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18:21-35절
제목 : 용서 또 용서!
20세기 미국의 어느 교회에 35세 된 담임목사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사냥을 좋았했고, 어느날 사냥을 하러 갔다가 노루인줄 알고 총을 쐈는데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 후 교회와 언론이 들끓었습니다. 교인들은 사람을 죽인 목사가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느냐,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나가라고 난리가 났고, 그 목사님은 교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직들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 죽인 젊은 목사님을 어느 교회가 받아주겠습니까?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이 목사님은 평생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목사님을 용서합시다!’ 이 한 사람의 용서의 제안을 온 교인들이 받아들이고, 믿어주고, 용서를 베풀어서 그분은 그 교회에서 계속 사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 목회 철학은 ‘용서’가 되었습니다. 그 후 이 교회(달라스침례교)는 미국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 목사님은 미국 침례교 총회장, 세계 침례교 총재를 지냈고,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목회자 중 한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크리스웰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1.용서하라
오늘 본문 역시, 우리들에게 용서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미 잘알고 있겠지만,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 장면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7번까지 용서하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칭찬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랍비들은 3번의 용서면 충분하고, 3번 이상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일흔번씩 일곱까지 용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23-35절을 보면, 여러분이 잘 아는 일만달란트 탕감받은자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어느 사람이 임금에게 일만달란트를 빚졌습니다.(20만년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돈, 3만명의 노예를 살수 있는 돈, 성인 8600명이 들수 있는 무게의 돈 -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 그러나 그 큰 돈을 갚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임금이 일만달란트 빚진자를 탕감해 줍니다. 그러나 탕감받은 이 사람은 동관의 100데나리온(2-3달 월급)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습니다. 결국 이 사실을 안 임금은 다시 붙잡아 옥에 가두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비유가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도무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용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용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용서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오늘 본문 32절에서 말하는, ‘악한 종’ 일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러분이 만일 용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용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용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많이 배웠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고, 많이 가졌다고 할 수 있는것도 아니며,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신앙의 연수가 많다고 할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정말 위대한 신앙인들이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순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신앙인들의 모습속에서는 어김없이 용서의 모습이 발견됩니다. 예를들면,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시기심에 이성을 잃은 사울왕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에 의해서 여러 차례 죽음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윗이 사울에게 복수할수 있는 기회가 2차례 있었습니다.(엔게디, 하길라)나 다윗은 사울왕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사울왕을 용서했고, 사울왕의 손주이며 유일한 혈육이며, 사고로 장애를 갖게된 므비보셋을 보살펴 주기까지 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때 4명의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욥에게 지금 당하고 있는 모든 고난이 너의 죄 때문이니 회개하라고 정죄하게 됩니다. 얼마나 욥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까? 그런데 욥은 그런 친구들을 용서했고, 뿐만 아니라, 그런 친구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었습니다.(욥42:10절) 또,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모세에게 반역을 일으킨 사람들이 종 종(약3번)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시기하여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나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미리암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를 용서한 것입니다. 또, 스데반집사를 보십시오!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을 위해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행7:60절)’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용서한 것입니다. 또한, 손양원목사님을 보십시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양아들을 삼았습니다. 이렇듯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용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용서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까지 기꺼이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용서가 중요한 이유
이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용서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우리 모두는 여전히 하나님과 누군가에게 용서받음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용서가 필요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완전한 용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여전히 용서가 필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회개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서로를 용서하는 것이 너무나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3:13-14절에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또, 엡4:32절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둘째, 용서할 때 천국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용서를 비유로 말씀하실 때, 용서가 아닌, ‘천국’ 으로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과연 용서를 말하는 비유 가운데 천국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천국의 가장 큰 특징이 용서라는 점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맞습니다. 천국은 용서의 나라이며, 천국은 용서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용서하는 자만이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용서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용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용서를 ‘가장 이기적인 사랑’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용서란 타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이전에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는, 용서란 타인에게 주는 혜택이기 이전에 자신에게 주는 혜택이라는 말이며, 또는, 용서란 타인을 살리는 것이기 이전에, 자신을 살리는 것이란 말입니다. 맞습니다. 미국의 플로리다병원과 스탠퍼드 의과대학에서는 용서와 분노가 건강에 미치는 결과를 8주의 용서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했으며, 용서를 실천했을 때 사람들의 건강과 삶이 눈에 띄게 개선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분노를 품고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의 건강과 삶이 악화 되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하기 이전에 먼저, 나를 위한 것입니다. 또, 분노는 남을 해하기 이전에 자신을 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속담에 ‘복수를 품는 것은 두 개의 무덤을 파는 것과 같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여전히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용서가 중요하고, 나의 유익을 위해서도 용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용서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3.용서의 사람이 되려면!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용서의 사람이 될수 있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용서의 사람이 될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어떤 것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바램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이룰수 없습니다. 바라는 것을 위해 노력할 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3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용서가 사명임을 잊지 않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서로 용서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에게 용서의 권세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즉, 요20:23절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 제자들에게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계산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손해를 계산하고, 자존심을 계산하고, 명예를 계산하고, 억울함을 계산하고...,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는 7번까지 용서하면 되냐고 묻습니다. 결국, 이 말은 용서하면서 내가 몇 번 용서했는지를 계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계산적인 마음으로는 용서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누군가를 용서했다면, 그 자체를 잊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기도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먼저는 여러분 스스로가 용서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왜냐하면, 용서는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세의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그가 주장한 지동설 때문에 카톨릭의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묻혀있는 푸라우엔버그의 묘비에 그의 기도문이 한구절 새겨 있는데 ‘주님 저는 바울에게 주신 큰 은혜, 베드로에게 주셨던 큰 능력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 십자가 옆에 매달렸던 강도에게 주셨던 용서의 마음을 바랄 뿐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잘못된 카톨릭을 향하여 용서의 마음을 갖기 원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용서의 마음을 갖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해야 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마5: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용서도 포함된 말입니다. 그러면서 연이어서 하신 말씀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입니다. 즉,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용서가 안될 때, 그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축복하며 기도하면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용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이며, 선택이 아닌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날마다의 삶속에서 천국을 누리고, 여러분의 자녀들을 용서의 사람으로 양육할 수 있는 훌륭한 신앙의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