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2:12-27절 고린도전서 강해42
제목 :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성도들의 삶속으로
이솝우화에 보면 아주 친한 4마리의 황소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들은 어디를 가든 함께 갔고, 함께 풀을 뜯고, 함께 누워 쉬고, 함께 물을 마시기고..., 무엇이든 늘 함께 했습니다. 이렇듯 항상 함께 했기 때문에 어떤 위험한 일을 만나도 함께 힘을 합해 잘 해결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4황소를 잡아 먹으려고 주변을 맴돌던 사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자는 늘 함께 있는 황소를 잡아 먹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1마리 정도는 얼마든 잡아 먹을 수 있지만, 4마리가 힘을 합하면 아무리 사자라도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자는 궁리 끝에 황소를 잡아 먹을 방법을 찾았습니다. 먼저, 조금 뒤쳐진 황소에게 다가가서 ‘다른 3황소가 네 흉을 보고 있더라’ 고 속삭였습니다. 그렇게 사자는 나머지 3마리 황소에게도 똑같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 4황소는 서로를 불신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사자는 4번의 훌륭한 만찬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연합 또는 함께 함의 중요성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서로 연합해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교회안에서 연합을 이루기 위해 힘쓰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그리스도의 몸
오늘 본문을 보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몸’ 이라는 말과 ‘지체’ 라는 말과 ‘하나’ 라는 말입니다. 즉,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지만 결국은 하나 라고 말을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눈, 코, 입, 귀, 목, 팔, 다리, 손, 발...,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지체도 있지만, 오장육부(오장 :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육부 : 대장 ·소장 ·쓸개 ·위 ·삼초(三焦) ·방광) 라는 보이지 않는 지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체는 한 몸인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안에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 또는 다양한 신앙의 수준을 가진 사람들, 다양한 직분을 가진 사람, 다양한 과거를 가진 사람, 다양한 성품을 가지신 사람,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 다양한 생활환경을 가진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결국에는 한 몸인 것입니다. 특별히 27절을 보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몸과 지체의 비유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와 성도, 그리스도와 교회가 유기체적으로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저는 바울이 더 강조하려는 2가지 이유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몸임을 말하는 이유는, 성도와 교회가 사역 곧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무슨 일이든 머리에서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이루는 일을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곧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뜻하시는 바를 이루어드리기 위한 목적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받고, 성도가 되고 구원받은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단순히 죄용서 받은 것, 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또는 죽어서 천국가는 것만을 목적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사역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즉,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기 위한 부르심인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의 뜻 곧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는 일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이 땅에 세우신 목적 역시, 하나님의 뜻하시고 계획하신 일들을 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은사를 주신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시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많은 것들을 주시는 목적 역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말하기 위해서 바울은 성도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점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일을 하기보다,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했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하나님이 뜻하시는 일을 이루기 보다는 도리어 자기 자랑과 과시를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고린도교회의 잘못을 꾸짖기 위해서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관심 갖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 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 훌륭한 신자입니다. 그러나 만일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복을 받고, 어떻게 하면 내 소원을 이루어 낼 수 있는가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여러분은 고린도교회 신자들과 다를바 없는 아주 나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즉, 여러분을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아주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남은 인생,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어 드리는 훌륭한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분쟁과 불열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 둘째는, 성도들이 서로 연합해야 할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 사이에 분쟁과 분열의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5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 목적을 ‘몸 가운데서 분열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안에는 분쟁과 분열이 심각했습니다. 예를들면, 고전1:11-12절을 보면,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 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고전1:10절에서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안에는 끊임없는 분쟁과 분열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을 고치게 하기 위해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곳이 분쟁이고 분열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분열은 마치 마치 암과 같은 것으로, 교회의 건강함을 깨트리고, 교회 다움을 깨트리는 가장 나쁜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안에서는 갈등, 대립, 분쟁, 분열이 안생기기를 바랍니다. 아닌, 잘 극복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왜 분쟁과 분열이 생겼을까요?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었을까요? 