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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몸을 드리는 삶! (고린도전서강해60)
 본문말씀 : 고전15:35-44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6.1.27
조회 : 8,189   추천 : 0  
본문 : 고전15:35-44절  고린도전서 강해60
제목 : 몸을 드리는 삶!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구원파 이단을 잘 아실 것입니다. 구원파의 공식명칭은 ??기독교복음침례회??또는 ??대한예수교침례회??입니다. 구원파가 강조하는 몇가지 주장을 보면, 첫째, 구원받은 날짜와 시간 장소를 모르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합니다. 둘째, 죄책감을 가진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셋째, 구원받은 이후에는 죄가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합니다. 간단히 말해, 육신과 영혼의 별개라고 주장을 합니다. 모두 틀린 주장입니다.
 
1) 연결 ? 제가 오늘 구원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고린도교회안에도 구원파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육신과 영혼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부활이라는 주제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어떻게 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
  먼저,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모두도 궁금해 할만한 부활에 대한 2가지 질문이 언급됩니다. 35절을 보면, 첫째로,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겠는가? 이며, 둘째는, 만일 죽은자가 부활한다면 어떤 몸으로 부활 할 것인가? 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이미 죽어서 땅에 묻혀 썩어버린 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더나가서 완전히 썩어서 흙이 되어버린 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극단적으로는 화장을 해서 완전히 불타버린 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또는, 흔적도 없는 죽은 몸이 어떻게 부활할까요? 마22장을 보면, 당시 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개인이 예수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7명의 남편과 살던 여자가 부활을 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고 묻습니다. 이 말은 부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두개인이 생각하기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무슨 말입니까?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입장과 기준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 편에서 생각한다면 사실 부활이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아름다운 온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생명의 소망이 100%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처녀의 몸에서 아기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또한 에스겔서를 보면 골짜기의 마른 뼈로 하나님의 군대를 만드셨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죽은자, 썩은자, 다 태워진자, 흔적도 없는 죽은 몸을 부활시키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우리 몸의 부활을 조금도 의심이 없이 믿기를 바랍니다. 더나가서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매일의 삶에 힘과 위로와 신앙의 담대함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은 어떤 몸으로 부활하게 될까요? 사실 우리들이 가장 궁금해 할만한 질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몸으로 부활 할까요? 살아 생전 가장 건강하고, 가장 아름다웠을 때의 몸으로 부활할까요? 아니요!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몸으로 부활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우리들이 어떤 몸으로 부활하게 될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첫째, 지금 우리의 몸과 전혀 무관한 몸으로 부활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37절을 보면,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무슨 말입니까? 어떤 씨앗을 뿌리며 그 씨앗이 자라나 새로운 형체를 갖습니다. 그러나 씨앗과 새로운 형체는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들면, 사과 씨앗을 심으며 나중에 사과 나무가 됩니다. 이 때 사과 씨앗과 사과 나무는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예를들어 설명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제자들 조차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살아생전의 예수님의 모습이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못자국과 창자국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즉, 살아생전의 육체와 무관한 몸으로 부활한 것은 아닙니다. 이렇듯 우리들의 부활 역시 지금 우리의 몸과 무관한 몸으로 부활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몸이 부활할 몸의 씨앗인 것입니다. 둘째, 다시는 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을 하게 됩니다. 42절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또, 43절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게 될 부활의 몸은 아프지 않는 몸, 망가지지 않는 몸, 영원히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43절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또, 44절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의 몸을 생각해 봅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예수님의 몸을 만져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이셨습니다. 예를들면, 제자들이 모여 있는 집안에 예수님은 문을 통하지 않고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도 이와같이 어떤 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부활의 몸입니다. 그 이상은 우리가 알수도 없고 더 이상 알려 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러한 지나친 궁금증이 우리의 신앙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 멈출 때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2.몸의 연속성을 말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부활에 관한 2가지 궁금증을 묵상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죽은자가 어떻게 부활할수 있는가? 어떤 몸으로 부활 할것인가? 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궁금해 하기 때문에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만일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가 부활과 관련해서 궁금해 할 만한 다른 여러 가지도 언급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부활 후 서로를 알아 볼까? 서로를 무엇이라고 부를까? 부활후 하루를 어떻게 보내며 살게 될까? 잠은 잘까? 음식은 먹을까? 어떤 언어를 쓸까? 어떤 공간에서 생활을 할 것인가?  ..., 등 정말 우리들이 궁금해 할만 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들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오늘 본문을 기록한 목적인 우리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오늘 본문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너무나 크게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지주의(Gnosis,靈知主義)적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영지주의는 무엇입니까? 영지주의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 되어 있는데, 영혼은 항상 선하고, 육체는 항상 악하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과 육체는 서로 별개의 것으로 서로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주장입니다. 특별히 육체로 행하는 어떤 죄도 영혼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여긴 것입니다. 정확히 오늘날의 구원파의 주장과 일치합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육체는 악하다’ 라는 영지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육체의 부활을 이루시겠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육체는 악하지만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라는 영지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분명히 엉망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교회안에서 여러 가지 종교적 열심은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의 행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삶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를 보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안에 다툼의 문제, 음행의 문제, 우상의 문제..., 등과 같은 죄악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몸의 부활’을 통해서 육체는 결코 악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몸과 부활의 몸에는 연속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부활의 몸은 현재의 몸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죽음과 부활을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영지주의 사상에 빠져 있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2가지 신앙의 점검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여러분이 혹시 이시대의 영지주의자들은 아닙니까? 물론, 여러분은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 또는 육체는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라는식의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신앙과 삶이 구분되어 있다면, 더 쉽게 말하면 믿는 것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쩌면 이 시대의 영지주의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영혼과 육체는 하나입니다. 그렇듯이 믿음과 삶은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믿는대로 살아가는 올바른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혹시 여러분은 육신의 욕망대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게 바로 영지주의자들의 모습이고, 이 시대의 구원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욕망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성경이 늘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부인입니다. 그리고 갈5: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결코 욕망을 따라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몸을 드리는 삶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훗날 신령하게 부활하게 될 몸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함부러 살면 안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부활하게 될 이 몸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들은 이 몸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여러분의 몸이 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살아야 합니다. 롬6:12-14절을 보면, 12절 ‘죄로 왕노릇 못하게 하라’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말라’ 13절의‘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14절의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모두 동일한 말씀입니다. 즉, 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둘째는,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사십시오! 롬12:12절을 보면 우리의 삶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진심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받으시기를 더 기뻐하십니다. 가인과 아벨을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인에게는 마음과 진심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둘 다 틀림없이 마음과 진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인에게 없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몸을 드림’ 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진심도 기뻐하시지만, 우리의 몸을 받으시는 일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남은 인생, 여러분의 육체가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여러분의 몸을 드리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을 드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롬12:2절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즉, 몸을 드리는 삶은 결국, 순종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헌신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헌신은 순종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의 몸은 훗날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과 삶
 1)그날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신령한 몸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2)죄의 도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3)의의 도구 순종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남은 인생 하나님께 아낌없이 모든 것을 드리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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