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5:8-11절 고린도전서 강해56
제목 : 겸손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어거스틴이라는 사람을 잘 아실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역사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으며, 무엇보다도 최고의 성자라고 불리웠던 사람입니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어거스틴을 찾아와 다음과 같이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첫째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어거스틴은 ‘겸손입니다.’ 라고 대답했답니다. 그 사람이 또다시 그러면 ‘둘째는 무엇입니까?’그러자 어거스틴은 또 다시, ‘겸손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또 다시 ‘그럼 셋째는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어거스틴은 ‘셋째도 겸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거스틴은 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천사를 마귀로 만든 것은 교만이며 인간을 천사로 만든 것은 겸손입니다.’ 그렇습니다. 겸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덕목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의 겸손함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가 겸손한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소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겸손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이었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먼저, 8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을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엄마 뱃속에서 9달 10일(280일)의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나왔다는 것입니다. 9월10일에 나와야 할 아기가 8월 15일에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이 작고, 미숙하고 약하다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9절에서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무슨 말입니까? 동료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못난자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심지어 자신은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10절에서 바울은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바울이 참 겸손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대단히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겸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실 자랑할 것이 굉장히 많았던 사람입니다. 예를들면, 빌3:5절 이하를 보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여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자라’라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하기 이전의 삶을 소개합니다. 분명한 것은, 바울은 부활을 목격하기 이전에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스펙을 가졌고, 엘리트였고, 내세우고 자랑할 것이 대단히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자였습니다. 결코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이후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빌3:7-9절을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라고 말을 합니다. 또, 고후11:23절 이하를 보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격었던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격었습니까?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했고, 메도 수없이 맞았고, 여러번 죽을뻔 했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에 맞았고, 세 번 파선하고,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형제의 위험,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 그가 격은 일들을 말합니다. 이처럼 부활을 목격한 이후 바울은 신앙안에서 결코 형편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자랑할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바울은 1,2,3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많은 교회를 세웠고, 많은 사람을 구원했으며, 유럽 선교의 문을 열었고, 이신칭의 교리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한 사람이며, 많은 기적도 행했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린 사람이며, 천국도 경험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결코 형편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누가봐도 대단하고, 누가봐도 훌륭하고, 누가봐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바울은 자신이 만삭되지 못한자 같고, 사도중에 가장 작은 자이며, 사도라 칭함을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겸손하십니까? 내가 겸손한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겸손한 사람은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교만한 사람이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교만한 성도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먼저, 한 성도가 말하기를 ‘우리 개는 슈퍼에 가서 물건도 사온다니까요. 다 주님의 은혜죠’ 그리고 이 말을 듣고 있던 또 다른 성도가 ‘우리 개는 슈퍼 가서 카드로 서명하고 물건을 사올 정도라니까요. 이보다 더 큰 주님의 은혜가 어딨겠어요? 호호호’ 이 말을 듣던 권사님이 지고 싶지 않아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 슈퍼 주인이 우리집 개요, 우리집 개’ 이처럼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도 자랑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겸손하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는, 남을 높여주는지 깍아 내리는지? 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깍아내리지 않고 도리어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빌2:3절을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 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은 낮추지만, 다른 사람을 낮추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다른 사람을 높여주게 됩니다. 여러분! 만약 다른 사람을 깍아내리는 모습이 있다면 겸손하지 않은 것입니다.
