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5:1-18절
제목 : 신자가 받아야 할 축복은 무엇인가?
성도들의 삶속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주된 관심사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축복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물론,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자 하는 자세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무엇이 진정한 축복인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축복이 아닌 것을 축복으로 여기고 받고자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임을 분명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 여러분 모두가 진정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진정한 축복은?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먼저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할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친구인 두로왕 히람에게 성전 건축에 사용할 나무와 돌을 요청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나라가 부요하긴 하지만, 성전건축에 사용될만한 큰 나무와 단단한 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로왕 히람이 솔로몬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 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일군 183,000명과 두로나라의 일군들이 성전건축에 필요한 목재와 석재.., 재료를 준비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축복을 받은, 또는 받을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함께 묵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여러분이 바라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는 축복의 일순위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것이고, 자녀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다닌 것입니다. 또, 좋은 집을 갖는 것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이고, 아무 염려 근심없이 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만사형통하는 것,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으로 여깁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들이 부자가 되는게 진정한 축복일까요? 우리들이 건강한게 진정한 축복일까요? 아닐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부자가 되는 것이 위험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겐 건강이 악한 인생의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정말 자녀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다니것이 축복일까요? 아닙니다.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기대하는 축복들은 진정한 축복이 아닐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축복이 아닌, 불행의 원인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이러한 기준으로 본다면, 아브라함, 노아, 모세도, 이사야, 예레미야, 바울, 제자들, 예수님도 축복을 못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자가 아니고, 건강하지도 않고, 오래살지도 못했고, 자기 집도 없었고, 재미난 인생을 살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축복받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우리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과연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2가지로 정의 할수 있습니다. 진정한 축복이란? 영원한 것들입니다. 다시말해, 없어지지 않을 것들입니다.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 영생, 천국, 성령,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이런 것들이 진정한 축복인 것입니다. 또, 진정한 축복은 존재됨과 연관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정한 축복이란? 무엇을 많이 소유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소유가 축복의 기준이라면, 많이 소유한 사람이 적게 소유한 사람보다 무조건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적게 소유한 사람이 때로는 많이 소유한 사람보다 행복할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축복은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진정한 축복은 무엇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유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존재됨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이고, 천국백성이라는 존재이고,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존재됨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을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솔로몬을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또, 솔로몬을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주 중요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가 가진 지혜나 또는 그가 가진 많은 소유 때문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솔로몬을 기억하고 그를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사람(존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축복, 또는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가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축복받은, 받을 사람인가요?
2.신자다움이 있는 사람
첫째로,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은, “신자다운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다함을 두로왕 히람이 듣고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이는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두로왕 히람이 다윗을 사랑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사랑이라는 말은 ‘존경, 신뢰’라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율법이라는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 히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두로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숭배했던 사람이고, 다윗과 다른 문화권속에 살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서로를 견제하는 경쟁국가의 왕입니다. 이처럼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관습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불교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자신과 종교, 문화, 관습이 다른 히람에게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도 다윗이 죽은후에도 변함없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기록에 보면, 두로왕 히람이 다윗으로 인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질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다윗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변함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은 것일까?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11장을 보면, 안디옥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가장 처음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곳입니다. 물론, 처음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부정적인 비난의 의미였습니다. 우리식대로 말하면, 이 예수쟁이들..., 와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1년) 좀 지나고 안디옥에서 불려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더 이상 조롱과 비난의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존경과 칭찬의 호칭이 되었습니다. 그후 안디옥이 선교의 중심지가 됩니다. 그렇게 인식이 바뀐 이유가 무엇입니까? 안디옥의 그리스도인의 신자다움때문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 사랑을 받을만한 신자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고, 더욱 받을 사람인 것입니다. 왜 신자된 우리들이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합니까? 왜 교회가 각 지역에 세워질때 지역 주민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신자다움이 없고, 교회 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인 다운 사람, 삶을 살수 있겠습니까? 예배에 열심히 나오면, 헌금 특별히 십일조를 열심히 하면, 기도를 서너 시간씩 하면, 성경을 많이 일고 암송하면, 교회에서 봉사하면....., 그러면 정말 신자다운 삶을 사는 것일까요? 그래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일들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신자답다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신자답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다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음이 없이 존경과 칭찬은 있을수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하신 말씀이 뭡니까? 다름입니다. 예를들면, 간음의 문제, 살인의 문제, 맹세의 문제, 사랑의 대상의 문제...,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5:47절에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자답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세상사람과 다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름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축복받은 사람이고, 더 축복 받을 사람인 것입니다.
3.하나님을 위해 사는 신자
둘째로,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솔로몬을 보면, 솔로몬에 관하여 분명한 한가지를 발견할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는 그 일을 자신의 과업, 사명, 또는 비전으로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솔로몬은 왕이 된후, 나라의 일군을 세우고, 곧장 한 일이 바로 성전을 건축하는 준비를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여러 가지 축복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명을 위해 살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더욱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라도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과 이스라엘을 크게 축복하셔서 대단히 부강했스니다. 그 이유가 바로 성전을 건축하는 일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 위한 일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크고 작은 축복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더 많이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삶이 더욱더 하나님을 위한 삶이 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축복받은 사람이고, 더욱 큰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기 보다는 하나님을 통해서 자신의 유익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직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소원을 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남은 인생 더 많은 헌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소유는 진정한 축복일수 없습니다. 존재됨이 진정한 축복인 것입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 축복된 사람인 것입니다.
2)하나님은 우리들이 다름이 있는 신자다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3)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남은 인생 더욱 복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