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2:28-31절 고린도전서 강해43
제목 : 과 더욱직분 큰 은사!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혹시 삼국유사에 니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적이 있습니까? 이 말의 뜻은 ‘인간을 널리 유익하게 하다’ 는 뜻으로서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며, 특별히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독립을 이룬 후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으로 채택된 말입니다. 제가 홍익인간에 대해서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야 할 마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분을 세우심과 은사를 주심의 목적이 바로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갈 것을 결심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직분을 주신 이유?
먼저, 오늘 본문을 보면 3가지 직분과 5가지 은사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이 소개하는 3가지 직분은 첫째는 사도입니다. 사도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으로 예수님께 직접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를들면, 12제자들과 바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대언하는 자들입니다. 셋째는 교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성경에 이 3가지 직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들면, 딤전3장을 보면, 감독과 집사라는 직분도 나오고, 딛1장을 보면, 장로라는 직분이 나옵니다. 또, 엡4장을 보면, 목사라는 직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오늘 본문을 보면, 5가지 은사가 연이어서 소개가 됩니다. 즉, 첫째는, 능력을 행하는 은사입니다. 즉,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는 기적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은사입니다. 예를들면, 하늘에서 비가 내리게 하거나 죽은자를 살리는 것과 같은 은사입니다. 둘째는, 병고치는 은사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대로 병든자를 고치는 신유의 은사입니다. 셋째는 서로 돕는 은사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고, 위로하는 은사입니다. 넷째는, 다스리는 은사입니다. 즉,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은사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장로의 역할을 의미합니다. 다섯째는, 방언의 은사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3가지 직분과 5가지 은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첫 번째로 묵상할 것은,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시는 이유? 또는, 직분자를 세우시는 이유?’ 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합니다. 먼저, 중요한 것은, 교회안의 모든 직분은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집사, 권사라는 직분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을 누가 세웠습니까? 교회 성도들이나 목사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교회의 직분자로 세우셨습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야 은혜 가운데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확신과 믿음이 없으면 맡겨진 직분을 잘 감당하기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나를 직분자로 세우셨음을 믿고, 감사하고, 잘 감당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교회안에 다양한 직분자를 세우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은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직분에 대해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분자를 세우시는 이유는 은사를 주시는 이유가 똑같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기억을 되돌려 봅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교회를 충만하게 세워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자를 세우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고, 교회의 유익을 위함이고, 교회를 건강하고 온전하게 세우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점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행6장입니다. 행6장은 예루살렘교회가 7명의 집사를 세우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7집사를 세운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유익과 교회의 유익을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루살렘교회에는 구제로 인해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간의 갈등의 요소가 많았습니다. 더욱이 성도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사도들이 구제사역으로 인해서 말씀과 기도의 사역에 집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집사를 세운 것입니다. 결국, 교회의 유익,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직분자를 세운 것입니다. 그 결과 행6: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사랑하는교회의 집사이고, 권사입니다. 교역자이고 교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왜 직분자로 세우셨을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목적 외에는 다른 목적이나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대로 직분을 잘 감당하고 계십니까? 즉, 성도와 교회에 유익을 주고 계십니까? 과연 어떤 직분자가 훌륭한 직분자일까요? 교회와 성도들에게 더 많은 유익을 끼치는 직분자가 가장 훌륭한 직분자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자임을 확신하시고, 그 직분을 통해서 성도와 교회에 많은 유익을 끼치는 훌륭한 직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상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2.더욱 큰 은사란?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교회의 직분들 중에 누가 제일 높은 직분일까요? 또, 많은 은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은사는 무엇일까요? 과연 직분에는 서열이 있을까요? 은사에는 높음과 낮음이 있을까요? 맞습니다. 직분이나 은사에는 결코 서열이나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에는 서열이 없고, 은사에는 높음과 낮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오늘 본문을 보면, 직분과 은사에 서열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서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와같이 있지도 않은 서열을 정해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연 바울이 이러한 서열을 통해서 말하려고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무엇을 기준으로 이러한 서열을 말하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과연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서열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성도와 교회에 유익을 많이 주는 것’을 근거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더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교회를 더 세울 수 있는 것을 근거로 서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예로, 첫 번째로 소개되는 사도와 마지막에 소개되는 방언을 비교해 봅시다. 어느것이 사람들과 교회에 유익을 많이 줄까요? 누가봐도 사람들에게 유익을 더 많이 주는 것은 사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더 온전하게 세우는 유익을 주는 것도 사도입니다. 물론, 방언이 아무런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방언도 틀림없이 누군가에게 유익을 주고, 교회의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직분과 은사의 서열을 말함으로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와 타인에게 유익을 주어야 한다.’ 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31절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고전12장을 보면, 다양한 은사들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예언, 방언, 신유, 지혜, 지식, 구제, 능력행함..., 등 그런데 이러한 것보다도 더욱 큰 은사는 과연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사랑’ 이라고 답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랑은 은사가 아닙니다. 성경은 사랑을 은사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이 갖어야 하는 가장 큰 의무와 특징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요13:35절을 보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은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사랑이 은사라고 말한다면, 사랑하지 않음을 은사가 없음으로 핑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잊지 마십시오! 사랑은 은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특징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다른 어떤 은사를 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직분이나 은사를 통해서 교회와 타인의 유익을 위해서 쓰임받기를 사모하라! ’‘교회와 타인의 유익을 주는 삶을 사모하라’ 는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교회와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고전13장에서 소개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확인해 보도록 합니다. 고전13:4~7절 이하에 사랑이 어떻게 소개되는가를 보십시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지 아니 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보고 견디느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소개되는 사랑으로 소개되는 내용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자신의 유익이 아닌, 타인과 교인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는 삶을 살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교회의 유익을 주는 직분자가 될수 없습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마17장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9명의 제자들은 산 아내 있었습니다. 이 9명의 마음을 생각해보십시오! 한 두번도 아니고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히 섭섭하고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때, 9명의 제자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귀신들리고 간질병을 앓는 자신의 아들을 고쳐줄 것을 요구받습니다. 그리고 9명의 제자들은 그 아들을 붙잡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과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9명의 제자들은 귀신들려 간질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보다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침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3명의 제자보다 못난 자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사랑이 아니고는 누구에게도 교회에도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3:1-3절에서 사랑이 없으면 ‘방언도 천사의 말도, 예언도, 믿음도 구제도’다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이 직분과 은사 그리고 모든 것의 기초가 되어야 하고, 사랑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직분이 의미가 있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은사가 큰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말하는 타인의 유익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사랑을 통해서 지금의 직분과 은사가 더 큰 직분과 더 큰 은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3.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이유?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우리들이 타인의 유익,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이유?’ 가 무엇인가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명령이고 의무이기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고 의무입니다.
그러나 또한가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타인의 유익,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살아갈 때, 비로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세를 생각해보십시오!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모세가 처음부터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젊은 시절 혈기가 많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대단힌 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훗날 그렇게 성숙한 사람이 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타인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금송아지 사건으로 범죄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모세의 말이 무엇입니까? 출32장을 보면,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도 지워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목숨보다도 타인의 유익을 소중히 여긴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위대한 사도가 될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역시 타인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롬9장을 보면, ‘나의 형제(이스라엘)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타인의 유익을 위해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타인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은, 희생과 손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의 신앙의 성장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훈련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직분과 은사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본문과 삶
1)특별히 타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2)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받은 직분과 은사를 통해서 타인과 교회의 유익을 끼쳐야 합니다.
3)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타인과 교회를 더 잘섬기고, 그로 인해서 여러분의 신앙도 크게 성장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