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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그리스도인과 자유!(고린도전서강해28)
 본문말씀 : 고전9:19-2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5.4.15
조회 : 7,602   추천 : 0  
본문 : 고전9:19-23절  고린도전서 강해28
제목 : 그리스도인과 자유!  

  성도들의 삶속으로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한 연구팀이 동물의 지능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15세 된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갖은 노력을 다해서 140여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이 단어들을 자기 생각에 따라 결합할 수 있도록 해보았습니다. 이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서 어떤 의사를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침팬지가 맨 처음으로 표현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Let me out.” 나를 놔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좀 자유롭게 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짐승도 자유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자유를 원합니다. 즉, 패트릭 헨리가 말한대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은 역시, 자유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본문을 통해서 말하는 자유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와 많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경이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진정한 자유자의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과연 자유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먼저, 19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자유자’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이 자유자라는 점을 밝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이 보기에 바울은 전혀 자유롭지 못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보였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울의 절제하는 삶, 또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며, 바울은 자유를 모르고, 자유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로 인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신앙의 실력이 없는 사람, 사도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공격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은 진정한 자유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계속해서 말을 합니다. ‘내가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에게 자유가 있지만, 자기 스스로가 그 자유를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 이라고 말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0-22절을 보면, 바울이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즉,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되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자 같이 되고, 율법이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이 없는자 처럼 되고,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 이유 역시, 더 많은 사람들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3절에서는 자신이 자유를 포기한 가장 중요한 이유를 ‘복음을 위하여’ 라고 말을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과연 자유는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자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자유의 사전적인 의미는,  1)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또는,  2)법률에서 말하는 자유는, 법이라는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전이 정의하는 자유라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할수 있는 상태를 자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생각하는 자유 역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예를들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등 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자유는 무엇입니까? 사전이 말하는 자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와 혹시, 다른 내용이 있습니까? 그러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던 자유는 어떤 것일까요? 여러 가지 개념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육체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즉, 인간의 영혼은 대단히 소중하지만, 육체는 영혼을 담아두는 그릇(포장지)에 불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육체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육체적인 자유인 것입니다. 결국,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와 결과적으로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려는 자유? 곧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죄와 죄의 결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죄와 죄의 결과에서 결코 자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에 대해 자유한 사람이 되었고, 죄의 결과에 대해서도 자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갈5:1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와 죄의 결과에서의 자유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더 중요한 자유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둘째,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자유자가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근거하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세상 사람들에게 자유가 없어 보이고, 우리 믿는자들에게만 자유가 있는 것 처럼 보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역시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보다 세상의 안믿는 사람들이 더 자유가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화를 내지 못하고, 속이지 못하고, 술과 담배를 못하고, 험담을 못하고, 세상과 타협을 못하고, 욕심을 내지 못하고, 주일에 마음대로 여행도 못가고..., 등 믿음을 갖은 이후로 우리들의 삶에는 못하는 것들, 하면 안되는 것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들, 또는 내가 원하지는 않지만 하라고 하시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세상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세상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며 삽니다. 누가 더 자유자인 것처럼 보입니까? 당연히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자유자가 아니라, 우리들이 자유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참고, 고후3:17절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또, 갈5: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또, 고전7:22절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자유자라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자유가 없습니다. 어떤 자유가 없을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자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유 또는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는 자유가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우리들이 진정한 자유자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자유는 무엇입니까? 마음대로 사는 그런 자유가 아닙니다. 죄와 죄의 결과에 지배받지 않는 자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우리가 얻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들이 하나님께 받은 자유는 정말 큰 축복인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이 말하는, 바울이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가지로 설명을 드립니다. 첫째는, 우리의 자유를 칭찬과 상 받기 위한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종 종 초신자들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스스로 선택할수 있수 있는 결정권)를 주셨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주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죄를 짖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칭찬과 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자유의지가 없고, 지시한 대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만드셨다면, 칭찬과 상이 있겠습니까? 예를들면, 로봇청소기가 온 집안을 청소했다고 해서 칭찬을 주고 상을 주십니까? 아닙니다. 입력된 프로그램 대로 움직인 것 뿐입니다. 전혀 자신의 의지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칭찬과 상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손주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잘 닦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처럼 칭찬해주실 겁니다. 그리고 손주가 한 일에 비해 더 큰 상을 줄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의지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칭찬을 주시고, 상을 주시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방종과 방탕의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자유의지의 가치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남쪽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고 너무 지나치게 마음대로 사는 것 같다.’ 라고 말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자유자라고 말하면서, 그 자유를 칭찬과 상받기 위한 기회가 아니라, 방종과 방탕의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참고, 이단들의 특징은 자유를 방탕의 기회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갈2:4절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께 자유의지를 선물로 받으셨습니다. 즉, 무엇이든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오늘 이 저녁에 이 자리에 나올 수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분의 삶에 모든 순간이 자유의지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십니까? 칭찬과 상받기 위한 기회로 사용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방종과 방탕의 기회로 삼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일까요? 당연히 칭찬과 상받음의 기회로 삼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유의지를 칭찬과 상받의 기회로 삼으려는 노력을 통해서 여러분의 신앙은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칭찬과 상받을 위해 자유의지를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는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 말하며, 또, 20절에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또, 21절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그리고 22절에는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일예로, 우상의 고기문제를 생각해봅시다. 우상의 고기를 먹는 것은 죄일까요? 아닐까요?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상의 고기를 먹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상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유를 누구를 위해 사용했습니까? 자신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유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고전8:9절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선물로 받은 자유를 바울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이 바른 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를 남의 유익이 되도록 사용해야 합니다. 또, 죄가 아닌 이상 여러분이 어떤 옷을 입고 다니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또, 죄가 아닌 이상 여러분이 무엇을 하던지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가 방종과 방탕의 기회가 아닌, 하나님께 칭찬과 상받는 기회가 되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자유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다 더 수준 높은 자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3.진정한 자유자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참된 자유자로 살아가는 방법’ 에 대해서입니다. 즉, 우리들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입니다. 첫째로,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반드시 따른 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자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자유를 사용할 때마다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둘째는, 종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바울은 스스로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자신이 가진 자유를 방탕과 방종이 아닌 하나님께 칭찬받는 기회로, 또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진정한 자유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종됨과 모든 사람에게 종노릇하고자 하는 종된 마음이 필요합니다. 결국, 우리들이 종이 될 때 진정한 자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이 자유를 방종이나 방탕의 기회로 삼으면 안됩니다.
  2)도리어 하나님께 창찬과 상을 받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3)그리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과 서로를 위해서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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