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0:23-33절 고린도전서 강해37
제목 : 신앙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눈 덮인 들판에서 두 명의 청년이 누가 더 곧게 걸어갈 수 있나 를 내기를 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청년은 최대한 곧게 걷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걸었습니다. 그러나 뒤돌아 보니 활처름 구부러져 있었습니다. 이제 두 번째 청년이 걸었습니다. 한참 후 뒤를 돌아보니 곧게 걸었습니다. 내기에서 진 청년이 어떻게 그렇게 곧게 걸을 수 있냐고 물었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저 앞에 있는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걸었다’ 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목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기독교계의 지도자인 John Maxwell 목사님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바로 목표의 유무라고 말을 했습니다. 즉,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성공하게 되고, 목표가 없는 사람들은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신앙생활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신앙의 성공자가 될 수 있지만, 신앙의 분명한 목표가 없는 사람은 신앙의 실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신앙의 분명한 목표를 가지지 못함으로 신앙의 실패를 하게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소개하며, 그들이 품어야 할 신앙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품어야 할 신앙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고린도교회의 문제점들
먼저, 여러분은 고린도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아십니까? 고린도는 지금의 그리스지역이며,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시점인 AD50년경 천막장사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가정과 함께 세운 교회입니다. 물론 쉽게 세워진 교회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지역의 특징 때문입니다. 고린도 항구 도시입니다. 따라서 외국인들의 거주가 많은 곳입니다. 그러기에 그 지역에는 이방신전이 30개나 되고 이방종교의 포교활동이 대단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적으로도 매우 문란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린도를 바라보며 사도바울의 첫 느낌을 행18:9절에서는 “두려움”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다시말해 바울이 고린도를 바라보며 깊은 영적인 절망감에 빠질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 전파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1년 6개월만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는 개척 후 약 3-4년뒤인 AD55년경 보내진 편지입니다.
우리가 조금 더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고린도교회는 매우 장점이 많은 교회입니다.(참고, 고전1:4-9절) 특별히 고린도교회는 성경 지식이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지식에 대한 열정도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는 매우 많은 성령의 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인, 병고침, 예언과 방언, 통변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성도들이 방언을 하고 많은 성도들이 예언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의 모임도 매우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 아볼로와 같은 유능한 목회자들이 거쳐간 곳입니다. 그리고 교회 재정도 꽤 넉넉한 교회로서 구제활동에 대단한 열심을 가졌습니다. 어쩌면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세운 몇 몇 교회들 중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지적이며, 능력과 은사가 풍부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불과 3-4년만에 대단히 급속도로 성장한 교회입니다. 정말 꽤 괜찮은 교회였고, 꽤 괜찮은 성도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고린도교회처럼 꽤 괜찮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가 씌여진 이유는 ‘고린도교회안에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우리들이 지난 몇주동안 계속 살펴본대로, 고린도교회 안에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실패하게 만든 죄악들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상숭배, 음행, 주를 시험, 원망의 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 외에도 고린도교회안에는 분쟁(1-4장), 성도들끼리의 법정 소송, 사기, 심각한 이혼(7장), 교만(8장), 차별 및 왕따(11장)...,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회안에서 분쟁과 다툼의 문제가 대단히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고전1:11-12절을 보면,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 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들끼리, 자신과 스타일이 비슷한 사람들이 어울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 자체가 틀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들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고 비난하고 험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부끄러운 문제가 일어난 곳이 어디입니까? 교회 밖입니까? 교회안입니까? 교회안입니다. 또, 비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몸된 교회안에서,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 이런 부끄러운 문제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잊지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는 완전한 교회, 흠이 없는 교회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그리스도인, 흠없는 그리스도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만일 여러분이 교회안의 어떤 문제를 보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는 그 문제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보이셨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왜 문제를 보게 하셨을까요? 문제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도구가 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교회의 문제를 마음으로 품고 기도하고, 지혜롭게 해결하는 일에 쓰임받는 일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때문에 교회안의 문제가 해결되는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2.신앙의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안에 이러한 문제들이 생기고, 무엇보다도 고린도교회 신자들이 신앙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31절 입니다. 