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1:2-16절
제목 :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고린도전서강해39)
성도들의 삶속으로
어떤 남자 성도가 어느날부터 교회를 멀리하고 안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찾아가서 왜 교회를 안나오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남자성도가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교회에 가면 마음도 평안해지고, 목사님 설교도 너무나 좋고, 찬송을 부르면 위로를 받게 되고..., 등 다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안에서 성도들과 상냥하게 웃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설거지하는 아내를 보면 교회에 가기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유인 즉은, 아내가 교회에서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하고, 즐겁게 설거지를 열심히 하는데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늘 짜증만 부리고, 살림도 제대로 안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만 오면 딴 사람처럼 행동하는 위선적인 모습이 보기 싫어서 교회에 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마음의 찔림은 없습니까?
1) 연결 - 오늘 역시 교회 밖에서, 특별히 가정안에서의 신앙과 삶을 실패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고린도교회 여자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신앙의 열심과 은혜받는 일
먼저, 2절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시면, 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얼마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장점이 많았습니다. 즉, 칭찬받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들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알고자 하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의 수준이 상당했습니다. 칭찬받을 만한 모습입니다. 또한, 은사를 사모하는 마음도 대단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들 사이에 다양한 은사가 풍성했습니다. 예를들면, 방언의 은사, 통변의 은사, 예언의 은사, 병고치는 은사, 영분별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 등의 은사가 풍성했습니다. 이럴 정도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은사를 사모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칭찬받을 만한 모습입니다. 또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성도의 모임을 소중히 여기고 모이기에 힘을 썼습니다. 이것 역시 칭찬받을 만한 모습입니다. 또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안에서 무엇을 하든지 대충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칭찬받을 만한 모습입니다. 또한, 고린도교회는 구제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것 역시 칭찬받을 만한 모습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가르쳐 준대로 순종했음을 말합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통’을 지켰다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은 교회의 관례를 잘 지켰다는 말입니다. 예를들면, 교회가 지켜야 할 절기, 교회가 지켜야 할 예배형식, 교회가 지켜야 할 의무..., 등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역시 칭찬받아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4-5절을 보면,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바울의 이 말속에는 꾸중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꾸중이전에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고, 예언(설교 및 가르치는 사역 – 김세윤박사)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 역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칭찬받을 만한 점이 많았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칭찬받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이 교훈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사랑하는교회 역시 칭찬받을 것은 많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하는교회를 보시면서 칭찬하실 것들은 많이 있을까요? 서머나교회처럼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칭찬받을 것이 많은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사랑하는교회 성도들로서 여러분 모두도 칭찬받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교회 성도인 여러분을 보며서 칭찬하실 것들은 많이 있을까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사랑하는교회도 주님께 칭찬을 들을 만한 교회가 되고, 우리 사랑하는교회 성도들 역시 주님 앞에 칭찬받을 만한 성도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2.신앙의 열심보다 더 중요한 일
우리들은 지금까지 고린도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칭찬받는 모습을 묵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칭찬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고린도교회 여자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책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5절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라고 말을 합니다. 또한, 13절을 보면, 다시한번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지리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라고 말을 합니다. 과연 어떤 책망을 하는 것입니까? 1차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여자 성도들의 모습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즉,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여자들은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참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중동지역의 여자들의 히잡 또는 차도르, 카톨릭 미사때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미사보) 물론, 여자들이 예배에 참석할 때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안쓰고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만일 중요하다면, 오늘날의 여자 그리스도인들도 카톨릭 신자들처럼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지 않습니까? 