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서 개인차가 있지만 4살정도 되면 질문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이것이 뭐야?”라고 합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느순간에 질문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수업시간에 질문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제일 좋아하는 학생이 바로 질문하는 학생입니다. 왜냐하면 배우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인생 평생에 걸쳐서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정답을 찾고 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항상 하나님께 묻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면서 신앙이 성장되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더욱더 신앙 성장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께 묻지 아니한 이스라엘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정복하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정복하자 가나안 족속들은 서로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 백성과 맞서 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히위 족속에 속한 기브온 주민들이 꾀를 냅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속여서 화친을 맺게 하기로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스라엘은 점령할 도시의 사람들과 화친을 맺지 않도록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해어진 전대와 낡아 빠져 기운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마르고 곰팡이가 난 빵을 가지고 자신이 먼 곳에 온 것처럼 변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들은 멀리 온 줄 알고 그들과 조약을 맺게 되어집니다. 나중에 여호수아는 그들은 가나안땅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어지고 그들을 저주하여서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이 되어집니다. 이 사건은 여호수아의 지도자 생활의 실수로 남게 되어집니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왜 실수를 했을까요? 그것은 14절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다시말해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을 자세히보면 무리가 이 사건을 결정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는 여호수아만의 결정이 아니라 무리 즉,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과의 회의에서 나온 결정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이런 중대한 사건을 하나님께 묻기보다 지도자들에게 묻고 회의를 통해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호수아와 백성의 장로들이 회의 하기 전에 하나님께 묻고 결정했다면 더 좋은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실수를 저지르게 되어집니다. 우리들도 결정의 순간에 하나님께 묻지 않아서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정의 순간마다 많은 고민을 하고 때로는 신뢰되는 사람에게 상담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보다 지혜로우시고 우리의 앞길을 아시는 하나님께 물어본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묻고 그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펜을 찾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러자 화장실에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찾아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는 분도 계십니다. 이런 것이 조금 정도가 지나쳤지만 하나님께 묻는 습관들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아까 이야기했다시피 교사는 절대로 질문하는 학생을 귀찮아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질문하는 학생들을 좋아하고 그들에게 성심성의껏 가르쳐 줍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날마다 묻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말 좋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매순간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묻는 습관을 가지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묻는 삶을 통해서 신앙을 성장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는 것은
여호수아의 실수는 이번 사건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 바로 두 번째로 한 실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성과의 전투를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여호수아는 아이성을 정복하려고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들은 아이성이 작다고 해서 2,3천명만 가면 충분이 승리하게 할수 있다 보고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만약에 여호수아가 아이성과 전투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았다라면 이런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또 기브온 주민들과의 화친 사건을 통해서 실수를 하게 되어집니다. 실은 두 번 실수하면 실수가 아니라 실력입니다. 그렇기에 여호수아가 한 실수는 단수히 실수라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그의 신앙의 실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바로 묻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까 4살정도의 아기가 부모에게 “이게 뭐야?”라고 질문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질문한다는 것은 바로 부모가 다 알고 있다는 믿음과 신뢰라는 전제하에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더욱더 의지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의지하기 보다는 내 힘을 의지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여호수아가 묻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친을 결정할 때 하나님보다 무리 즉, 지도자들을 의지하여서 결정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 묻지 않는 삶은 바로 삶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날마다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아 갑시다.
그런데 날마다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산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무엇인가 얽매이고 자유하지 못한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을 자유와 함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내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살아간다고 해서 죄를 짓는다면 방탕과 방종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 하상욱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시는 아주 짧지만 정말 공감이 많이 되고 무엇인가 할말을 해주는 시입니다. 예를 들어 소개하겠습니다. “어딜 자꾸, 기어올라” 이시의 제목은 “세금”입니다. 하나 더하겠습니다. “내가 흔들려도, 믿고 꽉 잡아줘” 이 시의 제목은 “버스 손잡이”입니다, 제가 이 사람의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자유와 공감되는 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 후련하다가 찝찝해지고, 하고 싶은 말을 안하면 답답하다가 잘했다싶고” 여기서는 말에 대한 자유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무슨 말을 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욕을 하는, 남을 비판하는 말을 할수 있지만 이것을 한다고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바로 욕하고 싶고, 비판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어도 참고 인내하고 은혜의 말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자유를 얻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만 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바로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자들이 누릴 수 없는 자유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사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수 있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묻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 의지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여호수아의 실수는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은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보다는 내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사는 자유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세상의 고민의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취업고민, 경제고민, 자식고민, 건강고민 등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하게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고민들을 하나님께 묻는다면 이보다 좋은 해결책을 없을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묻는 삶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축복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묻는 삶을 통해서 더욱더 신앙성장되는 여러분들이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