누가 죽을 죄를 지었을까요? 아닙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분쟁하고 분열한 이유는 의외로 사소한 이유였습니다. 즉, 나와 다름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고전1:10절을 보면, 분쟁과 분열을 일으킨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바울이 권면을 합니다. 즉,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 권면을 근거로 분쟁의 원인을 말하면, 난 이렇게 말하는데 넌 왜 그렇게 말해, 내 마음은 이런데 네 마음은 왜 그래, 내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은 왜 그래..., 또한 나는 바울의 설교가 좋은데 넌 왜 아볼로의 설교를 좋아하냐? 난 우상의 고기를 먹는데 넌 왜 안먹냐? 난 방언을 하는데 넌 예언을 하네..., 결국, 나와 다르다는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분쟁이 생기고, 분열이 생기고 만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을 보아도, 서로 다투고 분열하는 이유를 보면, 나와 다름 때문이라는 이유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안에서 일어나는 다툼 역시 다름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주일 예배를 마치고 함께 감자를 먹었습니다. 그때 어떤 분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감자는 소금에 찍어 먹는게 맛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감자는 그냥 먹어야 맛있다. 전 그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 감자는 설탕에 찍어 먹어야 제맛인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다름 때문에 어디서든 분쟁과 분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교회안에서도 상당히 많은 분쟁이 있고 그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역시 다름 때문입니다. 제가 언제가 말씀 드린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분쟁이 생기고 분열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의 근원을 찾아가 보니, 주방에서 깍두기 썰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인즉, 주방에서 주일 반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깍두기를 썰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주방에서 라이벌 관계였던 2분의 권사님의 의견이 달랐던 것입니다. 한분은 큼지막하게 썰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또 한분은 누구나 먹기 좋게 작게 썰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방봉사하는 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교인들에게 퍼지면서 2부류로 나누어져 결국은 분열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교회가 부흥하게 되어서 교회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못되어서 교회가 분열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인즉, 예배당 건축을 거의 다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강단에 카페트 색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장로님은 보혈을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하자는 의견이었고, 어떤 장로님은 말씀의 꼴을 선포하는 곳이니 초록색으로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색깔 논쟁으로 인해서 당회가 열렸고, 당회에서도 의견이 나눠어져, 공동의회를 하게 되었고, 그리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교회가 분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웃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웃기는 일이 많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외일까요? 아닙니다. 극단적인 분쟁까지는 아니지만, 순간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분쟁과 분열을 멈추고, 연합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 묻습니다. 다름은 죄일까요?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나가서 나와 다름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찾아봅시다. 17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렇습니다. 온 몸이 다 똑같은 눈으로 이루어졌다면 어떨까요? 무섭지요. 뿐만 아니라 보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또, 온 몸이 다 똑같이 귀라면 어떨까요? 보기 않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듣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 것이 없울 것입니다. 또, 만일 여러분 모두가 저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말하고, 똑같 행동하고, 똑같은 것을 좋아하고, 똑같은 것을 잘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재미는 둘째 치고,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 갈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다름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큰 축복인 것입니다. 이처럼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축복으로 여길 때, 교회는 분쟁과 분열을 극복하고,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의 귀한 일에 더욱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3.정말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
이제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오는 것,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 전도 열심히 하는 것...,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자보다 더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서로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혹시 교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미워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만이 아니라, 그 사람도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바라 볼 때, 항상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며, 서로를 소중하고 귀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함께 잘 하려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혼자만 잘하는 것은 진정 잘하는게 아니라 함께 잘하는 것이 진정 잘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2인3각 경기와 같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난 혼자 잘한다고 잘하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함께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26절을 보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서로가 함께 잘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 늘 함 몸임을 기억하고, 사랑으로 기다려 주고, 이끌어 줄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2)무엇보다도 교회안에서 분쟁이나 분열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3)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고, 무엇보다 함께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알고,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