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도 행복을 원하지 않는 분은 없습니다. 제 손에 돈이 있습니다. 이 돈을 드린다면 여러분들은 행복하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니요라고 대답한 분은 정말 신앙이 좋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우리들은 돈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단지, 이 행복은 시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돈을 쓰고나면 우리들은 다시금 불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돈으로 영원히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렇게 돈 같은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위의 것을 찾으라
저번주까지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이단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철학과 초등학문, 그리고 유대주의와 금욕주의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시말해 땅의 것을 추구한 자들이었습니다. 철학은 사람의 지식을 추구했으면 초등학문은 눈으로 보이는 신비한 것들을 추구했고, 유대주의자들은 절기법, 음식법을 추구했으면 금욕주의자들은 자신의 육체를 힘들게 함으로서 더 높은 신앙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1절에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천국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즉, 위의 것을 찾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강조하기위해 2절을 이야기합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처음에 제가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돈을 소유함으로서 행복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다시말해서 사람은 무엇을 소유함으로서 행복을 누립니다. 생각해봅시다. 돈을 소유함으로서 행복을 누립니다. 때로는 집, 학생들에게는 좋은 성적과 좋은 대학, 또한 좋은 배우자, 자녀 등등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들은 행복을 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시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중세 교부 신학자 어거스틴이 주장한 것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소유하는 방식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돈같은 재화를 소유하는 방식과 두 번째, 아는 것이 곧 소유한 것이라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는 이해가지만 두 번째는 이해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바로 내가 필요할 때마다 쓸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법은 지식이기에 그것들은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쓸수 있습니다. 이것을 소유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지식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바로 시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이라는 발전되는 것이고 예전 것은 없어져는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하지 않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진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고 부활하셨다는 진리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원한 진리를 소유할 때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말씀을 소유할 때 우리들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이것은 곧, 위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10절을 읽어봅시다.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그래서 10절에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들을 소유함으로 행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시편 1편을 보시면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 말씀을 소유함으로서 위의 것을 찾고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는 세상일은 생각하지 말고 오직 신앙에만 몰두하라는 오해를 할 소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땅의 것을 돈 같은 것만으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여기서 땅의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5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본문에선 음란,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돈이라는 것 자체가 땅의 것은 아닙니다. 바로 돈에 대한 부정, 탐심, 사욕, 정욕이 땅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것에 대한 정욕, 탐심이 땅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자신의 욕심, 만족을 채우려는 모든 것을 땅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런 면에서 이번주 수요예배 말씀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땅의 것을 소유한 자들은 자신의 존재가 땅의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들어 돈만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돈을 사랑한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나보다 돈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인 돈이 없어진다면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져버린다고 이야기합니다. 본문에서는 이를 ‘우상숭배’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다릅니다.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이는 나보다 예수님이 먼저라는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하시기에 그리고 나를 사랑하기시기에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귀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땅의 것을 죽이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기에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땅의 것을 죽이려고 노력한다고 하지만 그것에 넘어진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에 넘어지고 때로는 배우자, 자녀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세상에 살고 있기에 세상의 욕심을 좇아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정욕과 습관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8절을 읽어봅시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분함과 악의와 비방과 부끄러운 말을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은 바로 죄의 습관에 길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런 땅의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능력으로 이것들을 이기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라면 우리들은 땅에 있는 지체들을 죽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아무리 신앙 좋은 사람이라도 말씀 안에 거하지 않으면 욕심과 정욕에 빠지고 영적인 침제에 빠집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땅에 있는 지체를 이길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만족을 채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땅에 있는 지체를 추구함으로 행복을 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말씀 안에 거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소유함으로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땅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만족을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기 위해 우리들은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땅의 있는 지체를 죽이고 위의 것을 생각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