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5:29-34절 고린도전서 강해59
제목 : 부활신앙의 증명!
성도들의 삶속으로
학생들은 학생증을 가지고 다닙니다. 어른들은 신분증을 가지고 다닙니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으로 행정업무를 보기 위해서는 아이핀이나 공인인증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학생증, 신분증, 아이핀, 공인인증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이 우리들에게 자신을 증명하기를 요구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증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우리들이 부활을 믿는자임을 증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활을 믿는 자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1) 연결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삶’으로 자신이 부활을 믿는자 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난과 환란이 있는 삶으로 자신이 부활을 믿는자임을 증명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도 고난과 환란이라는 삶으로 부활을 믿는 자임을 증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삶으로만 증명되는 부활신앙!
먼저, 고린도전서 15장의 주제가 무엇인가를 한번 더 확인해봅시다. 무엇입니까? 바로 ‘부활’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 성도들의 부활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먼저, 29절을 보면,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냐’ 라고 말을 합니다. 사실 이 구절은 정확한 의미는 모릅니다. 단지 추측하는 것은, 말그대로 세례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산자(가족이나 친구)가 세례를 받는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고 추측할 뿐입니다. 그러나 추측일 뿐이고,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9절을 보면, 바울이 하려는 요지는 부활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잘못된 관행들이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0절을 보면, 부활을 믿는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즉, 자신은 계속해서 죽음의 위험을 무릎쓰며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음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31절에서는 바울의 위대한 신앙고백 몇 개중 하나인,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 의미입니다. 첫째는, 날마다 죽음을 각오하며 사역을 감당한다는 의미이고, 또하나는,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예를들면, 자신의 욕망, 욕심, 생각, 바램..., 등을 부인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뜻이든지간에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쉽지 않은 삶을 매일 매일 살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계속해서 말을 합니다. 32절에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이 말은 바울이 정말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는 말이 아니라, 바울을 반대하여 바울에게 맹수처럼 달려드는 반대자들과 싸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맹수처럼 자신을 반대하며 달려드는 자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 역시 그가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몸의 부활을 믿는 자임을 무엇으로 증명했습니까? 이론, 지식, 말...,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으로 자신이 부활을 믿는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까? 특별히 여러분의 몸의 부활을 믿습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말로~ 부활절 헌금~ 하나님은 여러분의 말과 헌금만이 아닌, 삶으로 증명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반드시 행함 곧 삶으로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2장에서 야고보사도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아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고 말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삶이 아니고는 우리가 가진 믿음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믿음장인 히11장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에녹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어떻게 증명했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믿음을 증명했습니다. 또, 노아는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어떻게 증명했습니까? 바로 방주를 만드는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은 없고, 하나님만이 참되고 유일하신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했습니까? 자신이 살던 우상의 땅 곧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계속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무엇으로 증명했습니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침으로 증명했습니다. 즉, 삶으로 믿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또, 출애굽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린양의 피가 발라진 집에 죽음이 지나갈 것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무엇으로 증명했습니까? 문설주에 피를 바름 곧 삶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했습니다. 또, 기생라합은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어떻게 증명했습니까? 이스라엘 정탐군을 숨겨주는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반드시 삶으로만 증명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말뿐인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면, 삶을 증명되는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삶을 증명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부활을 믿음도 삶으로 증명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2.고난과 환란의 삶으로 증명하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이 부활을 믿는 신자임을 어떤 삶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바로 ‘고난과 환란을 당하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부활을 믿는 자임을 증명한 삶들이 다 무엇입니까? 고난이고, 환란을 당하는 삶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우리 몸의 부활을 믿는다면, 고난과 환란 당함이라는 삶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고난과 환란이 있는 삶이 부활을 믿는다는 증명이 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활을 믿는 신자들에게 고난과 환란은 필연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부활신앙을 가진 초대교회와 소아시아의 많은 교회들은 로마로부터 대대적인 고난과 환란을 당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산을 빼앗기고, 어떤 사람은 고문을 당하고, 어떤 사람은 경제권이 박탈 당해 상거래를 할 수 없었고,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어떤 사람은 환란을 피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이사를 가야했고,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갇히고, 어떤 사람은 목숨을 잃고..., 이런 엄청난 고난과 환란을 당했습니다. 또한, 종교개혁시대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온갖 고난과 환란을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속에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양한 고난과 환란을 당했습니다. 이렇듯 부활을 믿는 신자들에게 고난과 환란은 필연적인 삶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믿기에 고난과 환란이라는 필연적인 삶을 마다하지 않고 감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 고난과 환란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환란을 당하는 삶이야 말로, 부활을 믿는다는 최고의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에게 고난과 환란은 왜 필연적인 삶일까요? 그 이유 역시 너무나 간단합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3:20절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환란을 당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에 속한 사람이란 무슨 말입니까? 우리들은 삶의 방식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든지 정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워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을 합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대단히 교만해서 늘 자신이 최고라고 말을 합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은 늘 원망과 불평속이 많습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익을 따르지 않고 가치를 따릅니다. 그러나 세상은 가치보다는 이익을 따라갑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은 과정이 어떠하든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또,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험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험담을 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와 세상이 다른점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환란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몸의 부활을 믿기 고난과 환란속에서도 구별된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부활을 믿는자답게 살고 계십니까? 무엇을 보면 될까요? 삶속에 고난과 환란이 있는가를 보면 쉽게 확인할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속에 고난이 있습니까? 환란이 있습니까? 만일 신앙의 이유로 고난과 환란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답게, 무엇보다도 부활을 믿는자임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신앙의 이유로 어떤 고난도 없고, 환란도 없다면, 어쩌면, 여러분은 주님의 요구를 외면하고 살거나, 세상과 짝하며 살거나,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지 않고 있는지 모릅니다. 또는 부활을 제대로 믿지 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3.고난과 환난이 있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지금까지 믿음은 삶으로 증명된다는 점과 특별히 부활을 믿는다는 증명은, 고난과 환란이 있는 삶을 통해서 증명된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고난과 환란이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올바른 선택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올바른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도 올바른 선택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예를들면, 우리들이 어떤 무서운 병에 걸리는 것도 사소하지만 잘못된 선택들이 반복 될 때 생기는 것입니다.(음식, 생활습관) 또, 신호위반이라는 사소한 선택이 목숨을 잃게 할수 도 있습니다. 또, 부부 사이의 잘못된 선택들이 이혼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소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조금 더 신중하고 지혜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이 세상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선택은 신앙생활속에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이며, 부활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같이 또, 역사속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고난과 환란이 있는 삶이 없는 이유는, 우리들이 신앙안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고난과 환란이라는 신앙의 증명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도 선택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요? 34절에 ‘의’입니다. 의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요구, 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을 선택할 때, 고난과 환란이 있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아무리 작고 사소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을 선택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이 신자임과 부활을 믿는자임을 증명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과 삶
1)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오직 삶입니다.
2)특별히 고난과 환란이 있는 삶이야 말로, 우리들이 신자이며 부활을 믿는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3)그리고 이런 증명의 삶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기준으로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삶을 통해서 여러분이 신자임과 부활을 믿는 자임을 증명하는 복된 삶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