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5:1-8절 고린도전서 강해54
제목 : 예수님의 죽음이 요청하는 삶!
성도들의 삶속으로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대단히 이기적이고 편협한 종교라고 말을 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종교들은 타 종교에 대해서 굉장히 관대하고 너그럽지만, 우리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해서 대단히 배타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더 배타적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대단히 이기적인 종교라고 말을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곧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들에게 주는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구원의 유일한 길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2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3-4절에서는 복음이 무엇인가를 말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심입니다. 그리고 5-8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가장 먼저 게바 곧 베드로에게 보이셨고, 그 후로 12제자에게 보이셨고, 그 후 500여 형제들에게 보이셨고, 그후 야고보와 바울 자신에게까지 보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묵상할 내용입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까요? 복음을 믿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크게 2가지로 주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주장 첫째는, 어떤 종교이든 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예를들면, 불교를 잘 믿고, 천주교를 잘 믿고, 이슬람교를 잘 믿고, 힌두교를 잘 믿고, 그 외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통일교, 안식교, 천도교, 구원파..., 등 무슨 종교이든지 잘 믿으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라고 합니다. 즉, 결국 모든 종교의 끝은 같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교회에 올 때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입니다. 큰 길로 오는 길이 있고, 작은 사이 길로 오는 길도 있고, 멀리 돌아서 오는 길고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교회에 올 때, 이마트 앞 사거리에서 직진해서 교회에 오기도 하고, 아니면 이마트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서 뉴코아 아울렛길로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길은 다르지만 교회에 도착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주장이 이러한 것입니다. 어떤 길(종교)을 가던 목적지(구원, 천국)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다원주의 경향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방송에서 고 김수환추기경이 타종교 지도자들과 대담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인간으로서 참되게 사는 사람을 다 구원해 주신다.’ 그리고 긍정의 힘으로 유명해진 조엘 오스틴 목사도 방송에서 모든 종교의 구원을 인정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섬겼던 유명한 목사님도 동국대강연에서 ‘각자의 구원의 길’이 있다고 연설을 했습니다. 참으로 심각한 일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요14: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인간이 가지는 죄의 문제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종교다원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외칠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장하는 구원의 방법, 둘째는, 착하게 살고, 선행을 많이 행하면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은 구원에 이를만한 선(의)함이 애당초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2:1절에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대하여 의에 대하여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엡2:8-9절에서‘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들이 선함과 의로움이라는 자격과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롬5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롬5:6-10절을 보면,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들을 구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시, 구원이 우리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계7:10절을 보면, 구원받은 사람들의 총수인 144,000명이 하나님께 찬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여러분! 구원받은 144,000명이 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구원받음의 이유가 자신 안에는 전혀 없고,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구원은 우리의 자격과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은 우리의 자격과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받은바 구원에 날마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받은바 구원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 가는 것입니다. 더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고, 더욱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도록 나를 만들어가는 책임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 모두는 이러한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이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나의 죄인 됨을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더 중요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고전12-14장 걸쳐 은사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라고 말을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다시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만일 몰랐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은사에 대한 가르침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은사에 대한 이야기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요청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들에게 요청하는 삶은 무엇일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점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 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강조하는 이유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더 지식을 가지는 것, 더 능력을 갖는 것, 더 많은 은사를 행하는 것..., 등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은 지식을 갖는 것, 더 많은 능력을 가지는 것, 더 많은 은사를 행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더 많은 은사를 행하도록 사모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 일입니다. 여러분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더 많은 지삭, 능력, 은사를 갖는 일에 관심을 갖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신앙생활이 자랑과 과시의 수단이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해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기초, 신앙의 핵심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구원도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하게 되는 것이고, 능력과 은사도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바르게 인식할 때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고,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겸손할 수 있고,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용서할 수 있고,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감사와 기쁨이 생기고,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써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제게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 이라고 했는데 왜 자꾸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라고 말하냐고 묻고 싶은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인됨은 법률적인 의인이라는 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실질적인 의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지 우리가 본질적으로 의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죄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의인이라는 칭호에 걸 맞는 존재가 되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받기 위해서도 죄인이라는 인식이 중요하고,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인이라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신자와 불신자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는가 안하는가 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는 사람들이고, 불신자는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 묻습니다. 좋은 신자와 나쁜 신자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역시 자신의 죄인됨을 얼마나 인정하는가? 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참으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의 한결같은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딤전1:15절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니라’입니다. 또, 롬7: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바울은 자랑할 수도 없고, 과시할 수도 없고, 교만할 수도 없고, 누군가와 경쟁할 수 없고, 내 뜻을 고집할 수 없었고, 불순종 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늘 인식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참 잘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죄인됨을 잊어버리고, 죄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고, 도리어 능력을 갖고, 응답을 받고,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처럼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핵심, 신앙의 기초인 자신의 죄인됨을 늘 인식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3.우리도 서로를 위해 십자가를 져주는 삶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들에게 요청하는 두 번 째 삶은 우리도 서로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죽어주는 삶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하나님께 받은 것은 모두가 우리의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예를들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도 누군가를 구원하는 사명을 받은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이고, 우리가 용서를 받았다면,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가 긍휼함을 얻었다면, 우리가 도우심을 받았다면, 우리가 응답을 받았다면, 우리가 위로를 받았다면, 우리가 새힘을 얻었다면, 우리가 마음의 상처의 치유를 받았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행해주신 모든 것이 우리의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된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주셨다면, 우리도 죄인된 서로를 위해서 십자가를 져주고, 십자가에서 죽어주는 삶을 살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너무나도 막연합니까? 그렇다면, 조금 더 쉽게 설명을 드립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십시오! 남을 위해 잠잠하십시오! 남을 위해 억울함을 참으십시오! 남을 위해 우십시오! 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삶이었고,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삶이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삶이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이며, 그리스도인이라는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어주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익한 구원의 길입니다.
본문과 삶
1)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외에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2)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들에게 요청하는 삶이 있습니다.
3)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사는 것과 서로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심 앞에, 의인이라는 칭호 앞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