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문제가 생긴 원인과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즉, 교회와 성도들안에 부끄러운 문제들이 생겨난 이유는, 그들에게 인생의 목표, 무엇보다도 신앙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목표 없이 눈길을 걸은 청년과 같고, 마치 골대 없이 축구하는 것과 같고, 과녁없이 활을 쏘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코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올바르게 걸을 수 없고, 골이 들어갈 수 없고, 과녁에 명중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신자가 된 이후, 분명한 신앙의 목표가 없었습니다. 혹시, 그들에게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익, 자신의 만족, 자신의 기쁨, 자신의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참고, 24, 33절) 이것이 그들의 신앙의 목표였고 소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분쟁, 소송, 음행, 우상숭배..., 등의 죄를 행하게 된 것입니다. 왜요? 자신의 영광 곧 기쁨과 만족을 목표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목표를 갖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삶에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공부하는 목표가 전혀 없는 학생과 1등을 목표로 하는 학생 중에 누가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겠습니까? 누가 더 공부를 잘하겠습니까? 당연합니다. 목표가 있는 학생입니다. 목표가 있는 운동선수와 목표가 없는 운동선수 중에 누가 더 열심히 하고, 누가 더 실력이 좋겠습니까? 당연히 목표가 있는 운동선수입니다. 또, 목표가 있는 사람과 목표가 없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열심히 살고, 더 나은 미래를 맞겠습니까? 당연이 목표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갖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할때에도 목표가 있는것과 없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로를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말했을 때, 베드로는 자신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주와 함께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종의 목표입니다. 그 결과 그나마 다른 제자보다 더 나았습니다. 또,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십시오! 그들은 12명의 정탐군이었습니다. 그러나 10명이 불신앙을 가지고 원망할 때, 이들은 신앙안에서 기쁨과 감격을 누렸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가나안 땅이라는 분명한 신앙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엘리야를 보십시오! 그는 바알과 아세라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했으며, 3년 6개월간 닫힌 하늘의 문을 열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엘리야는 정말 대단한 선지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대결에서 승리했고, 하늘에서 비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후 엘리야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불평과 절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앙의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참 훌륭한 신앙인이고, 참 훌륭한 왕입니다. 그러나 그가 어느날 낮잠을 자고 일어난후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고, 간음과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과연 다윗이 왜 그런 죄를 지었을까요? 더 이상 신앙의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고, 나라를 신앙으로 세웠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준비했고..., 등 귀한 목표를 다 이루고 더 이상 신앙의 목표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신앙의 목표를 갖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즉, 신앙생활을 할 때, 평생의 목표, 하루의 목표, 한주의 목표, 한달의 목표, 한해의 목표를 가지고 할 때 더 잘할 수 있고, 신앙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신앙의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습니까? 물어봐도 될까요? 만약에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힘이없고, 재미가 없고, 감사보다 불평이 많아지고, 열심히 안 생긴다면, 그 이유는 신앙의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신앙의 목표가 없으면 더 이상 신자다울 수 없고, 신앙이 쉽게 흔들리며, 신앙의 실패를 하게 되고, 신앙의 성숙이 일어나지 않고 도리어 신앙이 침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신앙의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갖는 일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날까지 새벽의 첫 시간을 드리겠다. 매일 성경을 30분 이상 읽겠다. 하루에 30분 이상 기도하겠다. 하루에 한사람 이상에게 전도를 하겠다.(무디목사님) 가정예배를 드리겠다. 주일 예배만이 아니라, 주중 예배에도 참여하겠다. 매일 감사 일기를 쓰겠다.(평생감사 전광목사) 한 가지 이상 교회에서 섬기는 일을 하겠다..., 등의 신앙의 목표가 필요합니다.
3.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신앙의 목표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모두가 품어야 할 최고의 신앙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31절에 ‘너희가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신앙의 가장 궁긍적인 목표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교회와 고린도교회 신자들 그리고 우리들이 신앙의 실패자가 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신앙의 목표를 놓치고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산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 영광이라는 말은 원래 하나님을 들어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나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임을 밝히 들어내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신앙에 최고의 목표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장로교 교리의 표준인 소요리문답 제 1문에 ‘사람의 제일된 목적’ 에 대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영광을 신앙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것을 신앙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큰일 부터가 아니라, 작고 사소한 일 곧 먹고, 마시는 일부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을까? 어느쪽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목표를 갖게 될 때, 여러분은 신앙의 승리자가 될 수 있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목표를 갖는 일은 인생과 신앙생활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본문과 삶
1)왜냐하면, 목표가 없으면 인생과 신앙생활의 승리자가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2)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신앙의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갖어야 합니다.
3)그리고 가장 중요한 신앙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을 신앙의 목표로 삼음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