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6:5-9절
제목 : 사명을 놓치지 맙시다! 고린도전서 강해64
성도들의 삶속으로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지만 짐승을 직립보행을 하지 못합니다. 또, 인간은 옷을 입지만 짐승은 옷을 입지 않습니다. 또,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지만 짐승에게는 본성만 있습니다. 또, 인간은 다양한 욕구를 절제할 수 있지만 짐슴은 욕구를 절제하지 못합니다. 또, 인간은 신앙이라는 것을 가지지만 짐승은 신앙이라는 것을 갖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말한다면, 인간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짐승은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계획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역 계획이 있고, 그것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소개해주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도 바울처럼 인생의 계획을 갖는 계기가 되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지는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을 확인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바울의 사역 계획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자신의 사역 계획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8절을 보면, 지금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에 오순절까지는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 이유는 9절에 에베소에서 복음의 문이 열렸기 때문이고, 또 그에 따른 대적하는 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에베소 교회에서 복음을 위해서 감당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계획해서 자신의 계획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마게도냐로 갈 것이고, 또, 6절을 보면,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교회 교회를 방문할 계획이고,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직은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어디로 갈지가 결정되면, 고린도교회에서 자신을 후원해 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묵상할 것은, “바울이 사역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의 합당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난주간 살펴본대로 믿음 또는 신앙이란 하나님이 하실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을 분별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고, 내가 해야 할 일에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적어도 6-12개월 이상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믿음이고 신앙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인생의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미래의 계획, 올 한해의 계획, 3월 한달의 계획, 이번 한주간의 계획, 오늘 하루의 계획..., 등 또, 여러분 개인의 계획, 가정의 계획, 신앙의 계획..., 등을 가지고 있습니까? 네 반드시 인생이든, 신앙생활이든지간에 계획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믿음이고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계획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이든지 더 잘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뉴욕 시내의 행인들을 1000명을 상대로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계획해본 적이 있느냐?’는 설문조사를 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응답자 가운데 27%는 ‘아무런 계획도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했고, 60%는 ‘그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 생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13%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같은 대답을 한 사람들끼리 생활수준도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들면, 앞으로의 인생에 아무런 계획도 없다고 대답한 27%는 대부분이 나라로부터 생활보조금을 받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생각해 본적이 있다고 대답한 60%는 대부분이 한달 한달 먹고 사는 평범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분명한 인생의 계획이 있다고 말한 13%는 대부분이 전문직이거나 부유한 생활을 하는 엘리트층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설문조사의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계획을 가지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루의 계획, 한주간의 계획, 한달의 계획, 한해의 계획, 한평생의 계획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계획을 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계획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계획을 무턱대고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힘들면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계획이 다를 때, 그때 우리는 우리의 계획을 포기할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 원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은 행16:10절에 더 분명히 나타납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1차 전도여행을 마친 바울과 그 일행은, 1차 전도여행때 방문한 소아시아 지역을 다시한번 방문하려고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계획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계획이 마게도냐에 복음을 증거하는 것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곧장 마게도냐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길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내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다를 때, 내 계획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이 믿음이고, 잘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뜻이 내 뜻보다 귀하고 복됨을 알고 나의 뜻을 포기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뜻을 이루는 일에만 욕심을 내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즉,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런 신앙이야 말로 정말 훌륭한 신앙인 것입니다.
2.사명을 놓치지 않은 바울
이제 조금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6절입니다. 즉,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앞으로 어디로 가든지 간에 그 모든 경비(선교비)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담당하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런데 이 말이 왜 중요할까요?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오해를 받았던 부분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받은 오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는 오해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왜 사도가 아니라고 오해했을까요? 그 이유는 대략 2가지이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생각에는 참된 신앙을 모든 억압에서 자유해지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교회성도들은 모든 문제에서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심지어 우상의 문제와 죄의 문제에서도 자유하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에 비해 바울은 그렇지 못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영원히 우상의 고기를 안먹겠다고 말하고, 독신으로 살겠다고 말하고, 죄와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등 이러한 모습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신앙의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오해를 받은 것입니다. 둘째는, 사례비를 요구하지 않음 때문입니다.(고전9장) 그렇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례비 또는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스로가 돈벌 재주가 있었기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바울은 군용 천막을 만든 기술이 있었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돈을 벌수 있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사례비,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바울이 사역해야 하는 고린도지역은 헬라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고린도는 철학의 도시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강연을 하고, 돈을 받아 생활을 하는 철학자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지역에서 바울이 생계비를 받으면서 복음을 말한다면 믿지 않는 고린도 사람들이 어떤 오해를 하겠습니까? 바울을 여러 철학자 중의 하나로 여길것이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 역시 강연의 하나로 밖에 받아 들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해와 걸림이 없기 위해서 사례비를 요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가 아니 때문에 사례비를 요구하지 못한다고 오해한 것입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고린도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사례비나 사역비를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의 사역비를 담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사역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가 아니라는 오해를 받았고,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사역비를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해명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을 오해하고, 사도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사역비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바울이 사역비를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까요? 대단히 어려운 말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바울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사역비(선교비)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역비를 담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고, 성도들에게 복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요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말하기 어려운 말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사역비를 요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도로서 자신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역시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계획을 가지고 이루는 순간에서도 결코 ‘우리의 사명을 놓치면 안된다.’ 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구원은 사명으로의 초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사명을 놓치고 산다는 것은 구원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것, 교회의 일을 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성도의 사명은 사랑과 섬김입니다. 그렇다면, 사랑과 섬김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누군가에게 유익을 주는 일인 것입니다.
3.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2가지 사실을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앞에 나의 계획을 포기할수 있었야 한다는 점과 우리의 계획을 이루어가는 순간에는 사랑과 섬김이라는 사명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묵상할 것은, 내 계획을 포기하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존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경쟁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지키려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고는 나의 계획을 포기하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은혜 받는 일, 그리고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서도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 필요합니다. 만일, 바울이 자존심을 내려 놓지 못했다면, 그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유익을 줄수 있었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해서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양보, 희생, 사과, 순종, 봉사, 인내..., 등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 신앙의 걸림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존심을 내려놓으신 주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 인간이 당하야 할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으신 것입니다. 주님을 묵상할 때, 우리도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자존감을 갖어야 합니다. 자존감이 무엇입니까?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줄 아는 긍정의 힘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이라는 자신감을 갖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인생과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어야 합니다.
2)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다르다면 언제든지 내 계획을 포기해야 합니다.
3)그리고 나의 계획을 이루어가는 순간에도 맡겨진 사명 곧 사랑과 섬김을 놓치면 안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존감을 회복함으로 오늘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