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1:17-34절 고린도전서 강해40
제목 : 교회가 가장 힘써야 할 것!
성도들의 삶속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세쿼이아 국립공원’이란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2500~3000년된 ‘세쿼이아’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인데, 이 세쿼이아 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라고 합니다. 무려 137m나 되고, 둘레도 10m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쿼이아 나무는 높게 자라는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에 상하다고 합니다. 즉,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절대로 뿌리체 뽑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요? 뿌리를 깊게 내렸기 때문일까요? 학자들이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연구한 결과 전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세쿼이아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강풍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그 주변의 나무들끼리 뿌리가 서로 뒤엉켜 여러개의 나무가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한 바람을 견디고 오랜 세월 가장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서로가 협력하는 일, 특별히 하나가 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훈하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역시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바로 ‘하나됨’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교회의 하나됨의 중요성을 확인하시고,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 번째로 묵상할 것은, ‘열심히 모여야 한다’ 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모이는 일에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읽은 본문 안에서만 ‘모인다’ 라는 말이 6번이나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모이는 일에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고린도교회 성도들만 모이는 일에 열심을 낸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에서 소개하는 예루살렘교회 성도들 역시 모이는 일에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행2:46절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모든 시대 모든 성도들이 모이는 일에 열심을 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히10: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모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로 모이는 일을 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모임에 열심을 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도의 모임이 신앙에 큰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무디 목사님이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데 한 청년이 찾아와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꼭 교회에 나가야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까?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하면 되지 않습니까?’ 무디 목사님은 아무 대답도 없이 벽난로의 장작들을 흩뜨려 놓았습니다. 그러자 장작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고 금세 방안에 냉기가 감돌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보게 조금 전에는 온 집안이 훈훈했는데 지금은 왜 이리 추운 줄 알겠나?’ ‘목사님께서 장작을 흩뜨려 놓아 불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님은 청년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교회도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며 성령의 불이 타오르게 되는 걸세. 모여서 서로 대화하며 삶을 나누어야 사랑의 불이 훈훈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일 때 신앙의 유익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120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셨고, 예수님도 두 세 사람이 모인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장)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모임은 우리의 신앙에 큰 유익을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집에서 혼자 찬송을 불러도 은혜가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함께 할 때 더 큰 은혜가 됩니다. 또한 우리들이 혼자 기도해도 응답이 있지만 함께 기도할 때 더 큰 응답이 있습니다. 또, 우리들이 혼자 전도해도 기쁘지만 성도들이 함께 전도하면 더 기쁘고 큰 힘이 납니다. 그 외에 성도들이 모일 때 얻는 유익들은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위로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힘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함께 모이는 일은 우리의 신앙에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예배의 모임, 기도의 모임, 봉사의 모임, 교제의 모임..., 어떤 모임에든지 열심을 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모일 때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모임이 해로운 모임, 판단 받는 모임, 부끄러운 모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모이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모임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17절을 보면, 해로운 모임이었기 때문이고, 34절을 보면, 판단(책망받을 만한) 받는 모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성도들의 모임중에서도 때로는 해로운 모임이 되고, 판단받는 모임이 될 때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누군가를 험담하는 모임이 되고,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모임이 되고, 편을 나누는 모임이 되고, 세상의 것을 자랑하는 모임, 은혜를 까먹는 모임이 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런 모임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심히 모이십시오! 그리고 그 모임이 칭찬받을 만한 모임이 되도록 힘쓰십시오!
