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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말씀을 추구하는 삶!(고린도전서강해49)
 본문말씀 : 고전14:6-12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5.9.28
조회 : 8,462   추천 : 0  
본문 : 고전14:6-12절  고린도전서강해49
제목 : 말씀을 추구하는 삶!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존 워너메이커를 아시지요? 이분은 20세기초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을 세웠으며, 고객은 왕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위대한 사업가입니다. 그가 백화점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 한 기자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회장님,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때, 존 워너메이커 회장이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내 인생의 최대의 투자는 내가 10살때 2달러 75센트를 주고 성경 한권을 구입했소.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워너메이커는 한 평생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붙잡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산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워너메이커를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말씀을 붙잡고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삶으로 위대한 인물이 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 역시 그의 어머니의 신앙교육과 유산으로 물려준 낡은 성경책으로 인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간증했으며, 매우 정열적인 복음 전도자였던 D. L. 무디 목사님 역시 성경을 묵상하던 중 귀한 비전을 품게된 분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십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다시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 것을 결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기적을 따르면 안됩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예언을 하라’ 는 바울의 권면이 무엇인가를 묵상했습니다. 무슨 가르침이었습니까? 말 그대로 예언이라는 은사를 받아 예언의 말을 하라는 가르침인가요? 아닙니다. 첫째는, 내 자신의 유익보다는 교회의 유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계시고, 크고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셋째는, 서로에게 영원불변한 예언이 성경을 통해서 권면과 바르게 함과 위로의 말을 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은 방언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기 이전에 다시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전14장에서 방언과 예언을 언급하는 이유가, 단순히 방언이 무엇이며, 예언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방언은 나쁘고 예언이 좋다고 말하려는 목적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전14장에서 방언과 예언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지난주 예언을 통해서 살펴본바와 같이 이 두 가지 은사를 통해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전반적인 가르침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언을 통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려고 하는 신앙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울은 방언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6절에서는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말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표현들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6절에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절 어찌 알게 되리요, 8절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9절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요, 11절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외국인이 되고..., 등  그렇다면, 바울이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방언이 나쁜 것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방언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선하고 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너희는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가요? 그것은 바울이 방언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을 예를 들어서 신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방언을 통해서 지적하고자 하는 신자들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신기한 현상을 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점을 자세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방언이 무엇입니까? 방언은 우리들이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언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적인 언어이며, 신령한 언어입니다. 그런데 방언을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은사들 가운데 가장 신적인 특징, 또는 신적 간섭이 가장 잘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여러 가지 은사 가운데 가장 신기한 현상이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신앙생활 했던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무엇이 가장 신기했습니까? 어떤 은사를 가장 부러워하셨습니까? 거의 대부분이 방언일 것입니다. 이렇듯 방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기함을 느끼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은사이며, 신적 특징, 또는 신적 간섭이 가장 잘 나타나는 은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가지 은사 가운데 방언을 사모했고, 방언을 최고의 은사로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비, 기적을 따르는 것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전반적인 경향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신앙생활속에서 기적을 보기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신앙생활속에서 어떤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여러분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개입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기적이 없다거나, 신기한 일이 안일어난다거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개입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분명이 그러한 일들은 오늘날에도, 앞으로도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바울의 경고는, 그러한 것을 추구하는 신앙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적어도 한국교회 신자들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여러분은 설교를 듣는 것과 간증을 듣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으십니까? 어느 교회에 부흥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했는데 100명 정도가 모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번 부흥회에서는 유명연예인을 모시고 간증집회를 했다고 합니다. 몇 명이 모였을까요? 약 500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물론, 유명한 목사님을 보는 것보다, 유명한 연예인을 더 보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설교보다 간증을 더 좋아하는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신자들이 설교보다 간증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미가 있기 때문일까요? 은혜가 되기 때문일까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설교는 목회자가 준비하여 전하는 말씀이고, 간증은 어떤 사람이 경험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 예를들면, 기적이나 신비한 일들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입니다. 즉, 설교보다 간증이 신적특징이 더 강하게 들어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설교보다는 간증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에도 분명히 기적과 신비한 일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개입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신앙, 그러한 것들을 목적하는 신앙이 되어서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고 따르는 신앙이 되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수 없고, 신앙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이적과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추종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임금삼으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적과 표적을 보며 예수님을 따르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에게 등을 돌렸고, 심지어 돈 몇푼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 성난 군중이 되었습니다. 즉, 이적과 표적이 그들의 신앙에 참된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적과 표적, 어떤 신비한 것들을 추구하는 신앙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추구하고 따라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것을 예언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방언보다는 예언이 풍성해지기를 구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며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방언과 예언을 통해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신앙의 권면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도 다른 무엇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래야 합니다. 그 이유를 3가지로 말씀 드립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 믿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어느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실 것과 땅을 선물로 주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롯을 믿음으로 살았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말씀을 추구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시1:1-2절을 보면, ‘복있는 사람’ 으로 시작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축복하시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악인의 꽤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말을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좌표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할 때, 우리의 신앙이 더 성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유다왕 요아스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7살이라는 최연소에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스는 왕으로서 유다나라를 신앙으로 잘 통치했습니다. 예를들면, 요아스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전을 보수하며, 백성들을 신앙으로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나이에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갈수록 좋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왕하12:2절을 보면, ‘여호야다가(대제사장)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 라는 말이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요아스는 여호야다를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요아스는 훗날 신앙이 무너졌습니다. 예를들면,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의 경고에도 뜻을 돌이키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을 신앙으로 양육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이기 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신앙이 좋았던 요아스왕이 처참하게 신앙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더 올바르고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복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건강하지 못한 신앙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구체적인 제안!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편안한 신앙생활을 꿈꾸지 마십시오! 여러분! 사람들인 하나님의 말씀보다 기적과 신비를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일은 편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편한 신앙생활, 편안한 신자의 삶을 꿈꾸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살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좁은 문, 좁은 길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경을 매일 매일 읽고 묵상하십시오! 즉, 성경을 읽는 거룩한 습관을 갖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계의 통계를 보면, 매일 성경을 읽는 사람이 15%이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 읽는 사람이 18%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한번도 읽지 않는 사람은 67%나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혹시 그 67%부류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성경을 읽는 거룩한 습관이 있으십니까? 좀 쉽게 숫자적인 얘기를 해봅시다. 여러분은 하루에 성경을 얼마나 읽으십니까? 1시간은 읽으십니까? 30분은 읽으십니까?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셋째로, 순종의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말씀을 추구하는 삶이 될수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말씀을 추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어느날 D. L. 무디(D. L. Moody) 목사님과 동역자인 R. A. 토레이 목사님과 함께 시카고의 높은 전망대에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대화를 하던중 무디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보게 난 하나님이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한다해도 뛰어 내릴 생각이네!’ 이 농담같은 말안에 무디 목사님의 순종의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순종의 의지를 가지고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늘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다른 어떤 것도 추구하면 안됩니다.
 3)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추구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함으로 복된자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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