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하22:29-51절
제목 : 인생의 성벽을 뛰어넘는 자!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 세종대왕에 대해서 잘 아실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룬 성군이고, 특별히 한글을 만드신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 한글은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도 합리성·과학성·독창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시각장애인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종23년 세종대왕은 시력을 거의 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5년 뒤인 세종 28년(1446년)에 한글이 창제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얼마든지 절망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절망하지 않았고, 그 절망의 벽을 뛰어 넘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위인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최고의 음악가로 손꼽히는 베토벤는 음악가로서 가장 치명적인 절망인 청각장애라는 벽을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사회사업가인 헬렌켈러 역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3중 장애의 벽을 극복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절망이라는 벽을 뛰어 넘은 다윗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다윗처럼, 인생의 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비결을 배우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다윗 앞에 놓인 적진과 성벽
삼하22장은 블레셋과의 전쟁이 승리한 다윗이 부른 승전가이며 감사찬송입니다. 오늘 우리는 32구절의 성경을 읽었습니다. 혹시, 읽는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 있으십니까?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구절이 30절입니다. 곧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입니다. 이 구절이 삼하22장 전체의 요절이고, 오늘 우리들이 읽은 본문을 가장 분명히 설명하는 구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윗이 자신의 인생 앞에 수없이 많은 원수들이 있었고, 수없이 많은 절망과 고통, 시련과 아픔의 벽이 놓여져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을 하나님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시 30절을 보십시오! 이 30절을 보면, 우리들이 늘 기대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제가 없고, 위기가 없고, 절망이 없고, 다시말해, 만사형통을 꿈을 꿉니다. 그러나 30절의 다윗의 고백속에는 전혀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도리어 적진으로 뛰어 들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여전히 수없이 많은 인생의 성벽이 다윗에게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 중요한 점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기대하는 세상적 만사형통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신자들에게 무병, 무탈, 만사형통을 약속하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적이 한번도 없으십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약속하신 적이 없는 일을 기대하고, 섭섭해 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신앙생활을 할때 그런 기대가 없기를 바랍니다. 얼마든지 여러분이 적진으로 뛰어들어야 할 순간이 있을 것이고, 여러분이 뛰어 넘어야 할 인생의 벽도 수없이 만날 것입니다.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5개의 성경구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시23: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 마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며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욥8:7절에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막9: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4:13절‘내게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내 무엇이든지 할수 있느니라’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자신의 현실을 바꾸는 수단이고 도구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는 신앙을 통해서 나폴레옹이 되어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말해, 신앙안에서 천하무적이 되는 것을 꿈꾼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담 또는 성벽을 제거하는 일보다, 여러분을 그 담과 성벽을 뛰어 넘게 하시는 일에 더 큰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이심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다윗을 샘플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깨달은 진리입니다. 그러니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가 성벽을 뛰어 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이 만나는 담과 성벽을 제거해주는 분이 아님을 안 것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워치만 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하루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다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자신이 땜목을 타고 강하류로 내려 가고 있었는데, 멀리 강 가운데 우뚝 솟아나온 바위가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땜목을 멈추거나 바위를 피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친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강물이 더 거세지고 땜목을 지탱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오게 된 것입니다. 워치만 니는 하나님께 원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위에 부딪히기 직전에 불어난 강물로 바위를 넘어 갈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깼습니다. 그리고 워치만 니는 그 꿈을 통해서 지금 자신이 피해보고자 하는 문제를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극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2.성벽을 뛰어 넘은 다윗!