2.하나 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와 성도는 모이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이제는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즉,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 가장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 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만찬을 꾸중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성만찬을 꾸중하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고린도교회안에 생겨난 모든 다툼과 분쟁의 원인, 불씨가 성만찬 모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17절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절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그렇다면, 왜 성만찬이 다툼과 분쟁이 원인과 불씨가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십시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어떤 방식으로 성만찬을 시행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는 성찬식과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크게 2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첫째는, 성찬의 횟수가 다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1년에 3-4번 정도, 많아도 한달에 한번 이상은 성찬식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식사와 성만찬을 겸하여 시행했습니다.(21절, 예수님의 성만찬도 식사와 겸해진 것) 둘째는, 모이는 장소가 다릅니다. 오늘날의 성찬식은 대부분 교회안에서만 시행이 됩니다. 그러나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교회건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모임이 성도들의 가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성만찬 역시도 성도들의 가정에서 시행이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사는 부자 성도들이 자신의 집과 마당을 제공했을 것입니다.(마가의 다락방처럼)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이 함께 먹을 음식을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 사는 성도들은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먼저 모여 집안 또는 거실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온 음식을 먼저 먹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은 음식을 가지고 오지 못했고, 마당에서 음식을 내다 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늦게 먹었거나, 음식이 부족해서 먹지 못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자연스럽게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었을 것이고, 분쟁이 생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즉, 성만찬으로 인해서 교회의 하나됨이 깨어지게 된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교회의 하나됨을 깨트리는 성만찬을 꾸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성만찬의 실패를 신앙의 실패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나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특별히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가지로 설명을 드립니다. 첫째는, 구원의 핵심이 하나됨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죽어서 천국가는 것, 죄용서 받은 것, 영생을 얻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아실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구원을 말할 때, 죽어서 천국, 영생으로만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런 의미보다 더 자주, 더 중요하게 말하는게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이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핵심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가족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엡2:19절에서는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이란 우리들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름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하나됨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는, 교회의 본질과 능력이 하나됨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돋보기로 종이를 태워보신적이 있습니까? 종이를 쉽게 태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초점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 모아지면 곧 종이를 불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점을 모으지 못하면 종이를 태울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구원받은 공동체가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됨을 이루면 정말 위대한 교회, 대단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늘 동경하는 교회가 무엇입니까? 바로 초대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외향적으로도 환경적으로, 성도들의 신분을 보아도 별로 대단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정말 놀라운 일을 한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예를들면, 그 시대에 왕과 지도자들도 하지 못했던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고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또, 자신을 집을 오픈하고 열심히 모였습니다. 또,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일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기적도 능력도, 어마 어마한 일도 많이 행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이 하나된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늘 한마음 한뜻, 한몸과 같은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행2-6장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구원받은 우리 모두가 하나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장차 교회의 지도자들이 될 제자들을 위해 무엇이라고 기도했습니까? 요17:21절에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듯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 되는 일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다양한 방법으로 교회의 하나됨을 깨트리려 합니다. 때로는, 욕심이라는 방법으로, 교만이라는 방법으로, 이기심, 무관심, 자존심, 말실수..., 등 그리고 결과에 대한 집착을 갖게 함으로 하나됨을 깨트립니다. 성경에도 교회의 하나됨을 깨트리려고 공격한 사탄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과부의 구제 사건입니다. 그리고 당시 교회는 하나됨이 깨어지는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함으로 교회가 더욱 견고하게 세워졌습니다. 이렇듯 사탄은 교회와 성도의 하나됨을 깨트려서 우리와 교회를 패배자가 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못하는 죽은자 죽은것과 같은 교회가 되어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어떤 일보다도 하나되는 일을 우선을 알고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3.어떻게 하나됨을 지킬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 되는 일을 이룰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하나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것이 참 많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교만하면 결코 하나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온유함이 필요합니다. 온유함이란 다른 사람을 따듯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가 없이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또, 용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공동체 안에는 언제든지 문제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서가 필요합니다. 또, 희생이 필요합니다. 또, 롬15:1-2절 처럼‘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사랑, 자비, 긍휼..., 등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더 중요한 한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33절에 ‘기다림’ 이라고 말을 합니다. 즉, 배고픈자를 기다려는 주는 자세야 말로, 하나됨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기다려주는 신앙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문제를 하나 내 보겠습니다. 1시간에 2km 걸수 있는 사람과 1시간에 4km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걸으면 몇 km를 걸을 수 있을까요? 2km입니다. 이런 마음이 기다림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를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하나됨을 지키게 되기를 바랍니다.(예배의 자리에 나올때까지, 기도의 자리에 나올때까지, 순종의 자리에 나올때까지, 신앙의 수준의 자리에 나올때까지..., 등)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이며 사명공동체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모이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2)무엇보다 하나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3)하나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버리고, 기다려줄 줄 아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됨으로 더욱 능력있게 사역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