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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신자의 미친 짓!(고린도전서강해51)
 본문말씀 : 고전14:20-25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5.10.14
조회 : 8,856   추천 : 0  
본문 : 고전14:20-25절  고린도전서 강해51
제목 : 신자의 미친 짓!   

  성도들의 삶속으로 
 요즘 이 세상에는 미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들면, 길고양들의 집을 지어주는 사람에게 아파트에서 벽돌을 던져 죽게한 사람, 어렵게 낳은 아이가 아빠를 더 좋아 한다고 죽인 엄마, 합의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고 시어머니를 묶고 얼굴에 락스를 부어 살인한 며느리, 자신의 차 앞에 끼어들었다고 운전자를 폭행한 사람, 보험금을 받으려고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인후 바늘로 눈을 찔러 실명하게 만든 아내, 심지어 인도의 어떤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이 들자 아내의 머리를 도끼로 잘라 들고 다니기고 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세상에는 미친짓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이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신자로서 미친 짓을 하지 말라고 대단한 강하게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말하는 신자로서의 미친짓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올바른 신자의 삶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신자의 미친 짓?
 우리는 계속해서 고전14장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전14장에서는 여러 가지 은사 중에서 예언과 방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여러차례 여러분에게 말한바와 같이 방언이 무엇이며, 예언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예언과 방언이 가지는 은사로서의 특징을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잘못을 꾸짓고 권면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예를들면, 예언을 통해서는 개인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과 교회의 유익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점과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의미로 바울은 예언을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방언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대단히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23절을 보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라고 까지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방언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미친짓이라고 까지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방언 그 자체가 나쁘거나 악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한바와 같이 방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로 주신 선물입니다. 거룩한 것이고, 복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5절에서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라고 말한 것이며, 18절을 보면,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언이 하나님께 주신 은사이고,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방언 하는 자들을 향해서 ‘미친 짓을 하는 것’이라고 까지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21절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보시면,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히라’ 고 말을 합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바울이 방언의 부정적인 면을 말하기 위해서 구약의 한 본문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이 인용하고 있는 구약의 본문은 어디일까요? 바로 사28:1-1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28:11절을 보면,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고 오늘 본문과 똑같은 말씀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28장에서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신다고 말할 때, 방언을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의 방언을 듣는 백성들은 누구일까요? 먼저, 방언을 듣는 백성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1절을 보면, ‘에브라임’ 이라고 부릅니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대표지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을 듣는 백성은 북이스라엘 사람들 전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앗수르 사람들입니다. 물론, 앗수르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서와 같은 신령한 언어로서의 방언을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앗수르 사람들의 언어는 알아 들을 수 없는 방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앗수르 사람들이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앗수르 방언으로 말을 하게 하시겠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앗수르 나라가 북이스라엘을 그들의 힘과 권세로 억압하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결국, 한마디로 말을 하면, 북이스라엘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앗수르 사람들에게 붙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방언을 하는 일을, 앗수르 사람들이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앗수르 방언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 성도의 방언을 하는 일을, 앗수르 사람들이 앗수르 방언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방언을 듣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고, 도리어 방언을 하는 자들이 방언이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앗수르 방언을 듣는 일이 어떤 유익이 있었겠습니까? 유익보다는 도리어 아픔이고 상처고 괴로움이고, 고통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앗수르 방언을 하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에 대한 자랑과 과시의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방언을 가지고 누구에게도 유익을 끼치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는데 사용하는 일을 신자로서 미친짓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방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모든 은사에도 해당이 되는 것이고, 직분에도 해당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모든 것을 자랑과 과시, 자기 증명의 도구로 삼는 것은 신자로서 미친짓과 다를바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모습은 어떻습니까? 미안한 이야기 이지만, 신자로서 미친 짓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옳은 말, 바른 말, 열심, 수고..., 등 그러나 그것이 은혜를 끼치지 못한다면, 더나가서 단지 자신의 자랑과 과시의 수단이 되다면, 우리 모두는 미친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신자의 올바름
 우리들이 지금까지 신자로서 사람들이나 교회에 유익을 끼치지 못하고, 도리어 신앙의 자랑과 과시를 하는 것들이 모두 신자로서 미친 짓이라는 점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까지 강하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자로서 마땅한 삶, 올바른 삶을 살 것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로서 마땅한 삶은 무엇이고, 신자로서 올바른 삶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을 하면, 은혜를 끼치는 삶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 것입니다. 물론, 은혜를 끼친다는 말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동전의 양면과 같은 말입니다. 예를들면, 고전10:31절을 보면,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 나옵니다. 즉,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이후에 소개되는 32-33절을 보면,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 말을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의 결국은 모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이 결국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점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표적이 무엇입니까? 요2:1-11절을 보면, 가나혼인잔치였습니다. 즉,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신 일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말하는 것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 굴복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또, 요1:14, 16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더라’ 라고 말을 합니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사역을 행하신 목적이 바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더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모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고,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시기 위함이고, 복된 것을 주시기 위한 일들이었습니다. 결코, 단한번도 예수님이 가지신 권세와 능력으로 자신을 위해,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평안함을 위해 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은혜를 끼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받은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 곧 바울, 모세, 엘리야, 사도들... 모두가 자신을 위해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살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을 목적으로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곤충을 비유로 세상에는 3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첫째는, 거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즉, 남에게 해만 끼치는 있어서는 안될 사람입니다. 둘째는, 개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즉,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셋째는, 꿀벌과 같은 사람입니다. 즉, 부지런히 꿀을 모아 자신도 먹지만 남에게도 주듯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거미같은 사람, 이기적인 개미같은 사람, 남에게 유익을 주는 꿀벌과 같은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거미, 개미, 꿀벌 중에 어느 쪽에 속한 사람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실까요? 그것은 꿀벌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사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3.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려면?
 그렇다면, 우리들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기심을 가지고는 은혜를 끼치는 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이기심 때문에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해바다(Dead Sea)를 아실 것입니다.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렇다면, 죽음 바다가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외부에서 물을 계속해서 받기는 하지만 지형의 특성상 물을 흘러 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염분의 농도 약30%나 되어서 어떤 생명도 살수 없게 된 것입니다. 즉,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는, 은혜를 끼칠 수 없는 바다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는 결코 누군가에게 유익을 주는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이기심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합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혜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은혜를 끼치는 일인가를 분별 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은혜를 끼치시기 위함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우리들 역시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삶을 소원하고 목표해야 합니다.
 2)결코 자랑과 과시를 위한 신앙의 삶을 살아서는 않됩니다.
 3)그러기 위해 이기심을 버리고, 지혜를 갖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의 삶속에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구별된 신자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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