그래서 본문 30절을 보면, 다윗이 무엇이라고 고백을 합니까? ‘적진으로 달리며,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적진, 성벽을 피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돌진하고, 뛰어넘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다윗을 우리들에게 소개하는 이유 역시, 우리 모두가 우리의 인생 앞에 놓여진 온갖 종류의 벽을 보며, 두려워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뛰어 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한다면, 주님은 우리들의 삶의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을 뛰어 넘는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그의 인생속에서 만난 인생의 성벽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선은 그의 인생의 오랜 시간 사울이라는 넘기 어려운 벽을 격었습니다. 십수년간의 도망자의 삶이라는 벽도 격었습니다. 또, 그토록 의지했던 사무엘마저 죽는 절망스러운 현실의 벽도 격었습니다. 자식들안에 일어나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벽도 격었습니다. 유혹의 벽도 격었고, 반역의 벽도 격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 모든 인생의 벽을 뛰어 넘었습니다. 여기서 뛰어 넘는다는 표현은 이겼다. ‘승리했다’ 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승리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끊임없는 문제와 역경들이 그에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을 승리자라고 말을 한다면, 우리가 알고 승리자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과연 성경이 말하는 승리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환경이 현실이 어떠하든 그것에 자신의 신앙과 믿음과 소망이 좌우되지 않는 흔들림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바울의 고백 기억하시지요! 내가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 이 고백은 비록 자신이 가난에 있든, 부요함에 있든, 자신이 배부름에 있든, 배고픔에 있든지, 그것으로 인해서 믿음이 영향을 받지 않았다라는 말입니다. 무엇으로도 믿음이 영향받지 않고, 무엇으로도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바뀔수 없으며,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막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여러 가지 능력 가운데, 현실과 상황이 어떠하든지 쉽게 영향을 받지 않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놓여진 성벽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가난이라는 성벽, 질병이라는 성벽, 패배의식이라는 성벽, 무력함이라는 성벽, 막막함이라는 성벽, 욕심이라는 성벽, 낮은 자존감이라는 성벽..., 등 주님은 여러분이 이런 다양한 벽을 뛰어 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즉, 삶에 다가오는 힘겨운 문제들, 죄의 문제들에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신앙, 그리고 이기는 사람, 그런것에 여러분의 신앙이 지배받지 않는 신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며 주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뛰어 넘는자의 모습입니다.
3.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적진으로 달려 갈수 있었으며, 어떻게 인생의 수많은 벽들을 뛰어 넘을 수 있었습니까? 30절을 보면, 분명히 말합니다. ‘의뢰’ ‘의지’ 모두 같은 말입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시다. 과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수 있을까요? 그 첫번째는, 기도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잘 의지하는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앞에 인생의 벽이 놓여질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작정기도를 하시고, 금식 기도를 하고, 짧막한 기도를 하고..., 이런 기도의 열정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는, 순종입니다. 22-23절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로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셋째는,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2절 이하를 보면, 다윗이 늘 일상 중에 보여지는 것들이 나옵니다. 반석, 요새, 방패, 망대, 땅, 하늘..., 을 그런데 늘 보는 것을 보며 다윗은 그안에서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늘 보던 반석을 보며 ‘아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 되시는구나’ 늘 보면 요새를 보며,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는 요새이구나’ 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 바라본적이 있습니까? 하늘이 그냥 하늘이 아니고, 하나님을 연상하게 하는 하늘이 될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위를 볼때 하나님이 생각나고,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날 때 하나님을 느끼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뭘 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8-20절은 출애굽 당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할때 다윗은 마치 자기 이야기, 자신이 본것 처럼 합니다. 즉, 비록 500년전 출애굽 당시에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이 다윗 자신의 하나님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느낀 것입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들으며, 묵상하며 여러분을 향한 말씀이고 약속이고, 은혜임을 확신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 어떤 벽이든 뛰어 넘을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의 인생의 벽을 해결해 주시는데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닙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의 관심은 우리들이 우리의 인생의 장벽을 뛰어 넘는자가 되도록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갖고 계삽니다.
2)그렇다면, 어떻게 다윗처럼 인생의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까?
3)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 무슨 벽이든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주어진 환경, 현실, 문제..., 로 인해 여러분의 신앙과 믿음,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사랑이 방해받지 않는 능력, 인생의 장벽을 뛰어 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