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신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저희 반에는 전도사가 아니라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입학할 때부터 목사님이셨으니 조금 이상할만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삼육대학교, 대학원을 다니신 분이었습니다. 삼육대는 바로 이단으로 규정되어져 있는 제칠일안식교입니다. 그 목사님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제칠일 안식교 안에서 모태신앙이었다고 합니다. 부모님도 열심히 안식교에 다녔고 아버지도 목사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도 같은 안식교였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신학공부를 정말로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저도 같은 반에서 공부하다보니 정말 머리가 비상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공부를 하는 중에 자신이 믿는 제칠일 안식교가 오류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자신의 가족들과도 모두 헤어지게 되는 아픔 속에서도 개종을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골로새 교회 안에 있는 이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단들을 살펴보면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알아가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골로새 교회에 있는 이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단이 무엇인지 정확한 명칭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들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철학
8절을 보시면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첫째, 골로새교회 안에 철학이 들어왔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상으로 보아 그리스 철학은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철학은 무슨 학문입니까?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어디서로부터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이런 인간의 본질을 알아간다보면 신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철학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는 인간의 본질 그리고 신의 본질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철학은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시킴으로서 그것이 진리라고 믿어버립니다. 바로 자신의 지식에 자신이 속아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신학은 철학과 비슷한 학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려면 철학을 잘 알게 되면 공부하기가 수월합니다. 그런데 신학과 철학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바로 인간의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을 알 수는 없지만 알도록 노력하는 것이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은 철학은 헛된 속임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묵상하면서 철학을 추구하는 사람과 우리와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더 믿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이것은 상식을 넘어서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병이 있으면 약을 먹지 말고 기도하라는 수준의 말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내 인생으로 얻어진 경험에 더 의지 하여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좀 더 상처 안 받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을 터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용서하기보다는 용서하는 척하면서 피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이 철학을 헛된 속임수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들도 나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살아가다가 속아 넘어질 때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길과 진리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나의 삶은 내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과 뜻대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초등학문
두 번째로, 골로새교회에 들어온 이단은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초등학문을 우리는 보통 세상에서 배우는 일반적인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실 말해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초등학문 즉, 미신에 관한 간단한 이론을 말합니다. 즉, 제일 원시적인 종교인 샤머니즘 같은 종교적인 학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점, 운세, 풍수지리, 토정비결 등과 같은 지식을 이야기합니다. 골로새교회 안에 침투한 이단은 겉으로는 멋진 철학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내용으로는 미신적인 종교 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똑똑하고 학문적으로 지식이 많은 사람들도 이단에 빠지거나 점이나 운세 같은 미신에 빠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학문적으로 깊어도 인간은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낼 수는 없기에 이런 헛된 것을 붙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초등학문이 전통과 연결되어져서 할례를 강조 합니다. 바로 미신 같은 종교행위가 유대의식과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그들이 지키는 할례는 종교행위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초등학문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8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전통과 초등학문을 따르는 이단과 같다고 생각되어집니다. 때로는 주일을 지키는 것, 예배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말씀보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의식으로만 지키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은 이 모든 경건 생활들이 단지 나 자신이 축복 받기 위함으로 하지는 않으신가요? 이는 샤머니즘의 기복신앙과 동일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우리들은 종교를 넘어서서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경건생활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습관적이고 형식적인신앙생활을 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헛된 것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8절을 통해서 이단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9-10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철학과 종교의식을 통해서 신에게 접근하려고 몸부림치지만 절대로 하나님께 갈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적용되어집니다. 바로 우리의 경험과 지식만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습관적인 의식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어서야 만이 올바른 길인 하나님께 갈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개념을 할례와 세례에 빗대어서 이야기합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를 몸에 가지는 것이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것뿐입니다. 바로 우리의 부패한 본성을 잘라버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못되고 악한 본성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잘라버리는 것은 할례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받은 우리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예수님께서 살아나심으로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죄성을 가지고 있기에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내 자신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신념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한계입니다. 우리들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한다고 노력하지만 항상 습관적이고 형식적이며 그리고 축복만 바라보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들의 죄의 본성을 못 박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나 자신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골로새 교회 안에 있는 이단들은 철학과 초등학문의 모습을 가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하나님보다는 나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따라가게 되고 또한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 인간의 한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악한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말씀을 묵상하면서 갈라디아서 2:20말씀이 많이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심으로 인해 날마다 새사람이 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