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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내세 신앙의 필요성!(고린도전서강해57)
 본문말씀 : 고전15:12-19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5.12.16
조회 : 6,703   추천 : 0  
본문 : 고전15:12-19절
제목 : 내세 신앙의 필요성!(고린도전서강해57)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군에 붙들려 감옥에 갇히고 모진 고문을 많이 당하셨습니다. 예를들면, 매를 맞는 것은 기본이고, 고춧가루 섞은 물을 코속에 넣고, 손톱과 발톱 사이에 바늘을 꼽고, 전기고문을 당하고 무엇보다도 못이 밖힌 판자 위를 걷게 하는 등의 모진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기철 목사님은 끝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했고, 신앙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해방전인 1944년 옥중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과연 주기철 목사님께서 그런 모진 고문속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기철 목사님이 천국을 바라보며 사셨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인 말로 하면 내세신앙 때문입니다. 주기철목사님이 평상시 즐겨 부르시던 찬송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찬491장의 ‘저 높은 곳을 향하여’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이처럼 천국을 바라보는 신앙을 가지게 될 때, 즉, 내세신앙을 가지게 될 때, 더 힘있고 능력있게 되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영원한 세상이 있다고, 곧 내세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세신앙을 다시 한번 회복하심으로 더욱 힘있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구별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을 보면,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13절에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도 부활하지 않았을 것이고, 14절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이 되고, 심지어 17절에서는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19절에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잘 아실 것입니다. 먼저, 고린도교회는 대단히 장점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무엇보다도 성경 지식이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지식에 대한 열정도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는 매우 많은 성령의 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인, 방언과 예언, 병고침 통변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의 모임도 매우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즉, 열심히 모여 교제하는 교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 아볼로와 같은 유능한 목회자들이 거쳐간 곳입니다. 그리고 교회 재정도 꽤 넉넉한 교회로서 구제활동에 대단한 열심을 가졌습니다. 어쩌면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들 중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지적이며, 능력과 은사가 풍부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불과 3-4년만에 대단히 급속도로 성장한 교회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교회들이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교회일 것입니다. 이처럼 고린도교회는 장점이 많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전서후서를 기록한 이유는,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여러 서신서 가운데 가장 꾸중이 많은 서신서가 바로 고린도서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의 문제점은 어떤 것입니까? 분쟁의 문제입니다. 고린도교회안에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1-4장)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음란한 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서모와 통간을 하거나(5장), 이방신전에서 음란 행위를 하는 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또, 우상숭배의 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10장), 또, 부자 성도들이 가난한 성도들을 업신여기고 차별하는 죄가 있었습니다.(11장), 또, 하나님께 얻은 자유를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여 방종이라는 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은사를 잘못 이해해서 섬김을 위함이 아닌, 자랑과 과시로 사용하는 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성도라는 거룩한 신분이 되었지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난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기 위해 고린도서를 기록하여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라는 거룩한 신분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난 모습은 2000년 고린도교회 성도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 시대 한국교회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 역시, 분쟁하고, 음란하고, 우상숭배하고, 차별하고, 방종하고, 자랑과 과시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 앞에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형편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도답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사실 우리의 모습 역시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같이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2.내세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이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성도로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이 세상을 전부로 여기며 살기 때문” 이라고 말을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내세 신앙보다는 현세신앙 곧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을 추구하는 신앙을 갖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12절 말씀처럼 부활이 없다고 여긴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19절처럼 이 땅에서의 삶을 전부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다시말해 내세에 대한 소망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부활이 있음을 말하고, 부활이 있다는 것은 결국,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내세가 있다는 말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이 땅을 소망하지 않고 천국을 소망할 때, 내세신앙을 갖게 될 때, 우리로 하여금 구별된 삶, 더욱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성경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스데반 집사님을 보십시오! 스데반 집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았습니다. 그리고 돌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돌로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행7:56절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곧 천국소망을 소망하는 내세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 아리마대 요셉을 보셉시오! 그는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공의회 회원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막15:43절을 보면, 그를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말을 합니다. 곧 천국소망을 소망하는 내세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였고, 하나님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대상29:15절을 보면,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즉, 다윗 역시 천국을 소망하는 내세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신앙의 인물들, 순교자들 역시 천국을 소망하는 내세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내세신앙으로 인해서 더욱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1세기 초대교회 당시 로마는 그리스도인들을 대대적으로 핍박을 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서 콜로세움 경기장에 넣고 사자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이렇게 끔찍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기독교를 박해한 이유는, 로마사람으로 하여금 기독교 개종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느날 그리스도인이었던 한 엄마와 어린 아들이 로마 군인에게 붙잡혀 콜로세움에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굶주린 사자들의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섭게 달려드는 사자들을 보면서 아들은 엄마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아들을 꼭 안아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눈을 꼭 감고 조금만 참아라! 그러면 곧 눈앞이 환하게 밝아 올거란다!’ 초대교회 시대 많은 성도들은 온갖 핍박과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았던 이유 역시 내세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땅에 한국교회가 세워진 이래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두차례나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첫째는, 일제 강점기때, 신사참배 반대로 말미암는 대대적인 박해를 격었습니다. 둘째는, 6.25 사변으로 인한 가난, 가족을 잃음, 모든 삶의 터전을 상실함이라는 여러가지 시련을 격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한국교회는 이러한 박해와 시련을 잘 견디고 이겨냈습니다. 과연 무엇으로 이길 수 있었을까요? 바로 천국을 소망하는 ‘내세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죽음 이후에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리라는 신앙을 가졌기에 온갖 박해와 시련을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더 이상의 박해도 없고, 신앙으로 인한 시련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도리어 마음만 먹으면 신앙생활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신앙을 보면, 구별된 삶은 커녕 더 나약해져 가고, 심지어 세상과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 타협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릅니다. 과연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천국을 소망하지 않고 내세신앙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전부이고, 죽으면 그만이라고 착각하며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풀과 들의 꽃과 같이 금방 시들 것이고(시103:15-16절), 안개(약4:14절)처럼 금방 사라질 것이고, 날아가는 화살(시90:10절)처럼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이 정하신바 대로(히9:27절)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있을 심판의 결과대로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십시오! 내세신앙을 갖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분명한 내세신앙을 가지게 되면,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에 많은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욕심부리며 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우선순위인가를 명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더 이상 신앙의 갈등이나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보다도 더욱 성숙하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소망하는 신앙 곧 내세신앙을 가지고 살기 바랍니다.

  3.내세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
 그렇다면, 내세신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돈, 명예, 권세, 육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섞어질 것이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말씀, 사랑..., 등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 사랑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내세신앙을 가진 자의 합당한 삶인 것입니다.

 둘째는, 하루 하루를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때 기복신앙과 더불어 내세신앙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들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세신앙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세신앙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즉, 내세신앙을 막연히 죽어서 천국가는 것만 소망하는 신앙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주어진 현실과 책임을 외면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내세신앙은 죽어서 천국가는 것만을 지향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내세신앙은 현세 곧 현실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임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작가인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 라는 자신의 책에서 ‘현세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내세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의식을 놓치면 안됩니다. 그리고 언제든 주님 앞에 서는 날 부끄러울 것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 오늘이라는 하루를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하루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내세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본문과 삶
 1)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것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2)그러므로 이 땅이 아닌, 천국에 소망을 두고, 내세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3)그럴 때, 지금 보다 더욱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수 있게 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영원한 것을 추구하고, 주님계신 저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 하루에 책임을 다하는 진정한 내세신앙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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