이처럼 예배에 참여하는 여자들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안쓰고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여자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 참여할 때에는 반드시 머리에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해를 막기 위함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당시 고린도지역에는 다양한 우상종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우상종교에 참여하는 여자신도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여자성도들이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은 잘못하면 하나님께 예배함이 우상종교의 하나로 비춰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런 오해를 막기 위해서 여자 성도들에게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예배에 참여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역시도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오해받지 않도록 항상 신중하고 절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교회 여자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자성도들이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열심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음에 대해서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여자성들은 신앙의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안에서 많은 은혜를 받고 누렸습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고린도교회 여자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시간에 기도를 했으며, 심지어 예언하는 일(설교사역, 가르치는 사역)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안에서 신앙의 열심을 내고, 은혜받는 일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자 성도들이 교회안에서 신앙의 열심을 내는 것과 은혜받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머리에 쓰라’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만일 바울의 강조점이 여자들의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는 것에 있다면, 어떤 재질로 된 것(면, 나이롱, 모,..,)을 써야 하는지? 또는 얼마만한 크기의 것을 써야 하는지? 어떤 색깔을 써야 하는지? 언제부터 써야 하는지? 즉, 예배당에 들어올 때부터 써야 하는지 예배시작 전에 써야 하는지? 얼마짜리를 써야 하는지?(카톨릭 미사보는 9500원부터 60000만원까지 있음) 머리에 쓰는 것은 어떻게 보관을 해야 하는지? 또는 몇 살부터 써야 하는지? ..., 등 머리에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말들은 무엇일까요? 어떤 말들을 가장 반복하고 있나요? 바로 ‘남자(12번) 그리고 여자(16번)’라는 말을 가장 많이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말은, 3절, ‘여자의 머리는 남자’ 라는 말과 7절의 ‘여자는 남자의 영광’ 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고 말하고, 여자가 남자의 영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9절을 보면, 하나님이 여자를 지으신 목적이 남자를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창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신 가장 큰 목적이 남자를 위함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남자가 높고, 여자는 낮다는 말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합니다. 바울도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1절에 ‘주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절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고 남자와 여자의 평등을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여자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 신앙의 열심을 갖고, 은혜받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 자리에 남편이 함께 하게 하는 일은 놓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머리에 쓰는 그 무엇인가는 ‘남편’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면, 신앙의 열심을 발휘하는 자리에 남편이 함께 하지 않고, 은혜받는 자리에 남편이 함께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바울은 그런 고린도교회 여자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남편을 여러분과 같은 신앙의 열심의 자리와 은혜의 자리에 함께 하게 하는 것은 내 바램이나 노력만으로 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남편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남편을 신앙의 자리로 이끌기 위해서 수년을 노력하는 여자성도들을 많이 봤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남편이 주일을 잘 지키고 세례받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아내가 있고, 남편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간구하는 아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맘처럼 쉬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앙의 열심의 자리, 은혜받는 자리로 남편을 이끌고, 신앙을 세워주는 아내가 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금의 남편의 아내가 되게 하신 목적이 남편의 돕는자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이것을 목표로 힘을 내고, 더욱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합시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중에 난 남편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자녀는 여러분과 같은 신앙의 열심의 자리, 은혜받는 자리에 있도록 하십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녀를 여러분에게 맡기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 중에 난 남자니까 다행이라고 생가가하는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남편의 의무도 여자와 마찬가지로 돕는자임을 잊지 마십시오!
제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교회안에서 신앙의 열심을 갖는 일, 그리고 은혜의 자리에 참여하는 일은 참 잘한 일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칭찬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배우자, 여러분의 가족들 모두가 그 자리에 함께 하도록 하는 일을 놓치지 마십시오! 현명한 아내가 되는 일을 놓치지 마십시오!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는 일을 놓치지 마십시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되는 일을 놓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가정을 이끄는 아버지가 되는 일을 놓치지 마십시오! 만일 놓치다면 오늘 본문의 책망이 바로 여러분을 향한 책망일 것입니다. 그래서 딤전5: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돋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배우자를 신앙의 자리로 이끌고 세우는 일, 가족들을 신앙의 자리로 이끌고 세우는 일을 놓치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지치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가정은 최우선의 사명지입니다.
이제 마지막을 묵상할 것은,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신 공동체 2개가 있는데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정과 교회 중에 가장 먼저 세우신 공동체가 가정이라는 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최초로 주신 최우선의 사명지가 가정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평생 잊지 말아야 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이 최우선의 사명지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반드시 확신하셔야 하고, 가정안에서의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더 큰 칭찬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그리스도인은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본문과 삶
1)교회안에서 신앙의 열심을 내고 은혜 받는 일은 중요합니다.
2)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배우자와 가족들을 그 자리에 함께 하게 하는 것입니다.
3)이 일을 위해 더욱 더 기도하고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그래서 저는 여러분 모두가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주님께 칭찬받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