그치지 않고, 도리어 더 더욱 심각한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들의 악행과 그들의 죄가 갈수록 태산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전임 왕들이 악행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을 보면서도, 더욱 악행을 저지르고, 죄를 갈수록 태산으로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신앙이 좋아지지 않고, 갈수록 나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더욱 갈수록 악한 왕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가장 중요하게 묵상해야 할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첫째, 그게 바로 죄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마치 눈덩이와 같습니다. 눈을 뭉쳐 주먹만하게 만들고, 그 눈덩이를 굴리면 어떻게 됩니까? 갈수록 커지게 됩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를들면, 짜증에서 미움으로, 미움에서 다툼으로, 다툼에서 살인으로..., 이렇듯 죄는 반복성과 성장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들이 갈수록 태산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죄라 해도 방치하면 안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고 방치면, 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늘 죄에 민감한 마음과 죄를 해결하는 습관을 갖아야 합니다.
둘째로, 갈수록 더 악한 왕이 된데에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전임 왕들이 했던 악행을 버리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기쁘시게 하는 왕으로서의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다윗과 같은 왕이 될수 없었고, 적어도 이전의 왕들 만큼은 되지 말자는 소원함 조차 없어서 더욱 악한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왕, 온전한 왕,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왕이 되고자 하는 소원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갈수록 태산인 왕이 된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것은, 우리들이 신앙의 소원을 품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소원함을 품지 않으면, 신앙이 좋아질수가 없고, 달라질 수 없고, 도리어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설교자인 저의 큰 고민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목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설교사역이라고 말합니다. 그 만큼 설교를 준비하는 일에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다른 성도들에게 저를 소개할 때, 설교를 최선다해 준비하는 목사라고 소개해도 좋을 정도로 설교 준비에 큰 마음과 열정을 다합니다. 그런데 제 고민은, 성도들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놓고 참 많은 고민과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이 바로 ‘마음의 원함 곧 마음의 소원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아무리 귀한 설교를 들어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소원함을 품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냥 듣는것 뿐이고, 깨닫는 것 뿐이고, 성경을 이해할 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의 소원함을 품으며 살아가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겠노라는 마음의 소원함을 정말 품으십니까?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감동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함을 품고 계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소원함을 품지 않으면, 신앙의 어떤 결과도 없을 것이고, 도리어 오늘 본문의 갈수록 태산인 왕들의 길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소원을 품는 것이 신앙성장의 시작임을 알고,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실만한 신앙의 소원함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 말씀대로 살겠다. 늘 기도하며 살겠다. 감사의 삶을 살겠다. 죄를 이기겠다. ‘하나님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는 소원, 기도할것에 대한 소원, 헌신에 대한 소원, 선교에 대한 소원, 성숙에 대한 소원, 감사에 대한 소원..., 등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3.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3명의 왕들이 ‘왜? 다윗같은 왕이 되어보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왕이 되겠다’는 소원함을 품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통치기간이 많던지 적던지간에 한 나라에 왕이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므리 같은 경우에는 왕의 혈통이 아닌, 왕의 신하였던 사람입니다. 그가 왕이 된 것입니다. 오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의 혈통이 아닙니다. 군대 지휘관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이유로든 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은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왕의 경우에는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고, 심지어 백성까지 그 죄를 범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왜요? 은혜를 모르고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왕이 되겠다는 소원을 품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가장 큰 은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할수 없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또,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은혜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은혜를 늘 깨달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겠다는 소원을 품을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를 아는 사람은, 사명자, 헌신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은혜를 잊으면 결코 사명, 헌신자의 삶을 살수 없게 됩니다. 이렇듯이 은혜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의 소원을 주심으로 우리를 세워가시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우리는 갈수록 더 나아지고, 좋아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2)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3)그럴때, 하나님께 소원을 품게되고, 그 소원을 이루어 더 나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귀한 소원을 많이 품으며 살아가고, 그래서 날마다 신앙이 좋아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