셋째, 기분과 감정, 자존심의 상함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즉, 겸손한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쉽게 기분이나 감정, 자존심이 상하지 않습니다. 쉽게 마음의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겸손함이 없는 사람은 작은 일에도 쉽게 기분이나 감정이 상하고, 마음에 분노가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은 조선의 간디로 불리우는 고당 조만식선생님을 아실 것입니다. 이분은 믿음은 좋은 장로님으로서 일제시대 평양에 있는 산정현교회 수석장로였습니다. 산정현교회 수석장로로 시무하고 있을 때 고당은 자신의 제자인 주기철이라는 젊은 목사를 청빙하여 담임목사로 세우고 보필을 하였습니다. 당시 저명한 민족지도자였던 조장로님은 늘 바쁜 몸이었고 게다가 방문객이 많아서 항상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예배 시간에 지각하는 예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어느 날, 예배 시간에 몇 분 늦어 헐레벌떡 예배당에 들어서는 조장로님을 향해 주목사는 예배를 인도하다 말고 큰 목소리로 ‘조 장로님은 늦었으니 자리에 앉지 마시고 예배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계시오.’ 라고 호령했다고 합니다. 이럴 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나가든가, 서 있더라도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장로님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한시간 반 동안을 경건하게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 중이던 산정현 교회 수백명 교인들은 수석장로와 담임목사간의 알력으로 교회가 시험들 것을 염려하여 순간적으로 걱정이 태산같았다고 합니다. 주목사님께서 설교를 마치고는 ‘서 계시는 조 장로님, 기도해 주십시오.’ 하니, 조장로님은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시한 죄를 용서하옵소서...’라고 기도 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겸손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셨습니까? 어떻습니까? 겸손하십니까? 그렇다면, 더 겸손하십시오! 혹시, 겸손하지 못하십니까? 그렇다면, 겸손해지기 위해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2.왜 겸손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왜 겸손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겸손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다울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겸손할 때 비로서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어느 교회보다도 지식과 능력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또한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서신서 보다도 책망과 꾸중이 많았습니다. 그 만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그들 안에는 늘 자랑이 많았고,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이기적인 모습만 있었습니다. 겸손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다움을 잃어버릴 때가 언제입니까? 대부분이 겸손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겸손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겸손의 신앙의 척도가 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일수록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겸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겸손하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겸손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마21:5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또, 마11: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 고 겸소늘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더나가서 성경이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합니다. 빌2:3절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 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벧전3:8절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벧전5:8절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그러므로 우리들이 겸손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약4:6절 ‘하나님이 교마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또, 시10:17절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벧전5: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시22:26절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잠언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겸손해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3.어떻게 겸손 해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겸손 해질 수 있을까요? 4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교만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마치 컵에 깨끗한 물을 담기 원한다면 이미 담겨져 있는 더러운 물을 버리는 일을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교만을 버리는 회개의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일대 일로 만나는 시간을 갖아야 합니다. 즉,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경건시간을 갖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건의 시간을 놓치면 치명적인 결과가 옵니다. 형편없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교만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름을 놓치는 출발점이 말씀과 기도를 놓치는 순간임을 평생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갖아야 합니다. 그럴 때 겸손해 질수 있습니다.
셋째는, 시련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예를들면, 바울에게도 육체의 질병이라는 시련이 있었습니다. 안질환 또는 간질일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하나님께 3번 간구했고,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때 바울 사도가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자고 하지 않게 하려’입니다. 즉, 겸손을 위해서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잘아는 스펄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심한 통풍이라는 질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펄전 목사님은 그 통풍을 ‘하나님이 자신을 교만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손길’ 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찾아오는 시련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기 위한 손길’입니다. 이 의미를 알 때, 우리는 더욱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 매일 하나님과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가장 강조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울의 겸손은 결코 힘들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닙니다. 즉, 그가 노력했기에 겸손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겸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바르게 인식하고 깨달게 됨으로 나온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에게는 자랑거리가 많지만,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게 될 때, 더 이상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과 죽은자와 같은 자임을 깨달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삼하16장을 보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 의해서 반역을 당하고, 급히 예루살렘에서 도망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을 따라 다니면서 ‘피 흘린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거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라고 저주를 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상하고 자존심 상하는 순간입니까? 그러자 다윗의 충신이었던 아비새가 가서 죽이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자가 누구겠느냐’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사람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항상 하나님 앞에 서고, 십자가 앞에 서게 될 때, 겸손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십자가 앞에 서기 보다는, 사람들 앞에 서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겸손이 아닌 교만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서십시오! 십자가 앞에 서십시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모든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의 요구이시기 때문입니다.
2)그리고 겸손할 때, 그리스도인답고,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2)그러므로 겸손하기 위해서 회개, 경건의 시간,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십자가를 통과한 자임을 기억하고 항상 겸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