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0:10절
제목 : 그리스도인과 원망! (고린도전서 강해34)
성도들의 삶속으로
저술가인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맞은 편에는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계속해서 불평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좌석이 불편하다, 시트가 지저분하다, 객석에서 냄새가 많이 난다, 승무원이 불친절하다..., 등 계속 불만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끊임없이 불평하는 아내 때문에 민망해 하던 남편이 필 박사에게 인사를 건너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변호사이고, 제 아내는 제조업을 합니다.’ 필 박사가 물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제조업을 하십니까? 그러자 남편은 ‘원망과 불평을 만드는 제조업을 합니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끊임없이 원망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원망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이며, 왜 원망하게 되는가를 확인함으로, 원망이 아닌 감사의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원망하면 안됩니다.
우리들이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백성다움에 실패한 이유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상숭배의 죄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상숭배가 무엇이었습니까? 단순히 우상앞에 절하는 것만 아니라, 우리들이 욕심대로 살고, 기복신앙을 가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내가 주인이 되어서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음행의 죄 때문입니다. 음행이란 성적인 죄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자신이 한 몸임을 알지 못하고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 백성다운 삶에 실패를 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들은 하나님 백성답게 살 준비가 되었는데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고 하나님을 탓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백성다운 삶에 실패 이유 마지막 네 번째입니다. 10절을 보면,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백성다운 삶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바로 ‘원망함’ 때문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구약의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13-14장입니다. 먼저, 민13:2,20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광야 곧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12명의 정탐군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 구석 구석을 정탐한 뒤 과실을 가지고 올 것을 명령 하셨습니다. 아마도 지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시기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12명을 가나안 땅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40일간 정탐을 합니다. 그리고 민13:27절을 보면, 12명의 정탐군들이 가나안 땅의 과실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원망이 터져 나오기 시작을 합니다. 민13:29절을 보면,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가에 거주하더이다’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들이 들어가 살 빈 땅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쫓아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민13:28절을 보면,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큰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땅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는 못들어 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민13:31절에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우리는 스스로 보아도 메뚜기 같으니....,’ 또, 민14:2절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민14:3절을 보면,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고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민14:26-30절 ‘나를 원망하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나를 원망한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입니다.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원망이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실패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원망하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없고, 원망하면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은 없습니까? 또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며,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 신앙생활을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작전을 아주 잘 세우는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군이 세우는 작전은 늘 화창한 날에만 적중하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날도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싸우기 전부터 승리를 확신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그만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장군은 하늘을 욕하면서 병사들에게 하늘을 향해 활을 쏘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그 화살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렇듯 원망은 우리 자신에게 화살을 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망하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원망하는 것이 신앙의 실패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생각이 선하시고, 계획하시는 일이 선하시고, 행하시는 것들이 선하시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만드시고..., 등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100:5절에 보시면,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우리를 향한 인자와 성실하심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23:6절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고 또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은 악한 일이고, 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에게도 하나님을 향해서도 원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원망하게 되는 이유?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그들은 매일아침마다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를 먹으면서도 하찮은 음식이라고 원망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음식을 먹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욕심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잘못된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들면,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더라~ 잘된다더라~ 이러한 잘못된 기대 때문에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또 다른 한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지금 이스라엘의 원망을 소개하기 위해서 어떤 사건을 예로 들었습니까?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예를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가데스 바네아 뿐인가요?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물이 없다(출15:24절)고 원망했으며, 또한 먹을 양식이 없다(출16:2절)고 원망했고, 좋은 길로 못간다(민21:4절)고 원망했으며, 고기가 먹고 싶다(민11:4절)고 원망했으며, 참고로, 민14:22절을 보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 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끊이지 않고 원망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원망한 사건과 본문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원망의 사건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 이유, 또한 그들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분명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나안 땅을 몇 명이 정탐했습니까? 12명입니다. 그렇다면, 12명 모두는 같은 땅, 같은 상황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10명은 원망을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무엇때문일까요? 그것은 목표의 차이입니다. 원망한 10명의 마음속에 가나안땅은 진정한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이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애굽을 연민한 것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즉,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은 가면 좋고, 안가도 그만 정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원망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가나안땅은 반드시 들어가야 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망보다는 기대와 확신을 갖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분명한 목표가 없기에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성경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엘리야를 보십시오! 엘리야는 모든 선지자의 대표자로 불리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고, 하늘에서 불과 비를 내린 사람이고, 온갖 기적을 행한 사람이며,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올라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엘리야도 하나님께 원망한 적이 있습니다. 왕상19:10절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원망까지 하는 신앙의 실패자가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더 이상 엘리야에게는 신앙의 분명한 목표, 사역의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분명한 목표가 없으면 원망의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은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곧 그들의 유일한 신앙의 목표를 상실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원망이 나왔습니다. 창3:12절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하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고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실패한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즉, 신앙의 실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 역시 그들에게 신앙의 분명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고, 그래서 바울은 고전9:24-25절에 운동선수를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벌이 1g의 꿀을 얻기 위해 125송이의 꽃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리고 겨울을 나기 위해서 열심히 꿀을 모읍니다. 한번은 한 식물학자들이 꿀벌들을 겨울이 없는 열대 지방으로 옮겨놓고 관찰을 했다고 합니다. 옮겨진 벌들은 늘 하던 대로 열심히 꿀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꿀을 아무리 모아도 겨울이 오지 않자 서서히 게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꿀은 넘쳐나가고 겨울은 오지 않자 더 이상 꿀을 모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에 없었던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벌들이 점점 날카롭게 변하더니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 역시 목표를 상실하면 안된다는 점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분명한 목표가 없으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없고, 원망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신앙의 분명한 목표가 있으십니까? 만약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속에서 누구가에 대해,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많아졌다면, 신앙의 분명한 목표를 놓친 것은 아닌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신앙의 목표를 놓쳤다면,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망이 그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3.원망이 아닌 감사
우리들은 지금까지 원망하면 안되는 이유와 왜 원망을 하게 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신앙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원망이 아닌, 감사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테니스 선수인 ‘아더 에쉬’는 뛰어난 선수인 동시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심장 수술을 받다가 의료진의 실수로 에이즈에 감염되어서 5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그의 팬에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느냐?’ 라는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 아더는 曰 ‘세계에는 50만명이 넘는 테니스 선수들이 있어요. 나는 그들 모두를 이기고 윔블던에서 우승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하나님, 왜 제가 우승했나요?’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지금 격는 어려움에 대해서 따지고 싶다면, 내가 이미 받아 누린 축복에 대해서 먼저 따져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더는 원망이 아닌 감사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이 원망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볼 때, 그들은 감사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2사람은 신앙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망을 멈추고, 신앙의 승리자가 되기 원한다면, 우리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감사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원망을 들으실 만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본문과 삶
1)그런데도 원망하는 것은 죄이고, 우리를 신앙의 실패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2)신앙의 분명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3)원망이 아닌, 감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분명한 신앙의 목표를 다시 갖고, 감사함으로 신앙의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